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해공 신익희 가옥] 조선시대 이래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뜻한다. 좁은 골목골목마다 옛 정취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소박한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1년 9개월간 거주했던 가옥이다.

1954년 8월~1956년 5월까지 1년 9개월간 해공 신익희 선생이 거주한 가옥
1954년 8월~1956년 5월까지 1년 9개월간 해공 신익희 선생이 거주한 가옥

3․1 만세운동에 가담한 후 상해로 망명했다 서울로 돌아온 신익희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얻은 집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으로 ㄱ자형 사랑채와 ㄴ자형 안채가 만나 ㅁ자형 안마당을 이루는 형태
193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으로 ㄱ자형 사랑채와 ㄴ자형 안채가 만나 ㅁ자형 안마당을 이루는 형태
'안채'= 건넌방-대청-안방-부엌-마루방-문간방
'안채'= 건넌방-대청-안방-부엌-마루방-문간방
사랑채= 작은방-대청-툇마루-큰 방
사랑채= 작은방-대청-툇마루-큰 방

해공 신익희 선생이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이 집은 1950년대 혼란스러운 역사의 기억들이 새겨진 장소였다.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선거 유세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선거 유세

“이 정부야말로 과연 우리 정부다,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신의와 이와 같은 대세가
우리 정부에 오도록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강 백사장에서 행한 정견연설’(1956.5.3) 중

당시 신익희 후보의 한강 유세장에는 3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장기집권을 위한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에 분노하며,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고 있었다.

“사상 최대의 인파”
“민주당 정견 발표회 한강 변서 대성황”
- 동아일보 (1956.5.5)

당시 동아일보 기사(1956.5.5.)
당시 동아일보 기사(1956.5.5.)
당시 이승만 장권에 맞선 신익희 선거구호(못 살겠다 갈아보자)
당시 이승만 장권에 맞선 신익희 선거구호(못 살겠다 갈아보자)

한강 유세를 끝내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신익희 선생.

그러나 그날이 집에 머문 마지막 순간이었다.

주변에서는 당분간 지방유세를 중지해야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신익희의 호남 유세를 결정한다.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선거 유세 가던 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 및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5.15 선거에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했다가
선거 유세차 호남지방으로 열차 여행 중
심장마비로 5월 5일 새벽에 서거한
故 해공 신익희씨의 장례식이
5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 대한뉴스 제84보

1956년 5월 23일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1956년 5월 23일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신익희 선생 서거 열흘 후인 1956년 5월 15일, 국민이 직접 선거에 참여해 최다수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선출하는 직접 선거방식을 채택했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후보의 3선이 확정됐다. 유효투표가 투표자 총수의 79.5%에 지나지 않아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유권자 185만여 명은 故 신익희 후보에게 추모 표를 던졌다 .

무효는 185만 6818표, 기권은 53만 9807표였는데, 무효표와 기권표가 많았던 것은 신익희 후보의 추모 투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효는 185만 6818표, 기권은 53만 9807표였는데, 무효표와 기권표가 많았던 것은 신익희 후보의 추모 투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해방 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독립된 나라에선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해공 신익희 선생. 그러나 그는 결국 새로운 시대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60년 전 신익희 선생 서거 후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던 효자동 가옥은 이제 지난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안채 사민제
안채 사민제
​안채 내부 전경​
​안채 내부 전경​

“인류의 역사는 지금 민주주의에로 줄기차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흘러가는 주류에 어기어 반대를 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심지어 매음을 뱅뱅 도는 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 같이 흐르고 말 것입니다.“
- 신익희‘대한민국헌법 발포 1주년 기념일에 3천만 동포에게 고함’(1949) 중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내무차장·외무차장 등을 지낸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훗날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사망 1개월이 경과한 1956년 6월 서울특별시 수유동에 안장되었다.

- <해공 신익희 가옥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 네이버TV : https://tv.naver.com/v/1301887
☞ 유튜브 : https://youtu.be/K47wIEsaCpM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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