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심우장] 성북동의 한 후미진 비탈길을 오르면 작은 암자처럼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있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어 남향을 거부한 이곳은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주도했던 승려이자 민족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은거했던 집이다. 구도의 뜻을 담아 만해 선생이 직접 지은 택호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장의 현판은 만해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다.

일제에 대한 항거가 치열했던 1919년과 달리 1920년대와 1930년대, 수많은 지식인들은 하나 둘 변절했고 일제에 투항했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시인은 <님의 침묵>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님의 침묵(한용운 1926)

1933년에 지어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자그마한 목조 골기와집으로 구조는 단출하여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심우장은 독립을 위한 저항과 투쟁이 삶의 전부였던 만해 선생이 1933년 결혼을 하자 지인들이 마련해준 생애 유일한 집이었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곳 건너편에 자리 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1944년,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애를 마친 만해 선생. 면면히 이어졌던 그 절개만큼 성북동 골짜기 안쪽에서 심우장은 80여년의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심우장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68343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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