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이 국내영화계의 기대치에 비해 내수가 부진한 데 반해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은 뒤 해외판매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25일(이하 프랑스 시각) CJ 해외사업팀은 ‘불한당’이 이미 내달 개봉을 확정지은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8개국에 판매됐다고 전했다. 영화는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돼 24일 공식 상영회를 연 뒤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해외시장에서의 약진을 예고한 바 있다.

해외사업팀은 매우 높은 판매가격은 영화의 품질에 대한 고평가인데 마케도니아 같은 영화 애호가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에까지 고루 팔린 게 더욱 고무적이라는 분석. 분위기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칸에 소개된 한국영화 중 완성도와 흥행의 양면에서 꽤나 선풍적이라는 자평.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디지털시대인 지금이야 징크스란 게 깨진 지 오래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마지막인 20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대체로 그 공식은 맞아떨어졌다. 영화계의 대표는 ‘언론이 극찬하면 흥행은 반대’란 것. 그러나 그건 메타포와 알레고리로 한껏 치장한 철학적 예술성과 천박한 상업주의가 첨예하게 갈라섰던 시절의 얘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가 세월이 흐른 후에야 제대로 평가받았지만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개봉 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게 좋은 사례.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각종 커뮤니티의 발달로 비교적 정확한 정보교환이 가능한 이 시대엔 경험론 이전에 인식론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여지가 충분하다. 아니 충만하다. 그래서 ‘불한당’의 출발은 썩 괜찮았다. ‘겟 아웃’과 1, 2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할 때 예의 ‘애국심’의 개입까지 예상됐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게 바로 변 감독의 SNS 글. 최근 흥행의 첨병이 되는 커뮤니티가 되레 독이 된 것.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핸디캡은 주연배우 설경구였다. 최근 ‘서부전선’과 ‘루시드 드림’이 연달아 흥행에 참패했다. 게다가 재혼의 그림자 속에서 ‘참새’들에 의해 퍼진 ‘소문’으로 이미지가 심하게 훼손된 상황.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그런 태생적 약점을 보완해준 것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그의 연기 방식과 톤, 그리고 캐릭터 창조력이었다. 또 그와 대척점에서 묘한 방어와 고착의 호모섹슈얼리티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 임시완의 연기력의 일취월장이 보완 이상의 큰 기능을 했다.

뭣보다 결정적인 건 변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비주얼 창조력과 함께 각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심리묘사에 집중한 연출력이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해 점점 폭력과 범죄와 배신에 무감각해지는 다섯 주인공들의 피안(현실)과 차안(해탈)의 왕복질주를 훔쳐보는 관객의 폭력성의 관음증(절시증)심리를 잘 간파한 감독의 상상력의 승리다.

심지어 기존의 히트작 혹은 문제작에서 여기저기 짜깁기했다는 혹평조차 예술적 미메시스(모방)로 승화되던 분위기. 그렇게 좋던 흐름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이 촉발한 엄청난 기대심리로 인한 경제활성화 조짐의 물살을 타고 가속도를 낼 듯했으나 그 중요한 초기 바람몰이에 정작 변 감독이 브레이크를 잘못 건드렸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여기서 대중은 두 가지 명제를 놓고 혼란을 겪는 듯하다. ‘극장구경 가자’에서 출발한 영화관람 문화는 ‘배우가 누구냐’와 ‘감독이 누구냐’로 선택이 엇갈리고, 대부분 기존 관람자의 선험적 가이드나 언론의 ‘흥행돌풍’이란 프로파간다(선전)에 지갑이 반응했던 게 통상적인 관행.

사실 감독을 보고 관람을 결정하는 문화는 가위질과 ‘금지’가 만연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부 영화학도 관계자 그리고 마니아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던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이젠 관객들의 평균수준이 영화전공 대학생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봉준호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등이 그 흔한 상업영화 감독과 공존할 수 있는 이유다.

변 감독은 이제 37살의 ‘청년’이다. 만약 그가 군복무를 필한 대학졸업 후 어렵게 중소기업에 입사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셋집 하나 마련하고 비슷한 처지의 또래 처녀와 결혼해 아이 한, 둘쯤 낳아 매달 급여수령일마다 계산기에 매달려 사는 ‘보통사람’이었다면-이념을 떠나-그런 발언을 할 무모한 용기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영화가 꿈의 공장이라면 감독은 그 공장장이다. 현실감각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작경험이 없다면 가능성의 수치는 극대화된다. 그의 지난 대선후보 지지성향을 봤을 땐 급진적이다. 상상력과 진보성은 영화를 예술로 승화하기엔 긍정의 모멘텀이지만, 냉혹한 현실은 폭압적 지배에 굴복하거나 혹은 타협의 편에 서서 합리성을 추구한다.

국민은 지난해 말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가 위기를 맞아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문 대통령의 80%가 넘는 지지율이 웅변하는 기대감과 희망에 부풀어있는 상태다. 그 분위기에 아이스버킷을 한 원인은 좋게 말하면 아직 치기어린 나이 탓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편협이 화근이었다.

누구나 대선 때 지지한 후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당선된 데 대해 불평하고 불만을 품을 순 있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찍은 영화의 흥행여부와 연관 지은 변 감독의 발언은 결국 자신과 배타적 관계인 자본주의의 천박한 상업주의와 결탁한 이념도착증에 다름없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객관적으로 중요한 건 영화라는 문화·예술적 유기체다. 변 감독의 시나리오와 총지휘가 이념과 캐릭터를 만들고, 투자사와 제작사가 돈을 들여 뼈대를 세운 기초공사를 했다면, 배우와 스태프는 혈관에 피를 공급함으로써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 혼과 노고가 변 감독의 말 한 마디에 의해 더 많은 대중이 평가하거나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는 건 예술·문화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변 감독에 대한 뉴스를 접하지 않았을 리 없는 유럽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영화만 봤지 변 감독의 인격이나 성향은 평가기준에서 배제했다. 그들은 홍상수와 김민희의 ‘스캔들’을 관심 있게 보는 건 맞지만 그것과 영화를 연계하진 않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13세 소녀 강간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꽤 오래 연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게 유럽인 특유의 개인주의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적 관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프랑스의 지성 또는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주지주의와 똘레랑스(관용)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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