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어려서 경험한 부모의 모습은 우리의 영혼에 뿌리 깊게 각인되기 마련입니다. 흔히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야” 또는 “우리 엄마처럼 살기는 싫어”라고 말하지만, 자식들에게 있어서 소위 ‘잘난 부모’는 뒤따라가기 어렵고 ‘못난 부모’는 추월하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도 결혼하기 전부터 또는 결혼해서도, ‘아버지 같은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어머니와 같은 아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던 당신 속의 부모 모습을 당신의 아이에게 보여 주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를 이해하기란 누구에게나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렸을 때는 물론 장성한 후까지도 이해되지 않아 더러는 답답하고 더러는 미웠던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제 상담실을 찾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저에게 아버지는 참으로 편치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저희 형제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라도 목숨까지 걸 만큼 자식을 끔찍이 아꼈지만, 당신의 부인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을 드러낸 것은 대개 불콰하게 취하셨을 때뿐이었고, 그나마도 짓궂게 표현을 해서 어머니에게 핀잔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자식들에게도 애정 표현을 한 적은 드물어서, 평소에는 일상적인 대화도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숨겨진 애정을 짐작하면서도 때때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왜 술기운을 빌지 않고는 유쾌하실 수 없는 것일까? 저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다짐했습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제 아버지는 노후에 장성한 자식들이 마련한 외식 자리에도 선뜻 응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이 어렵게 번 돈을 왜 외식하는 데 쓰냐며 거절하셨고, 마지못해 응하셨을 때에는 이미 다른 식구들의 흥이 다 깨진 후였습니다. ​마치 ‘난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 없어’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저는 ‘아버지는 왜 작은 즐거움조차 편하게 누리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답답해했습니다. 다시 한 번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 분은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셨는데, 의사인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연히 오래 살아서 너희들 고생시킨다.”며 병원에 가시는 것조차 무척 미안해하셨습니다. 마치 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고 도와주어야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식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그런 태도가 자식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셨을까요? ​저는, 정말 부끄럽게도,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한동안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서운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정신과 의사가 되고 또 심리분석과 가족치료를 공부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는 저 자신의 부모와 가족관계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부모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 해야겠지요.

저의 아버지는 독자로 태어났는데, 부모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친척 어른이 거두어 길렀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아버지에게 애정이라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감정이 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를 믿고 편하게 의지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사랑은 위태롭고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아내에게조차 ‘외면당할지도 모르는 모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식들에 대한 원초적인 희생이 그분을 지탱해온 힘이었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무엇인가를 받는다는 것이 그분에게는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내나 자식들과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그토록 어색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분의 삶을 이처럼 축약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하여튼 저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했습니다.​

대단히 외람된 말이지만, 어느 면에서 지금의 저는 이미 그 분을 넘어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가끔 예전의 아버지를 마주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제 마음과는 다르게 아내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제 아이들에게 강한 아버지로 보이려고 하는 제 태도에서, 제가 벗어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저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나는 과연 내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 조건 없이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내 목숨과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입니다.

​그 질문 앞에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사회적으로는 조금 나아 보일지 몰라도, 가족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제 아버지에게 한참 못 미치고 있는 것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토록 절박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부디 앞으로도 그런 과제가 닥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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