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4일 젝스키스는 새 앨범 ‘THE 20TH ANNIVERSARY’ 발매 기념 사인회에서 3000여 명의 팬들을 끌어 모았다. 1997년 데뷔해 2000년 해체됐지만 16년 만인 지난해 재결합한 뒤 순풍에 돛단 듯 탄탄대로를 달린다.

이들의 성공적인 재결합은 전형적인 추억을 파는 마케팅의 성공일까? 일시적 기현상일까? 사회분위기의 반영일까?

1992년과 이듬해 서태지와아이들과 듀스가 나란히 데뷔하며 국내 가요계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2~3년 전 이승환과 신승훈이 변함없이 탄탄한 발라드 계보를 이었고, 김건모가 소울 발라드 댄스 등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가운데, 서태지와아이들과 듀스가 합류함으로써 이뤄낸 쾌거다.

여기에 룰라와 투투라는 비주얼그룹이 라이벌구도를 형성함으로써 100만 장 판매고는 더 이상 기록이 아니라 히트의 기준이 됐다. 그러나 1995년 1996년 듀스와 서태지와아이들이 나란히 갑작스럽게 해체하자 대다수의 청소년팬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방향감각을 잃었다.

▲ 사진=sbs 인기가요 방송화면 캡처('젝스키스' 데뷔 20주년)

그걸 바로잡아준 조타수는 바로 HOT와 젝스키스였다. 더불어 SES와 핑클이 걸그룹이란 신세계의 개척자로서 청소년을 넘어서 ‘삼촌팬’까지 만들어낸 아이돌그룹의 전성시대라는 새로운 황금기를 여는 데 크게 공헌한다.

연예제작사의 기획 상품인 아이돌 그룹은 싱어 송 라이터인 이승환 신승훈 김건모 등과 달리 ‘자기만의 음악’이 많이 부족하다. 대부분 아예 없다. 여기에 ‘아이돌’이란 정체성까지 더해 나이가 들면 동력을 잃기 마련. HOT와 젝스키스가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아직 인격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서적 자립심이 부족한 청소년에게 우상의 은퇴는 기대심리의 상실이자 성장 나침반의 고장이다. 그 패닉 상태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지만 트라우마는 길게 남기 마련. 청소년기이기에 다른 시기와 차이가 있다.

▲ 사진=sbs 인기가요 방송화면 캡처('젝스키스' 데뷔 20주년)

젝스키스의 재결합에 옛 팬들이 재결집하는, 누구나 다 아는 보편타당한 이유다. 그러나 MBC ‘무한도전’-‘토토가’를 통해 뮤직 신에 다시 뛰어든 1990년대의 스타 중 재도전의 성공이 지속된 가수는 거의 없다. 심지어 처음 3인조로 재결합한 터보 역시 ‘반짝 인기’에 그쳤다. 젝스키스가 가진 변별성이다.

그 비결은 당연히 젝스키스의 남다른 존재감이다. HOT는 데뷔곡 ‘전사의 후예’를 통해 대놓고 서태지와아이들의 후예임을 자처했다. 그러자 곧 이어 데뷔한 젝스키스 역시 ‘학원별곡’으로 ‘교실이데아’를 잇는다는 것을 드러냈다. 두 그룹은 서태지와아이들에 대한 청소년들의 방향타를 잃은 선망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하면서 자연스레 라이벌구도를 형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체적인 인기의 지속력과 더불어 HOT에 대한 향수마저 끌어안았던 게 성공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HOT의 재결성은 수많은 팬들의 촉구의 바람과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다소 아쉽지만 그 열망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는 대리만족의 페르소나가 바로 젝스키스인 것이다.

더불어 ‘커플’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당시 댄스그룹의 히트곡 중 아직도 애청 혹은 애창되는 노래는 흔치 않다. 왜냐면 기획에 의한 댄스곡은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플’은 댄스와 발라드의 딱 중간 템포에 발라드적 멜로디를 지향하는 곡이다. 가사도 쉽다. 젝스키스가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커플’이 덩달아 차트에 재진입하는 게 좋은 증거다.

▲ 사진=sbs 인기가요 방송화면 캡처('젝스키스' 데뷔 20주년)

은지원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젝스키스의 재결성 전까지만 해도 그는 개그맨 혹은 예능인으로 오인 받을 정도로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펼쳤다. 이날 팬 사인회에 20년 전의 팬들이 아이를 안고 등장한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새 청소년 팬들은 다소 의아할 수 있다. 신곡의 위력과 ‘커플’의 지구력 덕도 있지만 젝스키스란 다소 생소한 이름에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는 멤버는 누가 뭐래도 은지원이었던 것이다.

물론 YG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능력이 큰 힘을 발휘한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재결합과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선 사실상 이재진이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여기에 더해 멤버 각자의 절실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과거의 스타’다. 젝스키스가 그들의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했고, 여러모로 가장 큰 도움을 준 ‘직장’인지 알기에 이젠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YG 및 주변의 모든 조력자들에게 정성을 다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대중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밑바탕이 된 성공의 근간엔 조금 특별한 의미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는 20세기의 끝자락이다. 젝스키스는 그런 세기말을 뒤흔든 대중음악과 스타의 아이콘이었다. 당시는 세기가 바뀌는 교차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문명과 정서와 과학 등 인간의 모든 삶의 패턴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교체된 과도기이기도 하다. 더불어 IMF 구제금융이란 국가부도위기를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이겨낸 격동의 시기다.

젝스키스는 겉으론 단순한 아이돌그룹의 1세대일지 몰라도 대중의 마음속엔 서태지와아이들 듀스 HOT 등과 더불어 정서적 경제적으로 상대적으로 풍요롭던 과거의 상징이자 마지막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노스탤지어인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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