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남자의 결혼이 자기 중심적이라면, 여자의 결혼은 현실 중심적입니다. ​남자가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아내를 기대하는 것과 달리,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가정을 함께 만들어 갈 남편을 원합니다.​

​여자들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거야”라는 말 속의 ‘사랑하는 사람’은 위의 모든 점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살기에 걱정 없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다 주고 가정을 둘러싼 여러 일들을 함께 고민하며 세심하게 처리해줄 만큼 가정적인 면까지 갖추고 있는 그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자신만을 사랑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그런 남자는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만큼이나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생물'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결혼 후 남편에게서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실망감은 종종 배신감을 포함하여 나타납니다.​

부인들이 남편에게 “당신은 뭐 하러 나하고 결혼한 거야?”라고 내뱉는 말에는 자신의 기본적인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 결혼 생활과 남편 전반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아내의 기대가 무너지는 것은 남편의 늦은 귀가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내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사를 남편과 함께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만약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같이 못 먹게 되었다면, 적어도 퇴근 후 하루 지난 이야기를 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 수만 있어도 크게 불만 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분명한 이유로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이어지다 보면, 아내는 이 모든 것이 남편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 탓으로 뭉뚱그려집니다. 그래서 마침내 “내가 왜 이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내가 이 남자를 너무 모르고 결혼했나 보다” 하는 후회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많은 남편들이 “내가 바람을 피워, 돈을 안 벌어다 줘? 그냥 스트레스 좀 풀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 건데 뭐가 그리 불만이야?” 합니다. 남편은 자신이 없는 동안 ‘가정을 지켜주었던 어머니’와 같은 아내를 바라는데, 그것은 결혼 전까지 ‘자기 집’에서는 그렇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는 ‘자신과 함께’ 가정을 지키는 남편을 바라기 때문에,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하는 남편에게서 (외도나 가정폭력 못지않은) 좌절을 겪게 됩니다.

​화가 난 아내는 남편과 싸워서라도 남편의 생활 습성을 바꾸어 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만 지쳐갈 뿐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부분의 아내들은 남편을 일찍 집으로 불러들이기를 포기하고, 자녀들 교육에 집중하기로 결심합니다.

(잠시 딴 애기를 보태자면, 우리나라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어머니들의 높은 관심은 부부 관계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는 아내들의 보상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편들을 일찍 귀가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남편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배신감으로 변해 굳어지다 보면 남편은 밖에서 돈 벌어다 주는 사람, 아내는 가정을 돌보는 사람으로 역할이 나뉘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부부의 역할 분담에 의해서 겨우 지탱되는 가정이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될까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들이 깔려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소한 문제로 이혼에 이른다거나 온순하던 아이가 갑자기 문제 행동을 보이는 가정들을 조사해보면 이런 문제들이 오래도록 잠복상태로 이어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부가 된 남녀라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제가 각 부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 글에 올리겠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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