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화면 갈무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MBC 혹은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의 뚝심은 정말 대단했다.

지난달 11일 네이버 웹툰에 게재된 ‘복학왕’에서 20대 여성 인턴사원 봉지은이 40대 노총각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고 추측하게 만드는 내용 등으로 여성 혐오 논란에 휘말려 한 달간 ‘나 혼자 산다’에서 어정쩡하게 빠졌던 기안84가 지난 18일 컴백했다. 기안84가 우긴다고 복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적극적인 의지와 그에 대한 MBC 고위층의 암묵적 승인 혹은 찬동이 없인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논란이 불거졌던 당시 여론은 ‘복학왕’만 지적한 게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논란을 일으켰던 기안84의 인성을 거론했고, 그의 웹툰 게재 중지와 방송 출연 중단을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진입할 정도로 그에 대해 강도 높은 불만을 제기했다.

이를 의식한 듯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개인 사정’이라며 기안84를 녹화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레귤러 멤버에서 빼겠다는 공식 입장은 없었다. 즉 여론의 추이, 눈치를 보겠다는 속셈이란 게 이번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컴백’에서 드러났다.

예명에서 보듯 그의 나이 36살이다. 이 정도 나이에 사회적 경험, 그리고 웹툰 작가와 방송인으로서의 명성이라면 사회와 국민에 대해 적지 않은 책임감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유명세를 누리고 수입도 그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찼음이 지난 수차례의 논란을 통해 드러났다. 그에게 사르트르를 대입할라치면 아주 저급한 즉자적 존재에 머무를 뿐 초월적인 대자 존재의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기에 대타적 존재에 대한 털끝 만치의 배려나 고려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즉자 존재란 그저 자기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존재자다. 내면의 외화를 통해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냉정함이나 객관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으니 타자에 대한 존중이나 애타심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르트르를 거듭 거론하자면 의식은 ‘존재자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작용자’다. 철학적으론 감각과 인식의 모든 작용이고, 심리학적으론 깨어있는 상태에서의 자신과 현상과 형상에 대한 인식 작용이다.

이에 근거해서 지금까지 기안84가 일으킨 논란을 비춰보면 그의 의식은 결코 보편적이거나 타당하거나 명석판명한 쪽과는 거리가 멀어 굉장히 편재돼있음이 엿보인다. 조선시대로 되돌리면 어느 정도 합당함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첨단의 현대에선 시대착오적이다.

그건 이날 방송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박나래는 이시언을 향해 “두 분은 왜 이렇게 눈을 못 마주치냐”고 의아해했고, 이시언은 “어떻게 기안84를 대해야 할지 괜히 말 섞었다가 괜히 또…”라는 식으로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답을 내놨다. 눈치가 보인다는 뜻.

기안84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죽기 전까지 완벽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는데”라는 말로 뒤끝을 흐렸는데 여기서도 그가 여론에 완전히 승복해 완벽하게 반성했다고 보기 힘든 뉘앙스가 풍겼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이란 단어 자체가 패러독스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완벽한가?

그렇기에 부족하다는 표현 역시 어불성설이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벌어야 부족함이 없을까? 국내외 재벌들은 대부분 은퇴하기보다는 더 벌고자 더 열심히 일한다. 도대체 학식을 얼마나 쌓아야 부족함이 없을까?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었음에도 부족함을 느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던가?

도대체 얼마나 수양을 쌓아야 완벽한 인격이 될까? 그게 안 되기 때문에 니체는 신을 죽이고 차라투스트라를 부활시켜 초극의 존재를 추구하며 영겁회귀를 외친 것이다. 결국 기안84의 말투 속에서는 반성이라든가, 개진(改進)의 의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추론이나 분석은 어렵지 않다. MBC 고위층은 지나치게 공사다망해 한 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논란의 출연자 단 한 명의 생사여탈권 행사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할지라도 ‘나 혼자 산다’ 제작진에겐 꽤 고통스러운 숙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오만 혹은 기안84의 편견에 대한 찬동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실망감이다.

MBC의 오랜 캐치프레이즈는 ‘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기안84에 대한 여론을 보더라도 그가 국민의 좋은 친구와는 거리가 있음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지난 독재 정권 때와 달라졌음을 매번 강조하는 문화방송은 스스로 시청자를 무시하는 독재적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건 아닐까?

MBC는 KBS와 더불어 국영방송임을 강조하며 그들이 만드는 모든 콘텐츠의 주인이 국민임을 입버릇처럼 반복해왔다. 하지만 ‘독신 등 1인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 형태로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나 혼자 산다’의 의도와 결과물은 다른 듯하다. 최소한 기안84에 대한 관용만큼은.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사실성과 진정성이다. 아무리 ‘나 혼자 산다’가 다큐 형식의 예능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다큐 형식을 내세웠으면 최소한의 진정성은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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