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로그’는 B급 판타지 블록버스터 ‘솔로몬 케인’(2009)으로 국내 관객에게 알려진 마이클 J. 버세트 감독의 최신 액션 영화로 역시 B급 정서가 강하다. 샘(메간 폭스)은 뭣이든 해결해 주는 용병단체 로그에서 한 팀을 이끈다. 그녀는 납치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지사 딸 아실리아 구출 임무를 맡는다.

아실리아는 남아공 특정 지역을 장악한 자람의 무장 세력 알샤바브에 잡혀있다. 자람은 불법 사업을 마음대로 펼치기 위해선 주지사를 제어해야만 하기에 그 딸을 납치한 것. 샘 일행은 침착하게 자람의 아지트에 침투하는데 계획과 달리 아실리아 외에 납치된 소녀 2명도 함께 구출해 도주한다.

로그에선 헬기 한 대를 지원하지만 자람의 바주카포에 격추된다. 자람의 화력이 의외로 거세고, 보호해야 할 민간인도 3명으로 는 데다 현지에 익숙지 않은 샘 팀이 수세에 몰린다. 희생자가 하나, 둘씩 늘고 낭떠러지까지 몰린 그들은 절벽 밑의 강으로 뛰어내린 뒤 인적 없는 농장으로 피신한다.

그들은 연료를 찾아 발전기를 가동한 뒤 무전기를 통해 조직에 연락을 하지만 동틀 녘까지 구조대를 보내지 못한다는 입장이라 5~6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 그동안 자람은 부하들을 총동원해 샘 일행의 뒤를 쫓아 시시각각 턱밑까지 추격한다. 그런데 샘의 부하들이 미지의 존재에게 희생되는데.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내달리는 초반의 액션은 시작부터 정신 못 차리게 만들 만큼 강렬하다. 그동안 공포나 SF 등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던 버세트 감독이 이토록 전쟁 액션에 뛰어나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이 시퀀스가 지나가면 감독의 주특기인 스릴러 형식으로 펼쳐진다.

하필 남아공이 배경이고, 무시무시한 용병들의 대장이 여자다. 그 이유가 있다. 시나리오는 감독이 딸인 각본가 이사벨과 함께 썼다. 수의사가 돼 아프리카에서 봉사할 것을 꿈꿨던 감독은 청소년기부터 동물병원 조수를 했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커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선진화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인종차별 문제가 엄존하고, 밀렵 문제도 심각하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일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듯하지만 신분격차를 조성하고, 그건 부익부빈익빈으로 더욱 악화된다. 로그는 그 자본주의가 만든 대표적인 돈의 노예를 뜻한다.

얼핏 보면 로그는 ‘좋은 나라’고 알샤바브는 ‘나쁜 나라’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알샤바브가 아무리 불법단체라지만 그들을 단죄할 주체는 현지 검찰, 경찰, 군대다. 아무리 무고한 인질을 구한다지만 알샤바브에 총질을 해대는 로그의 행동 역시 불법이다. 자람의 주지사 비난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아실리아의 친구 테사가 자신도 구해달라고 하자 샘은 “좋은 일하다 죽어봐야 개죽음”이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부하들에 의해 결국 함께 구출한다. 만약 테사만 구출했다면 그런 위험에 부닥치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희생된 일부 대원은 기꺼이 영광스럽게 받아들인다. 인간성의 존엄과 숭고함.

그래서 “계획이 바뀌면 결과도 다르다”는 인과론을 펼친다. 샘은 물질만능주의자였다. 대원들은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이번만”을 외쳤지만 샘이 부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사나이의 피리에 홀린 하멜른의 쥐 떼처럼 또 샘을 따라갔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목적이 오직 돈이라는 비극의 참극!

로그의 신조는 ‘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일 것이다. 그건 알샤바브도 마찬가지. 그들은 ‘전쟁은 만물의 왕. 노예도 자유인도 만든다’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잘못된 사상과 자본주의를 접목했다. 하지만 남아공의 실상과 아실리아의 태도가 그들을 바꾼다. 총 대신 니체의 망치를 들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인과론은 ‘모든 존재가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니체의 관점주의로 유전한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던 공포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광포한 행동을 납득하는 것. 아실리아는 남성에 주눅 들지 않고 리드하는 샘의 적극성을 배워 변한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그녀의 표정도 변전이다.

“평생 반항해본 적 없지만 이젠 싸우겠다”며 결연히 뛰쳐나와 알샤바브 한 명을 죽이는 것. 로그의 흑인 파타는 남아공 혹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그는 마사이족으로 어릴 때 알샤바브에 가입했지만 철들자 탈퇴를 선언해 그 대가로 눈앞에서 가족과 친척을 잃고 미국 해병대를 거쳐 로그에 왔다.

그건 가난하고 미개한 아프리카 대륙의 다수의 토착민들의 현실, 그리고 그들과 백인 혹은 자본주의와의 관계적 현실을 웅변한다. 마사이족에게 사자를 죽이는 성인식이 있지만 파타는 “생명을 죽여 남자다움을 입증하는 건 옳지 않다”며 거부했었다. “사자가 우리 죽여도 할 말 없다”는 의미심장하다.

한 대원은 “1000년도 더 된 미신을 지키기 위한 부적을 만들고, 약을 만들겠노라 그 많은 동물들을 죽이다니”라고 한탄한다. 밀렵꾼과 부자는 돈과 이기심에 눈이 멀어 동물을 죽인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정당화하는 궤변으로 동물들을 희생시키고 심지어 재미로 죽인다.

지난해 남아공에서 사육된 사자가 1만 2000마리다. 호랑이가 멸종위기종이 된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 그 종의 서식지를 침탈한 이유도 있지만 건강과 취미를 위해 무차별 살상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희귀해지자 이제 부자들이 사자 1마리에 10만 달러를 낸다는 대사는 비참, 무참하다. 2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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