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강철비2: 정상회담’(양우석 감독)은 ‘강철비’(2017)의 속편을 표방하고 있지만 ‘반도’처럼 배경만 같을 뿐 전편과 상관없는 주인공들의 매우 다른 상황에서 펼쳐지는 서스펜스 액션이다. 즉 전편을 봤다면 정우성과 곽도원의 설정 변화가 흥미롭겠지만 안 봤어도 충분히 즐기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정우성), 북측 국무위원장 조선사(유연석), 미국 대통령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가 원산 갈마호텔에 모인다. 하지만 고압적인 스무트와 원칙적인 선사 사이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고 호위총국장 박진우(곽도원)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군을 쉽게 장악하며 쿠데타는 성공하고, 진우는 동생 철우(류수영)가 함장으로 탑승한 핵잠수함 백두호 함장실에 세 정상을 감금한다. 취재차 동행했다 억류된 미국의 한 여기자가 기지를 발휘해 백악관에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전 세계가 긴장상태에서 제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에 전율하는데.

‘반도’가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좀비 액션의 한국적 신세계를 열었다면 ‘강철비2’는 할리우드 못지않은 잠수함 액션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을 더해 정말 스릴 넘치는 웰메이드 필름을 완성했다. 한국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소름 끼치게 압축했다.

그런 면에서 정말 뛰어난 오락이자 역사적 교과서다. 경재가 아내(염정아)에게 한국전쟁 휴전협정서 사본을 보여주며 한국 사인이 없는 걸 증명하는 시퀀스 하나가 주는 감정적 소용돌이는 엄청날 것이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도망가며 한강 다리를 끊었음에도 서울을 사수하겠노라 거짓말을 했다.

왜 전시작전권을 가져와야 하는지, 왜 외교를 잘해야 하는지, 왜 통일이 돼야 하는지 정말 시원시원하게 할 말 다 하는 감독의 역사관과 철학은 명불허전이다. 눈치가 빠르지 않더라도 알겠지만 세 정상은 현시점의 정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 장사꾼임을 숨기지 않는 스무트가 포복절도를 보장한다.

그는 정치를 쇼 비즈니스라고 표현한다. 선사에게 막무가내로 핵 포기를 강요하며 “핵 하나 내놔. 그러면 내가 가져가서 쇼 비즈니스 제대로 할게”라고 윽박지른다. 선사는 경재보다 영어에 능통하며 평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 하지만 백두혈통으로 신격화된 그가 그런 농간에 쉽게 넘어갈 리 만무하다.

영국의 경험론과 독일의 관념론이 꽤 오랫동안 사상 세계를 지배했지만 미국은 존 듀이가 창시한 실용주의에 경도됐다. 그건 모든 가치를 실용성에서 결정한다. 듀이는 가치는 본질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적 유용성으로 가려지므로 사상은 도구라며 도구주의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절대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기에 도덕과 윤리도 변화한다’고도 외쳤다. 상대주의가 강하게 발현한다. 그런 면에서 스무트는 미국식 실용주의라기보다는 뉴욕에서도 노른자위에 위치한 70층 건물을 소유한 장사꾼일 따름이다. 외려 현실을 직시하고 양보와 타협을 할 줄 아는 경재가 실용주의자다.

경재는 스무트를 설득하기 위해 제국의 식민지로서 세계 최초로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으로부터 자주를 쟁취했으며, 존 로크의 ‘자연법이 관용의 원리’라는 정치철학을 받아들여 완성한 독립선언문과 헌법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미국을 칭송한다. 얼마나 실용적인 유용성의 찬미인가!

선사는 당연히 할아버지의 주체사상으로 정신무장을 했을 것이다. 주체사상의 좁은 의미는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 원리, 지도적 원칙으로 구성됐는데 어쩐지 프로타고라스의 인본주의와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를 곁눈질한 느낌이 든다.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주장이기 때문.

콩트는 인류의 정신사를 신학, 형이상학, 과학으로서의 사회학 등 세 단계로 파악했다. 철학과 사회역사, 신학과 형이상학의 관계는 정말 유비적이다. 게다가 사회과학과 지도 원칙도 그렇다. 콩트가 설립한 교회는 결국 김일성의 세상이 아니던가! 주체사상이 독재를 합리화하는 궤변임이 입증됐듯.

가까운 곳에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했던 러시아(구소련), 아시아 제패의 전초기지가 절실했던 미국, 과거에 신하의 나라였음을 잊지 못하는 중국, 대륙에 진출하고 싶었고 한때 이뤘던 일본. 그 열강들 사이에서 민족끼리 총을 겨눴고, 그 결과 허리가 잘린 한반도. 경재의 쿠키 영상을 놓치지 말 것.

“저는 진짜 통일이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얼버무리며 넘겼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말하겠습니다. 통일, 하시겠습니까?”라는 대사는 꽤 오랫동안 뇌리에서 맴돌 것이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우리의 소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서 ‘통일’로 바뀌었고 남북 모두 애창하는 희망가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과 정치인들은 과연 통일에 의지를 가졌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국론이 극도로 분열됐고, 국회는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이념 논쟁으로 이전투구하는 현실은 더 그렇다. 선사와 스무트가 서로 잘났다고 싸울 때 진우는 쿠데타에 성공하고, 미국 부통령은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 북측, 미국의 판단이나 바람과 달리 제 계산기만 두드릴 뿐이다. 이 일촉즉발의 플롯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데 그런 긴장감 사이에 유머를 끼어 넣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 명제는 역사적이다. 측지도, 간취도 필요 없는 직관적 수작이다!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