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한 매체에서 안정된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2세 경영인 자리를 마다하고 연예계에 투신해 성공한 연예스타를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써 눈길을 끌고 있다. 예전에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트래픽 사냥에 의한 광고수입 증대에 급급한 요즘 같은 인터넷 매체 환경에선 나름대로 생각하고 노력한 기색이 엿보이는 글이다.

이 기사에 소개된 이들은 배우 차인표 이필립 이서진 가수 로이킴 싸이다.

▲ 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댓글엔 안정적인 기업 CEO의 자리를 마다하고 연예계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공을 잡은 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칭찬이 자자하다. 당연하다. 하지만 무작정 그들을 개척자 및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신격화는 것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뇌를 기준으로 좌뇌인과 우뇌인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몸의 오른쪽 부위를 지배하는 좌뇌가 발달하면 논리적, 계획적, 이성적인 편이어서 산수 수학 과학 등에 강하다. 이성적이어서 현실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 감정 제어를 잘 하고 보수적 규칙적이다. 아인슈타인이 있다.

왼쪽을 지배하는 우뇌형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상적이어서 나무보단 숲을 보는 특징이 있다. 즉, 기존 질서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거나 창조하고자 노력하고 이성보단 감성을 믿는다. 당연히 예술가가 많다. 음주와 노는 데 강하다. 대표적인 인물로 피카소가 있다. 물론 이게 불변의 법칙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즉 전술한 연예인은 우뇌형일 가능성이 높거나 최소한 그런 정서의 소유자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 모든 사람은 각자의 꿈과 목표가 다르다. 삶을 살아가거나 즐기는 방법도, 나아가고자 하는 과정과 목적지도 같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행복추구권이란 권리가 있고 그게 안정적으로 부유한 삶이라는 공통점으로 귀결될지라도 모두 한 가지 방법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요리 혹은 식당 운영이 적성과 만족도에 부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야구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은 그게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이기에 거기에 나름의 충족을 느끼면서 4년제 대학을 나왔음에도 비정규직으로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에 맞춰 사는 사람보다 일당 15만원을 받는 데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차인표 등은 연예인이 안 됐다면, 더 나아가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보단 더 부유하게 살았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2세 경영인으로서 기업가가 되는 것도, 그보단 돈은 덜 벌지언정 그냥 부모의 도움을 받아 주변사람들보단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거부하고 부모는 상상도 못 했을 연예인의 길을 선택했다. 그건 그들만의 행복추구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지 그들이 남다른 탐험가정신으로 전인미답의 불모지를 개척하고자 하는 선구자의 고행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연예인으로서 성공할 경우 기업인에 못지않은 부와 명예가 보장된다. 둘째,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은 수익금의 수준만 제외한다면 기업인보다 자유로워 스트레스를 덜 받고, 법원에 설 확률이 더 적으며, 일 자체가 더 즐겁다. 왜냐면 기업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만 연예활동은 그 자체가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모든 연예인에게 물어보자. 하는 일이 불쾌하고 힘들어서 하루빨리 돈을 많이 벌어 다른 일을 하겠냐고? 연예인이란 이름을 이용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 사기사건에 연루되는 이가 적지 않은 현실은 예술가적 연예인과 생계형 연예인이 확연히 구분되는 좋은 예다.

연예인을 논할 때 ‘끼’를 빼놓을 수 없다. 가수 작곡가 연주인 등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했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 했고, 설령 부모의 강요에 의해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일 것이다. 특히 음악성은 타고 난다. 아니면 그것 외엔 따로 잘하는 것도, 잘할 수 있는 것도, 잘할 엄두가 나는 것도 모두 없든가.

음악은 타고나지만 연기력은 하면서 늘려가는 것이긴 하지만 배우 역시 거의 태생적 ‘끼’ 때문에 한다고 보는 게 무난하다. 배우가 아닌 일반인에게 연기를 시켜보면 연기력을 떠나 부끄러워서 아예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끼’ 때문이다.

즉, 기업가를 거부한 연예스타는 안정적인 부를 마다한 게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을 거부하고 감성에 의거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행사했을 따름이다.

싸이는 ‘엽기가수’로 데뷔했다. 대다수의 연예인은 멋있게 보이려 한다. 가수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부잣집 도련님’인 싸이는 충분히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비호감을 오히려 강조한 엽기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도전을 선택했다. 그것 역시 남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끼’에 근거한다. 그걸 불건전한 데카당스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굉장한 좌뇌인일 것이다.

과거를 거슬러 존경받고 추앙받는 음악가나 미술가를 보면 그들은 생전에 하나같이 자아실현에 대해 고뇌하고, 삶의 카오스 속에서 방황했으며, 현실적으로 가난에 시달리다가 요절했다. 고흐는 고갱을 존경해 공동체 생활 안으로 끌어들이지만 고갱은 고흐가 자신과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인 데다 우월하다는 자존심 탓에 그 공간을 떠난다. 그러자 고흐는 고갱에 대한 집착을 못 이겨 자신의 귓불을 자른다. 그가 정신병을 앓는 미치광이였던 것은 맞지만 그건 열정적 예술혼에 근거한 것이지, 현실에 대한 불만에 이성을 잃거나 악마에 영혼을 판 것은 아니었다.

30대 초반에 간경화로 요절한 김현식은 비록 일찍 이혼한 뒤 어린 외아들을 키우며 외롭게 살았지만 스스로 외로웠던 것이지 결코 대중의 보편타당한 시각의 기준 아래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그에게는 자신과 아들을 세상 그 누구보다 아껴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노래에 열광하는 수백만 명의 열성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자아와 싸웠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아쉬움, 그리고 자아와 삶에 대한 번뇌의 몸부림은 그의 음악성을 깊고 넓게 성숙시켰지만 반대로 그런 공허함에 쉴 새 없이 마셔댄 술은 그의 영혼은 살찌웠을지 몰라도 육체는 갉아먹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동료 강인원 권인하 등과 비오는날수채화 활동을 펼칠 때 그는 이미 눈에 황달이 와서 죽음을 예고했지만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술을 끊지 못했다. 좌뇌인이라면 진작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과 보약으로 몸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도자나 기업 총수(좌뇌인)는 개개인이 삶에서 생존본능에 근거한 최소한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만의 여유공간을 확보해주려 하지만 예술가(순수예술가든 대중예술가든)는 생존본능 이상의 다른 차원의 행복과 만족을 대중과 함께 즐기고 누리고자 한다.

전술한 연예인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싸이는 분명히 그렇다. 그는 최근 미국 연예매체 마이퍼스트클래스라이프가 공개한 ‘유명해지기 전 이미 부자였던 스타’ 10명 중 8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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