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바이러스로 풀어낸 여성 해방의 스릴러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7.16l수정2020.07.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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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팬데믹’(타카시 도셔 감독)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재난 상황인 현 시국에 참으로 많은 깨우침과 감정적 충격을 줄 것 같다. 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눈처럼 재가 휘날리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 HNV-21가 인류를 감염시킨다. 남자는 증상이 없지만 여성의 치사율이 100%라는 게 특징.

전 세계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배아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여성들에게 자수할 것을 강권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체포하며, 심지어 현상금을 내걸고 남성들에게 사냥을 유도한다. 감염자일지라도 죽기 전에는 자궁은 건강하므로 강제로 자궁을 추출해 인공 임신을 시키려 한다.

윌은 연인 에바의 집으로 와 비밀막 등으로 감염 방지책을 마련해 주고 그녀의 은신을 돕는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 위치가 노출되기에 통화를 금한다. 영국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도 못 받게 한다. 그런 칩거 생활이 300여 일이 흘러가자 드디어 에바는 극심한 히스테리 증상으로 윌과 갈등한다.

400일째 되던 날 결국 에바는 답답함을 못 참고 방호복을 입은 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윌이 달려가지만 이미 그녀는 보호 헬멧을 벗고 스스로 감염된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전화까지 건다. 그리고 곧바로 군대가 출동하지만 웬일인지 상관은 에바의 존재를 눈감아 준다.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폭포를 보러 가자며 산으로 향한다. 그동안 집에서 인스턴트 음식만 먹었던 에바는 식당에서 팬케이크와 베이컨을 먹고 싶다고 우기고, 결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여자 사냥꾼 아서 부자에게 들켜 그들의 추적을 받게 되는데.

감독은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그녀에게 느꼈던 ‘이 세상 마지막 여자’라는 애틋한 애정을 현대적인 고립 상황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원으로 확장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내 마지막 여자’라는 아름다운 판타지가 이런 스릴러로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은 오직 감독의 연출력이다.

원제가 ‘Only’다. 감독은 14세기의 페스트 대유행과 현대의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 그리고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돼 16세기 말~17세기에 절정을 이뤘던 마녀사냥을 참고한 게 확실하다. HNV-21는 남자에게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여자에겐 치명적이라는 게 그렇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 유럽의 정신은 기독교가 지배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종교개혁으로 내부적인 균열이 생긴 데다 이교도까지 창궐하는 바람에 종교재판이 유행하게 됐다. 그런데 그 재판은 어느덧 지배 수단으로 바뀌었고 그중에서도 마녀재판은 극적인 효과가 컸다.

마녀사냥의 저변에 깔린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지배욕과 상대적 우월주의는 사람들을 미혹시키기에 매우 훌륭했기 때문이다. 마법과 마녀에 대한 공포심은 종교적 한계를 극복하고 고위 성직자의 타락을 은폐함으로써 왕권과 교권을 유지하는 훌륭한 수단이 됐고 여기에 교훈적인 기능까지 더했다.

이 작품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권력과 남자의 시선은 당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마치 ‘모든 잘못은 여성에게 있다’고 올가미를 씌우는 듯하다. 에바가 지나치게 통제한다고 소리 지르고 윌이 그게 아니라 지키려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건 보호한다는 핑계로 제어하는 남자의 소유욕에 대한 비판.

정부는 여자 한 명당 2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여자가 낸 세금으로 여자 사냥의 포상금을 주다니! 아서 역시 아내를 숨겼으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었다. 여자 사냥꾼이 된 이유가 하나뿐인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는 궤변을 펼친다. 남자가 여자의 주인이라는 근거가 있기나 한 걸까?

군인들이 들이닥친 에바의 집 벽엔 100명은 족히 넘는 여자들의 개인 즉석사진이 날짜가 적힌 채 덕지덕지 붙어있다. 에바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겨놓고 싶어 하기 마련. 사진은 그중의 하나고 또 추억이다.

시종일관 서늘한 스릴러와 두 주인공의 눈물겨운 사랑으로 진행되던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정말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고무한다. 둘은 왜 그토록 폭포를 보고 싶어 했을까? 줄기차게 힘찬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폭포는 역동성, 자주성, 그리고 영속성을 의미한다. 사진과도 일맥상통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소련의 전체주의와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땐 조국 영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나섰다 옥고를 치르기까지 했다. 그의 철학만큼 유명한 두 가지 행동주의는 반핵평화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이다. 경험론의 오류를 꼬집은 ‘러셀의 칠면조’도 촌철살인.

‘똑똑함에도 실패하는 이유는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망설이기보다는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는 그의 잠언은 에바다. 그의 여성해방운동은 윌이 잇는다. 윌이 “당신이라면 아내를 군대에 넘기겠냐”고 묻자 아서는 “그 말이 맞지만 내 아내라면 자신 신고했을 것”이라며 어리석은 칠면조가 된다.

고립되거나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오래 사는 게 나을까, 짧게 살더라도 자유롭게 사는 게 나을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헬멧을 벗고 스스로 감염되는 에바에게 있어 그 해답은 매우 쉽다. 경험론을 주장하는 늙은 아서보다는 러셀의 회의주의를 펼치는 두 연인이 더 현명해 보인다.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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