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최근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외부적인 조건들보다 결혼 당사자 간의 애정을 최우선으로 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객관적인 장점이 많지 않더라도 나를 좋아하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에도 함정은 숨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첫 번째 함정은 결혼하여 살다가 자신의 마음이 변하거나 상대의 마음이 변하면 상당히 빠르게 이혼을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좋으니까 결혼했고, 싫어져서 헤어진다는 식입니다. 얼핏 상당히 ‘쿨’해 보이지만, 함정에 빠진 것일 수 있다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외부적 조건보다는 자기 자신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상대의 ‘성격’과 ‘잘 통하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성격이 맞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두 사람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상대가 자신이 좋아하는 성격 유형에 속한다는 것일까요? 그러면 반대로 성격이 맞지 않다‘는 것은 성격 유형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또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 것이어서, 성격이 맞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면 일찌감치 헤어지는 것이 좋을까요?

이들은 흔히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면 성격 차이에서 오는 불화가 적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혼하는 부부들의 가장 흔한 이유가 ‘성격 차이’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그러나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되어 결혼했지만, 막상 살아보면 의외로 다른 점들이 발견되어 당황하고 힘들어 하는 경우들이 아주 많습니다.

또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성격 차이 때문에 싸우는 일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성격이 다르다면 한 사람이 양보하여 빨리 끝낼 수도 있을 텐데,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은 서로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느라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대단히 복합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이라서 자기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물며 상대의 성격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또 흔히 말하는 것처럼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업 직원으로 성공하려면 외향적인 사람이 유리할 것 같지만, 높은 실적을 올리는 영업사원들 중에는 의외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지만, 그 대신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잘 파악할 수 있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적절하게 만족시켜 주고 결과적으로 고객의 신뢰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격은 타고난 면이 있지만, 환경이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변하기도 합니다.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어느새 적극적이고 붙임성 있는 사람으로 바뀐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활발하고 자신만만하던 사람도 몇 차례의 위기를 겪다 보면 의기소침한 사람으로 바뀌곤 합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성격이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결혼하기 좋은, 소위 ‘잘 맞는 성격’이란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굳이 결혼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성격적 특성을 제시하자면, ‘유연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성격이 유연하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거나 마음이 약한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굳은 신념과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만 유연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치 심하게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근육과 관절이 경직된 사람은 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유연성이 있는 사람은 적절하게 자기 몸을 움직여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들은 자신이 마음이 불편해지면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퍼부어 주변 사람을 질리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이 틀리다는 것이 확실해도 억지 고집을 부리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워서 자기 주장을 고집합니다. (TV 방송의 토론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에는 즉각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직장을 그만 두거나, 장난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자칫 격한 몸싸움으로 이어지곤 해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들은 그런 후에 “그래도 내가 뒤끝은 없잖아”라며 사과나 반성 대신 변명만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는 일들은 수없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유연성이 풍부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을 마주치더라도 그 사람과 대립적인 관계에 빠지지 않습니다. 상대는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자신의 기대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당연히 실망하고 화가 나지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감정을 추슬러서 평상심을 회복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만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개인적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려고 하지 않으며, 실망했다 해서 쌀쌀맞게 돌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면서도 상대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신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강한 책임감에서는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결혼할 상대의 성격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상대방의 성격적인 장단점보다는 성격적 유연성을 확인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성격이 자신과 잘 맞을지를 연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성격적 유연성을 키우기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들을 가진 상대를 선택하여 결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결혼 전에는 문제 삼지 않던 상대의 특성들을 결혼 후에는 잘못인 것처럼 지적하고 바꾸려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만, 자신도 상대 못지 않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미처 모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격에 유연성이 있다면 설령 두 사람의 성격과 취향이 달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완고한 관점에 갇혀있지 않아서, 서로의 다른 점을 통해서 건강한 자극과 활기를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연한 성격을 가진 사람 또 이런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결혼 생활에 이르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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