[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아이 캔 온리 이매진’(앤드류, 존 어윈 형제 감독)은 2003~2004년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5위, 2017년 빌보드 CCM 디지털 음원 판매 1위, 2018년 빌보드 CCM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1999년 이후 꾸준한 인기를 누린 머시미의 ‘I can only imagine’의 뒷얘기를 소재로 한 영화다.

1985년. 음악과 잡동사니를 좋아하는 소년 바트는 한때 미식축구 선수였던 폭력적인 아버지와 자상한 엄마와 함께 산다. 엄마는 바트를 위해 교회 캠프에 보내주고 거기서 알게 된 섀넌과 켄트와 삼총사가 된다. 며칠 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짐을 싸 가출한 상황.

고등학교에 진학한 바트는 아버지를 염두에 두고 미식축구 팀에 가입하지만 큰 부상을 입고 다시는 뛸 수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러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따고자 합창부에 기술 조감독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그의 잠재된 능력을 알아본 선생에 의해 뮤지컬 주역에 발탁된다.

섀넌은 바트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바트는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며 졸업과 동시에 고향 텍사스 주 그린빌을 떠나 오클라호마 시로 가서 5인조 밴드 머시미(Mercy me)를 결성한다. 점점 지명도를 높여가던 머시미는 유명 매니저 브리켈을 끌어들인 뒤 음반사 담당자 앞에서 연주하게 된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혹평을 하고, 낙담한 바트는 브리켈과 멤버들에게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브리켈은 “남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 같으면서도 때론 진짜도 들려준다”며 바트의 트라우마를 묻고,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상처 때문에 내내 시달려온 그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결심을 하는데.

바트는 11살 때 엄마가 교회 캠프에 보내준 걸 계기로 신앙심을 갖게 됐다. 그의 밴드는 팝도 하지만 대다수 레퍼토리는 CCM이다. 그가 처음 구매한 음반은 에이미 그랜트의 ‘Never alone’이다. 집에 온 그는 예전과 달리 다정하게 아침을 차려준 아버지에게 비로소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뛰쳐나간 그는 차 안에서 아버지의 췌장암 말기 진단서를 발견한 뒤 창고에 쓰러진 아버지를 목도한다. 그는 자신에게 분풀이를 하라는 아버지를 따뜻하게 안아준 뒤 변화한 계기를 묻고, 바트가 떠난 뒤 우연히 라디오에서 전도사의 설교를 들은 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는 답을 듣는다.

아침 식사 전 기도를 하자는 아버지에게 “하느님을 찾으셨어요? 하느님은 아버지를 용서해도 저는 못 해요”라고 비난했던 그는 “내 아버지는 몬스터였지만 주님이 내가 원하는 아버지, 베스트 프렌드로 바꿔줬다. 늘 원했던 아버지가 됐건만 떠나게 된다”라고 애달픈 마음을 일기장에 적으며 운다.

어릴 때 열정적으로 기도, 고민, 꿈 등을 적으며 일기를 썼지만 고향을 떠난 후 써본 적이 없는 일기를 다시 쓰게 된 그는 예전의 글에서 ‘아이 캔 온리 이매진’이 자주 발견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10여 분 만에 동명의 히트곡을 써낸다. 우편으로 이 곡을 받은 브리켈은 그랜트에게 들려준다.

마침 컴백할 신곡이 필요했던 그랜트는 환호성을 지르고 먼저 무대에서 공개하기로 하지만 막상 공연 당일 객석에 앉은 바트를 불러내 부르게 한 뒤 “이 곡은 머시미의 첫 싱글곡”이라고 공표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주눅 들어 도전을 두려워하는 바트의 트라우마와 꿈(예술)의 대립이 주축을 이룬다.

브리켈은 “뭘 피해 도망치는 거지? 아버지? 그가 널 때렸군. 그럼 도망치는 것 관두고 그걸 찬양해”라고 훈계한다. 바트는 무대 위에서 “상실감과 고통에 시달리던 어린 시절 찬양이 날 구해줬다”라고 고백한다. ‘알바’를 하던 소년 바트의 발걸음에 흘러나온 곡은 ELO의 ‘Don't bring me down’.

그러나 그렇게 귀가한 바트에게 아버지는 “꿈은 현실을 못 보게 하니 돈이 안 된다”며 그의 ‘잡동사니’들을 불태운다. 소년 바트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며, 글도 잘 썼다. 하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미식축구였던 아버지의 눈엔 돈이 안 되는 것들만 좋아하는 아들이 한심했다.

주제가 용서와 찬양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종교적이지만 비종교적 관점에서 봐도 따뜻하고 감동적이기에 충분하다. “네게 꿈을 좇지 말라고 했던 건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해서 그랬단다”라는 아버지의 고해성사는 “내가 어렸을 때 뭘 고치거나 만졌던 건 구원”이라는 바트의 고백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데리다는 ‘용서하다’에서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 ‘용서는 불가능의 광기’라고 썼다. 아버지는 바트가 용서하기 전에 이미 회개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용서했다고 가해자의 죄책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마음의 짐만 조금 덜 뿐.

바트가 아버지를 용서하는 건 그가 암에 걸려서 불쌍해서도, 의도적으로 결심해서도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세상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라는 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의 “약한 자는 절대 누구를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강한 자의 특권”이라는 말처럼 강해졌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가정에서 군림하려 들었던 아버지는 한국적인 부계사회의 억압과 서양식 구조주의를 상징한다. 당연히 바트는 해체주의다. 엄마는 아예 이탈주의자였다. 용서를 해체하면 ‘어진 몸가짐’ 또는 ‘누구를 돕기 위한 기부’다. 용서하면 상상이 현실화한다는? 18일 재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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