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중독노래방’(김상찬 감독, 리틀빅픽처스 배급)은 한국 상업영화의 정형화된 구조와 다소 거리가 있다. 관객의 눈을 호강하게 만드는 강력한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도 없다. 특히 흥행의 첨병이라 할 액션도, 멜로도, 최루스토리도, 강력한 반전도 없다. 그러나 묘한 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중장년의 홀아비 성욱(이문식)은 산업화의 광풍이 지나간 한적한 동네 한 건물의 지하에 ‘중독노래방’을 차리고 두문불출한 채 하루 종일 ‘야동’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술에 취한 남성들은 도우미를 찾지만 ‘보도 도우미’가 이 먼 곳까지 올 리 만무. 건물주인이 밀린 월세를 독촉하자 성욱은 ‘숙식제공’이란 도우미 모집 포스터를 문 앞에 내건다.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수상한 남자가 오면 신고하라고 당부한다. 젊은 여자만 골라 죽이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 용의자가 전국을 긴장케 하고 있다는 것.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무표정한 20대 여자 하숙(배소은)이 들어온다. 말수가 적은 그녀는 매일 똑같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잘 씻지도 않고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채 역시 성욱처럼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손님 방에 들어간 그녀는 노래도 안 부르고 같이 놀아주지도 않아 성욱은 손님들에게 불평을 듣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하기 일쑤.

외려 손님이 더 떨어지자 성욱은 곧 인터넷이 끊어질 지경이라며 하숙을 압박하고, 게임중독자인 그녀는 깜짝 놀란다. 그 후 갑자기 손님들의 태도가 돌변해 매우 만족해하고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때 프로 도우미라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자 나주(김나미)가 나타난다.

그녀는 뛰어난 노래실력과 무대장악력으로 손님들을 쥐락펴락하며 매출증대의 쌍끌이에 나선다. 손님들 사이에 나주와 하숙의 서비스는 ‘요란한 방’과 ‘조용한 방’으로 나뉘어 소문이 번져가고 성욱은 기쁜 와중에도 초코파이와 담배와 술 등이 자꾸 없어지는 기이한 현상에 의심하다가 창고 안에서 범인을 발견한다.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그는 나이가 짐작이 안 가는 청각장애인 점박이(방준호). 때마침 나타난 경찰은 그가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던 동네 주민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와 딸을 과속질주한 오토바이에 의해 잃은 뒤 정신이 나갔다고 설명해준다. 그렇게 넷의 기묘한 동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실 하숙이 손님을 끌어들인 비결은 유사 성행위. 성욱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한다. 이를 놓고 나주가 본격적으로 문제 삼고 나선다. 만약 단속이 나올 경우 자신까지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손님 문제로 나주는 하숙과 자주 티격태격하며 갈등한다.

이들 중 유일하게 밖에 따로 숙소를 두고 있는 사람은 나주. 그녀는 퇴근 때마다 식구들에게 밖에 나가서 한잔 하자고 부추기지만 왠지 그들은 외출을 꺼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나주가 자신이 살 테니 외식을 하자고 부탁하자 식구들은 드디어 따라나선다. 나주의 생일 전야였고, 이를 눈치 챈 하숙이 케이크까지 마련한 것.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식당에서 즐겁게 케이크를 자르고 술잔을 부딪치는 이들에게 옆 좌석의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점박이를 보곤 “내 애완견의 밥을 훔쳐간 놈”이라며 막무가내로 폭행을 휘두른다. 이에 식구들이 나서서 말리지만 남자의 일행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술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때 남자의 일행 중 한명이 하숙을 가리키며 “집단성폭행당한 동영상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여자”라고 소리치면서 파티는 최악의 절정에 다다른다. 과연 주인공들은 어떤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기기묘묘한 미술과 조명 등을 더한 미장센이다. 노래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비주얼과 등장인물들은 기괴하고, 음산하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하다. 그래서 영화는 스릴러의 형식으로 시작된다.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성욱은 성욕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종일 헤드폰을 장착한 채 야동을 시청하다 잠이 든다. 그러면 잃어버린 아내와 딸을 보는 ‘악몽’을 꾼다. 그의 목적은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숙은 성욱의 거울이다. 집단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는 이드와 에고를 게임이란 무의식 속에 가둔 채 죽은 듯 사는 게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동안 창고 안에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점박이는 더하다. 듣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반사회적 인물이다.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리다’는 억지의 편견에 의해 차별받고 피해를 입어야 하는 적지 않은 장애인의 소외된 고통을 대변한다.

유흥업소의 접대부 생활에 이골이 난 프로 도우미라고 자부하며, 실제 손님을 갖고 놀 줄 아는 나주는 그러나 사실 하숙처럼 한없이 나약한 여자다. 자신이 가장 믿어야 할, 자신을 가장 아껴야 할 사람으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강하게 보여야만 하는 가면밖에 없었다. 정체를 드러내면 더 심한 상처를 입을 테니. 그래서 이들은 모두 각자의 페르소나다.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주인공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편견이, 관습이, 제도가, 그리고 이기심이 만든 피해자다. 노래방은 양극단의 사회적 구조다. 이 좁고 삭막한 도시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어울려 건전하게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소통과 화합의 놀이동산인 동시에 성에서 소외된 남자들이 억눌린 성욕이나 판타지의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는 하수구이기도 하다.

성욱은 될 수 있으면 죽으려 하고, 나주는 악착같이 살고자 한다. 하숙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하고, 점박이는 좀비인 듯 살아간다. 노래방을 찾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허전하다. 그들에게 유사성행위는 동물적 욕구의 해소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아직은 쓸모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인증샷’일 수도 있다.

▲ 영화 <중독노래방> 스틸 이미지

직접 성행위는 불가능한 대신 관음증과 마조히즘에 탐닉하는 늙은 부자나, 노래방에서 나체로 노는 스릴을 즐기는 중년의 커플까지 모든 손님들의 공통된 약점은 외롭다는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에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낯익지 않은 두 여배우의 연기력은 놀랍다. ‘트로트계의 싸이’라는 가수 겸 배우 방준호의 연기는 더 놀랍다. 이런 영화에 투자하는 배급사가 있다는 점도 신기하다. 스릴러-서스펜스-판타지-잔혹동화 등으로 변주해가는 감독의 솜씨도 좋다. 다만, 천편일률적인 상업적 구조에 익숙한 다수의 관객들의 취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 106분. 청소년관람불가. 6월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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