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은 불이익을 강요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이러한 부조리를 더 이상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당신이 남편에게 가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런 노력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인들의 이런 의도가 정당한 것이라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큰 부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때문에, 아직 많은 남편들이 가정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선은 아내들이 갈등을 피하여 보다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실 왜 꼭 여자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느냐고 따진다면,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이런 수고는 상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당신들 후손의 행복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고 하면 너무 옹색한가요?)​

​아무튼 이런 경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남성의 내면 깊숙이 박혀있는 ‘자유로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어느 정도는 용납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가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것 뿐 아니라, 남편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는 것까지 다 포함합니다. ​

이 말에 당신은 "결혼을 했으면, 애 아빠가 되었으면 당연히 해야하는 거 아냐? 누구는 이러고 사는게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라고 하실 건가요?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건강하고 더 멋있게 하려는 것이 잘못이라고요?"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 맞는 말이 효과를 내기는커녕 도리어 끝나지 않은 싸움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를 용납하지 못하면 연애 때나 결혼 생활 내내 크고 작은 싸움이 계속될 수 있고 불행한 결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으로서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서 남편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서 또 남편과 아이들이 잘 지내며 좋은 기억을 가지게 해주고 싶어서 등 여러 좋은 이유로 남편을 달래보고 더러는 강하게 권하기도 한다는 점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남편은 그런 것조차 자신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염두에 두시라는 겁니다.​

사실 당신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은 결혼과 가정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러는 거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한평생 살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남편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꼬치꼬치 캐묻거나 심지어 이혼위협까지 하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없고, 잡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남편은 더 벗어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남편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남자의 속성이라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여 살았다면 오히려 거꾸로 별 것에 다 참견하며 끊임없는 잔소리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견디기가 좀 낫지 않을까요?

이전 글에서 저는 결혼한 남편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들은 가족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하는 이야기는 그 내용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들에게 했던 이야기고 제가 지금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때로는 정말 담판을 지을 각오를 하고 따져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남편이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도록 잠시 허락해주는 것이 좋다는 점입니다.

남편과 좋은 관계를 맺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싶은 당신의 꿈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렇게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당장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조급해하지 말고 당신이 조금 더 참기를 권합니다. 사실 그저 참기만 하려면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그저 참는 것을 사랑으로 미화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도 참으면서 다음 두가지 면에서 노력하기를 권합니다.

우선 남편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거나 외롭더라도 혼자서 참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랑을 기대했던 당신에게는 뜻밖에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럴 수 있어야 성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물론 그렇게 해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 부인들은 더러 쇼핑중독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또 이전 글에서 지적했듯이 자녀들의 학업성적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게된 부인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비록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가족 모두 불행해지는 것에 이들의 문제해결능력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위 자기계발이나 봉사활동 등 다른 건전한 방법들을 통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부인들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남편이 얼마나 잘못 했는지와는 관계없이 말씀드리는 것이니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재촉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편하도록 그 사람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를 바라고, 그를 통해서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남편이나 내 자녀가 나를 실망시키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됩니다.이것이 가능하다면, 설령 때때로 다투게 되더라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훈련은 나아가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 닥쳐올 ‘홀로서기’를 해야 할 상황에 대한 준비도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제 말이 "남편은 반쯤 남이라고 생각해"라는 항간의 속설과 같은 말로 이해되신다면, 그건 제 의도와는 다릅니다.

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술적인 면에서 당신이 할 역할에 대해서 조언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밤늦도록 연락없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라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당연히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당신이 확인 전화를 하는 것보다 남편이 먼저 알려오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편이 늦는다는 전화를 해왔을 때에는 “뭐 하느라고 들어오지는 않고 연락만 하고 있는 거야? 한 시간 내로 오지 않으면 문 잠글 거니까 그리 알아!” 처럼 위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 많은 남편들은 귀가를 서두르기보다는 전화기를 꺼놓는 쪽을 선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신 “걱정했는데 연락 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제는 왔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 보고 싶으니까” 처럼 상대가 듣기 좋게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늦더라도 먼저 전화하는 것을 꺼리지는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차지 않을 줄 알지만, 우선은 그 정도만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 헌 날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요? 당신의 억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혹시 이런 설명을 덧붙이면 좀 받아들일만 해질까요? ​

성경에는 ‘네게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이 정말 잘못을 뉘우칠까요? 우리 예상과 다르게 ​성경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을 조르지 않는 것은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게 되는 것, 즉 심리적인 어린이 상태에서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숙해가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남편도 조금은 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그 남편은 '당신이 졸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삼아 덧붙이자면, 모든 남자와 여자가 위의 설명처럼 나눠지지는 않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는 아내도 있고, 가정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남편도 분명히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데에 정상적이니 비정상적이니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원래 사람에게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가 공존하는데, 대부분의 남편에게는 남성적 요소가 그리고 아내들에게는 여성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많을 뿐입니다.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서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과 염려하는 것이 대단히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부부싸움으로 자주 나타나는데, 그저 싸우는 것으로는 이런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만성적인 불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부부 간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면 적어도 치명적인 불화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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