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제 31살의 자비에 돌란은 배우보다 감독으로서의 진가를 더욱 크게 인정받고 있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그런 그의 작가정신이 무척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신 영화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캐나다의 20대 후반의 친구 맷과 막스는 친구들과 주말을 즐기기 위해 리벳의 별장에 모인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리벳의 여동생 에리카가 자신의 새 작품에 출연할 친구 2명이 펑크를 냈다며 대체 연기를 부탁하고 막스가 먼저 자원한다. 친구들은 맷의 출연을 압박하며 내기를 유도하고 결국 맷은 내기에 진다. 그런데 맷과 막스는 해내야 할 연기가 둘의 진한 딥 키스라는 걸 알고 기함한다.

맷은 로펌에서 승승장구 중이고, 막스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2주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출국할 예정이다. 맷의 엄마는 집에서 막스의 송별 파티를 열고 공교롭게도 당일 맷은 토론토에서 파견된 선배 변호사 접대로 파티에 늦는다. 친구들은 2차로 친구 샤리프의 집으로 옮겨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영화 촬영 이후 맷과 막스의 사이는 서먹서먹해졌다. 맷은 연인 사라와 함께 리벳의 집에서 그 영화를 관람한 이후 그녀에게 “자기라고 부르지 마”라고 짜증을 낼 만큼 심경의 혼돈을 겪는다. 막스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안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게이 같은 남자들의 시선 탓에 혼란스럽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일부러 거리를 두는가 하면 심지어 배타적으로 대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게임을 하던 중 맷은 막스가 사기를 쳤다고 시비를 걸고 막스를 옹호하는 프랭크와 싸운다. 맷은 밖으로 나와 흥분을 가라앉힌 뒤 다시 안에 들어와 프랭크에게 사과한 뒤 막스의 뒤를 따라가는데.

감독은 커밍아웃을 한 소수성애자다. 그래서 전체적 틀은 보편적 시선에선 다소 불편할 수 있다. 감독은 우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하지만 모든 이성애자가 그의 의견에 동조할지는 미지수다. 단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하고, 이를 해부하며, 재조립하는 솜씨는 감독의 정체성을 떠나 매우 섬세하다.

융은 인간의 정신 구조를 형성하는 ‘원형’을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그리고 자기로 봤다. 아니마는 남자의 무의식 속의 여성성, 아니무스는 여자의 남성성을 각각 말하는데 감관에 의한 자극에 따르는 게 아니라 마음에 절로 떠오르는 심상인 이 진정한 자아를 받아들여야 인격이 완성된다고 했다.

감독은 철저한 융 숭배자 같다. 또한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강박행위도 수용한다. 두 번에 걸쳐 지방 국도를 차로 달리며 중앙선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나온다. 첫째 시퀀스의 중앙선은 두 줄이고, 둘째 시퀀스는 한 줄 점선이다. 도로 한가운데를 달린다는 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양쪽에 걸쳤다는 뜻.

두 줄 역시 같은 의미다. 그 다음의 점선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다. 맥락이 끊겼다는 의미다. 돌란이 캐나다인인 것과도 연결된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존하는 나라.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나라. 러닝타임 내내 영어에 부정적이지만 결국 영어(미국)를 인정해야 하는 게 현실.

막스는 전형적인 코카소이드지만 맷은 인도유럽어족이거나 유럽계 아리안족의 피가 섞였다. 맷은 비교적 부유하고 평안한 집안에서 자라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막스는 하나뿐인 형과 연락이 두절됐고, 홀어머니와는 매일 다툰다. 여기서 그랬듯 호주서도 바텐더로 일할 예정. 영어와 프랑스어다.

맷과 막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에리카의 친구가 “둘이 키스해본 적 있냐”고 묻자 막스는 “고등학교 때?”라고 긴가민가하고 맷은 “절대”라고 단호하게 부인한다. 처음부터 자신이 소수성애자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가 부여한 외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마련이다.

에리카의 “오빠들은 여자야. 아니 남자일 수도 있지”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감독이 게이임을 떠나서 맷과 막스를 남자와 여자, 혹은 여자와 남자의 친구 관계로 대입해 달라는 환유다. 어릴 때부터 부대끼며 함께 자란 남녀 친구로 보면 이해가 쉽다. 주변에 흔한 사랑과 우정 사이의 고민이다.

에리카는 대놓고 자신의 영화는 인상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이라고 연출의 의도를 설명한다. 전자는 빛과 색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느낌이 중요하고 후자는 작가의 감정과 감각이 모든 걸 결정하되 왜곡과 파격을 마다하지 않는데 전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둘은 일맥상통한다. 이 영화가 그렇다.

에리카의 작품 시사회 뒤 어른들은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다고 극찬한다. 그의 전매특허인 금기된 사랑과 파격적인 욕망은 이 작품의 배경이다. 새 직장에 제출할 추천서를 부탁하기 위해 맷의 엄마를 찾아간 막스는 우연히 서랍에서 맷이 7살 때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린다.

키스 신 촬영 후 어색해져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맷이 그 누구보다 자신의 막역한 친구였고, 맷 역시 자신을 그렇게 여겨왔던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자신의 천박한 욕망 혹은 인색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림에는 ‘M과 M의 농장’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맷과 막스인 동시에 Man과 Madam이기도.

실제 돌란에겐 없지만 막스의 오른쪽 볼에는 흉터가 있다. 이는 막스의 어릴 적 상처인 동시에 돌란이 현실에서 받았을 고통을 뜻한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막스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흉터가 사라지는 건 친구들이 그를 편견 없이 봐준다는 은유. 긴장감 넘치고 감동적인 성장의 영화다. 2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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