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비장미와 숭고미의 애니메이션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7.01l수정2020.07.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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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의 새 작품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화풍으로 몽환적이지만 한편으론 현사실적이기도 하다. 판타지적 설정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다 결국 사랑도 회의주의도 모두 인생의 과정이거나 편린임을 웅변하는 장대한 서사시다.

여대생 히나코는 서핑을 즐기기 위해 바닷가 마을로 이사한다. 소방관 미나토는 먼발치서 그녀를 바라보며 후배 와사비에게 나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불량한 무리들이 불꽃놀이를 하다 히나코가 사는 아파트에 불을 내고 미나토가 출동해 아파트 주민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히나코와 인연을 맺는다.

히나코는 서핑을 가르쳐 달라는 미나토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고,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동거까지 거론하는 등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히나코에게 혼자 서핑을 하러 간다는 미나토의 문자 메시지가 온다. 뒤늦게 해변에 나온 히나코는 미나토의 싸늘한 주검을 발견한다.

히나코는 바다가 안 보이는 곳으로 이사한 뒤 칩거한다. 미나토의 여동생 요코와 와사비가 찾아와 미나토의 유품을 전달한다. 미나토의 휴대전화를 발견한 히나코는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매번 실패하고 우연히 엑사일의 ‘Brand new story’를 부르자 물속에서 미나토가 나타난다.

히나코는 물병과 돌고래 튜브를 휴대하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면 물에서 나타나는 미나토와 대화를 하고, 그런 그녀를 발견한 와사비는 요코에게 그녀를 걱정하는 말을 한다. 히나코는 그들에게 미나토 유령의 출몰을 알리지만 무시당한다. 그러다 갑자기 와사비가 히나코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데.

비키니 차림으로 서핑을 즐기는 히나코와 여자 못지않게 아름다운 남자 주인공들은 은은하게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사랑 따윈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요코는 묘한 중성적 매력의 빛을 발한다. 물과 사랑을 소재로 했기에 전체적인 톤은 밝고 부드러워 관람하는 내내 청량감을 느끼게 만든다.

주제가 사랑과 성장이라면 그걸 웅변하는 키워드는 세이렌과 사르트르다. 감독은 대놓고 Seiren과 Sirena란 단어를 노출한다. 그리스 신화의 배를 타고 가는 선원들을 노래로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님프가 세이렌인데 감독은 뒤집어 죽음도 뛰어넘는 기적을 일군다고 노래의 힘을 전면 배치한다.

히나코가 노래를 부르면 물속에서 등장하는 미나토는 히나코의 눈에만 보인다. 히나코는 “물에서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나?”라고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히나코가 미나토를 잃은 충격에서 헤어날 즈음 요코가 불러 그의 방을 보여준다.

미나토는 오므라이스와 토스트 등 요리에 뛰어났고, 커피도 잘 내렸다. 소방관으로서도 출중했다. 그러나 그는 천재가 아닌 노력파였다. 그 이유는 어릴 때 해안을 순찰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이 온 힘을 다해 바다로 기어가는 것을 보고, 그리고 자기 생명의 은인 때문에.

그는 어릴 때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작은 소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런 이유들로 그는 소방관이 됐다. 세상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왔고, 그렇게 죽어갔다. 강렬한 반전 소재.

감독은 노골적으로 미나토와 히나코를 통해 실존주의를 부르댄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실존을 고뇌와 죽음 등 한계상황으로 보고 사랑과 신앙으로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라며 세계 속에 있는 게 실존이고 그건 곧 ‘서로서로 어울려 있음’이라는 공존함으로 봤다.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보장받았지만 이웃을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인 미나토는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의 결합을 이룩한 사르트르다. 그가 동거를 제안하자 히나코가 떳떳한 직장을 마련하면 그렇게 하자는 건 반사유제다.

와사비가 이상하다는 히나코에게 미나토는 “걔는 착한 친구”라고 좋게 봐줄 것을 조언한다. 자나 깨나 이웃을 배려하는 물속의 사르트르. 물에서 죽어서 물에서 나타나는 미나토를 믿는 히나코와 안 믿는 요코와 와사비는 관념론과 유물론으로 대척점에 서지만 사랑과 우정으로 훌륭하게 극복한다.

히나코가 미나토의 혼령을 보는 건 모호하고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형상에서 일정한 패턴을 추출해 연관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식의 오류인 파레이돌리아(변상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녀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일정한 지역에 머무는 지박령 관련 서적을 보게 만들며 응원한다.

파도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다. 파도는 인생이자, 삶 속의 고난이며, 각종 사건, 사고와 사연들이다. 미나토와 히나코가 함께 파도를 탄다는 건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는 뜻이다. 미나토는 “나도 파도”라며 “너만의 파도를 타도록 응원할게”라고 말한다. 이제 히나코는 홀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

요코는 “나는 나답게 살 것”이라던 와사비에게서 교훈을 얻어 방황을 끝내고 자기만의 파도를 탄다. 두 주인공의 평행이론. ‘자유론’에서 자유와 개성을 강조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노골적인 환유. 미나토의 샤카 사인은 배려, 이해, 연대, 공감 등을 뜻한다. 예쁘고 감동적인 애니메이션. 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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