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이수정의 아름서재] ‘먹방’은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다. 시청자는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맛있게 음식을 먹는 유튜버의 모습에 빠져든다. 슈퍼마켓의 진열대, 한 집 건너 하나인 통닭집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푸드 포르노’에 빠져 영양 과잉상태일 때, 세계 인구의 3억 명 이상은 기아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겪어왔다. 기근은 전쟁, 질병과 더불어 인류에게 가장 큰 재앙이다. 굶주림은 인류가 지닌 근원적 공포 중 하나다. 대기근의 가능성은 아직도 인류를 노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으로 근래 부쩍 잦아진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 무역 제재의 가능성이 당장이라도 대기근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베이츠’ 책자 표지와 저자 이아타. 고즈넉이엔티 출간.  
‘베이츠’ 책자 표지와 저자 이아타. 고즈넉이엔티 출간.  

소설 ‘베이츠’는 대기근과 식량 전쟁 이후 찾아온 미래 사회에 대한 암울한 디스토피아이다. 또 인공지능의 지배와 유전공학의 폐해에 대항해 연대하는 인류에 대한 보고서이다. 식량 생산에 독점권을 지닌 자본이 인류를 통제할 때, 벌어질 위험성을 예고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2048년 미래의 식량난을 책임질 곡물은 옥수수다. 오랜 구황작물인 옥수수는 지금도 밀, 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로서 인류의 허기를 책임지고 있다. 대기업 베이츠는 ‘유전공학의 힘으로 완벽한 영양을 갖’추고 ‘기상 이변과 병충해에 강하고 알곡이 튼튼하고 생산량을 극대화한’ 단 하나의 완벽한 옥수수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옥수수 ‘알파콘’은 과연 인류에게 성경에 나오는 만나와 같은 기적의 음식이 될 수 있을까. 

‘베이츠가 만든 자연은 완벽했다. 기업이 창조한 강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강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인공으로 재현한 자연은 종종 원래보다 완벽해 보인다. ‘탤로’라 불리는 노동자들은 땀 흘려 옥수수를 재배한다. 미래 사회에서도 옥수수 재배는 인간의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베이츠는 인공지능과 그것이 만든 시스템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된다. 

그러나 동생의 실종에 의문을 품은 태오가 베이츠에 잠입하면서 시스템에는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태오를 포함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상한 일들에 눈뜨기 시작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나르키소스는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나르키소스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Skynet)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기 이른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기업의 소유주이자 나르키소스를 발명한 베이츠는 나르키소스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긴다. 자아를 지니게 된 자신의 발명품에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배신당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은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란 없어. 영원히 달려가는 거야. 팔십 년 전 아이오와의 옥수수밭에서 맨 처음 유전공학을 실험했던 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였다면, 지금 나는 그걸 넘어섰어. 실험 그 자체가 목적이랄까. 어디까지 창조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거지.’(본문 158쪽~159쪽)

인간은 과연 신과 같은 창조주가 될 수 있을까. 자본이 주는 이윤보다 더 마음을 끄는 지적 호기심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의 오만과 기술이 결합할 때, 존엄성을 갖춘 존재로서의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분과과학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철학은 그에 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지식 융합과 통섭적 사고가 기술 발전에 따른 윤리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아직 요원하다. 베이츠의 말처럼 과학 기술은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폭주한다. 과학 기술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재한 채로, 미래 사회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 놓여 있다. 베이츠의 붕괴 과정이 보여주듯, 완벽해 보이는 기술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무너질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소설 ‘베이츠’는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대해 경고한다. 소설은 줄곧 서로 대비되는 상징들이 등장한다. 사막의 낮은 불덩이처럼 뜨겁고 서늘한 밤은 비밀을 품고 있다. 노쇠하고 뒤틀린 육체는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이용하고, 인간으로서 최고의 지성을 지닌 마스터는 인공지능 나르키소스를 질투한다. 유전공학으로 탄생한 동물 병기가 하늘을 날 때, 자연 상태의 나비들이 아름답게 날갯짓한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소설은 독자들을 깊은 충격에 빠뜨린다. 수면에 드러난 얼음덩이가 빙산의 일각이듯, 지표 아래에는 거대하고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소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현대인에게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라고 속삭인다. 촘촘하고 세심하게 배치된 복선은 소설의 결말에서 그 함의를 드러낸다. 젊은이들이 왜 ‘탤로’라 불렸는지, 베이츠가 그토록 우수한 젊은 육신을 원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소설 ‘베이츠’는 설득력 있는 짜임새와 허를 찌르는 상상력, 기술 혁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 등 훌륭한 SF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을 갖추고 있다. ‘베이츠’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 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세상에 나왔다. 

저자 이아타는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해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심훈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우수상, 신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작품집으로 ‘사월에 내리는 눈’, ‘월요일의 게이트볼’이 있고 브런치북에 ‘청바지와 사랑’을 게재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공부한 작가의 작품답게 ‘베이츠’는 웅장한 장면 묘사와 뚜렷한 스토리텔링 등 영상 매체로 각색되기에 좋은 조건을 지녔다. 소설을 읽고 나면, ‘뉴슈가’를 넣어 할머니가 삶아주던 옥수수 냄새가 마냥 그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수정 작가
이수정 작가

[이수정 작가]
1973년산. 이화여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투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소설 쓰기보다 읽고 분석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재능이 있음을 깨달은 행복한 서평가이자 독서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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