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8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영국 출신 심령술사 리드는 마법서를 도둑맞은 후 자주 악몽을 꾼다. 죽은 딸 오드리를 부활시키기 위해 남편 제임스와 함께 바빌로니아의 저주받은 도시에 가서 고대 유적을 부수고 그 속에서 마법서를 찾아내지만 제임스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는 꿈.

로스토브 총경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연쇄적으로 살해당하자 좌충우돌 빈민가를 쑤시고 다니며 수사를 하고, 가닌 경위가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며 조력한다. 로스토브는 피해 여성의 사체 안에서 오각성이 그려진 달걀을 발견한 뒤 골리친 박사에게 자문을 구하던 중 리드의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리드는 이 연쇄 살인이 단순한 미치광이의 광기가 아니라 의식행위라고 분석한 뒤 오각성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녀는 희생자가 5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4원소를 더해 9명까지 나올 것이라고 확언한다. 하지만 그녀를 믿지 못하는 로스토브는 살짝 시험을 한 뒤 사기꾼이라며 수감한다.

유치장에서 환상을 본 리드는 바블류샤라는 건달의 문신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로스토브는 기지를 발휘해 바블류샤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가닌이 성급하게 총을 쏘고 그는 범인의 것이 확실한 시계를 남기고 죽는다. 로스토브는 시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예술 영화에서 강세를 보였던 러시아는 21세기 들어 상업적인 발달이 상전벽해 수준이지만 할리우드와는 톤이 다르다. 러시아의 상업 영화에선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봄직한 색깔의 중급 블록버스터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셜록 홈즈’를 보는 듯한 스릴과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대놓고 오각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인트로에서 거론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수메르의 인안나)와 밀접하다. 미의 여신인 그녀는 금성을 의미하는 한편 샛별의 여신이므로 출산 혹은 탄생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성은 일출 전과 일몰 후에 나타나고 태양 다음으로 밝고 아름답다.

이토록 태양에 도전하는 금성은 고대인들에겐 5개의 모서리를 가진 것처럼 보여서 오각성이라 불렸다. 기독교는 대천사 미카엘과 타락 천사 루시퍼라는 극과 극의 인물로 동시에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오각성은 성스러움과 소환을 의미하면서도 사타니즘에서 뒤집으면 염소, 즉 사악함의 표상이 된다.

시리얼킬러는 악마를 소환하려 하는가? 천사와의 전쟁 때 희생된 그 어떤 사탄을 부활시키려 하는가? 리드의 망자를 소환하는 심령술은 로스토브에겐 어쩐지 미심쩍다. 그래서 피해자의 반지라며 아내의 반지를 건넨 후 그녀가 사기꾼이라는 걸 입증하지만 그녀는 다음 피해자를 정확히 짚어낸다.

리드는 자신이 어떻게 심령술사가 됐고, 어떤 결혼생활을 했는지 로스토브에게 고백한다. 그러자 그 역시 그녀에게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상을 고백한다. 그가 그녀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려는 건 어쩌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모든 게 부정적이기 때문.

기독교적이면서도 특히 영지주의적인 냄새가 매우 짙다. 988년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가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공인함으로써 러시아에는 정교가 자리 잡았다. 이 러시아 정교에는 토속신앙, 슬라브 문화, 동방의 정서 등이 녹아들어있다. 교회 지붕의 수호 괴물 가고일을 드러내는 게 종교적이다.

영지주의적 신비주의는 리드에게서 차고 넘친다. 조작인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영적 능력인 것 같기도 한 그녀에게선 신비로운 기운이 강하다. 로스토브가 그런 그녀를 자꾸 끌어내리려 했던 건 ‘제 눈의 들보’(허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리드의 고백에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된다.

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인 만큼 시종일관 음산하고 축축한 분위기다. 형사 추리물 특유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재미가 풍부하고, 범인의 정체와 범행의 목적을 유추하는 지적인 유희도 충만하다. 단,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와 달리 유머는 없다. 11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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