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상반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그런 상반된 심리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상대방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할 때 나 없으면 한시도 못살 것 같던 사람이 변했다고 의심하고 내가 귀찮아진 거냐며 서운해 합니다. 자신도 혼자이고 싶은 적이 있으면서도 상대가 나를 벗어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아서 아직 혼자 있고 싶다는 충동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이런 변화가 더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다면 왜 나와 결혼은 했나?’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섭섭함을 넘어서 치열한 부부 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결혼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고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하나’는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별 변함없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하되 어디까지나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해가는 것이 결혼입니다. 따라서 결혼 생활을 만족스럽게 유지하려면 때로는 하나로 마음을 합쳐 함께 움직이고 때로는 제각기 떨어져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자신에게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함께 있고 싶은데 상대는 따로 있고 싶다고 하고, 자신이 혼자 있고 싶을 때 상대가 나를 요구하는 일종의 ‘엇박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엇박자를 처음으로 경험했다면 당연히 당황스럽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엇박자가 나타날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가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결혼을 누릴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부부가 모든 면에서 같아지는 것이 행복한 결혼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과 따로 있는 것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가끔은 회식이나 단체 여행으로 늦을 때가 있고 때로는 수 주일의 장기 출장을 가는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나로서는 아내가 없는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밖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일찍 들어와서 ‘혼자 있음’을 즐기면서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미 25년씩이나 함께 살았으니 아내가 없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식사를 차려 먹고 집안 정리도 하면서 내가 없을 때 아내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려 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때로는 ‘언젠가 죽음이 다가오면 더 오래 헤어져 있게 되겠지!’라는 감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항상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고, 짧은 동안이나마 헤어짐을 다시 만날 날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의 기다림을 채우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가 미처 모를, 쓸쓸하지만 즐거운, 나만의 시간인 것입니다.

좋아하는 상대와 같이 있고 싶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조금 떨어져 있고 싶어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상대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하거나 자신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혼자 있고 싶어지는 심리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사실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본능은 숨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그런 상반되는 마음이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재촉하지 말고 때로는 홀로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여기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의 고유성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돌아온 그 사람이 이제는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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