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임호테프는 BC 2650년에서 2600년 사이 이집트 제3왕조 조세르 왕 때 살았던 학자로 왕을 재외하곤 유일하게 사후 신(건축과 공학의 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아낙수나문(안케세나멘)은 이집트 제18왕조의 제10대 왕 아크나톤(아멘호테프 4세, 재위 BC 1379∼1362)과 네페르티티 왕비 사이에 태어난 셋째 딸. 커서 아버지의 왕비가 된다. 아크나톤이 죽고 그의 이복동생인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오르자 다시 그의 정비가 됐다.

세티 1세는 몰락한 18왕조의 뒤를 이은 19왕조의 2대왕(재위 BC 1290∼1279)으로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 전혀 다른 시대의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아 아낙수나문을 세티의 정부로 설정한 것도 모자라 임호테프를 왕의 정부와 정분이 나는 승정원으로 설정한 어이없는 영화가 바로 ‘미이라’(1999)다.

1편의 흥행성공에 힘입어 리롄제(이연걸)를 끌어들인 3편까지 내달리며 돈은 벌었지만 평단의 혹평과 식자들의 불평은 피해갈 수 없었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마블스튜디오의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세계 영화시장을 휩쓸고 그 라이벌인 DC코믹스의 멀티버스가 뒤따라오는 형국에 유니버설픽쳐스가 고전 몬스터 영화들을 리부트한 프로젝트 다크 유니버스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첫 시리즈 ‘미이라’(알렉스 커츠만 감독, UPI코리아 배급)가 6일 개봉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편의 전작들의 유치함은 잊고, 부정적인 선입관은 떨쳐버리는 게 바람직하다. ‘스타 트렉: 다크니스’와 ‘나우 유 씨 미’ 1, 2편을 연출한 커츠만 감독의 세계관은 크리스토퍼 놀란에 가깝고, 언제나 그렇듯 톰 크루즈의 선택은 탁월했다.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공주 아마네트(소피아 부텔라)는 아버지로부터 왕위계승을 약속받지만 새 왕비로부터 왕자가 태어나자 꿈은 물거품이 된다. 그녀는 악의 신 세트의 단검으로 왕, 왕비, 왕자 등을 살해한 뒤 연인을 희생양 삼아 세트를 부활시키려는 의식을 치르던 중 충신들에게 잡힌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벌로 산 채 매장된 그녀는 한과 저주로 죽지 못하는 악마가 돼 그렇게 봉인된 삶과 죽음의 세월을 지낸다. 서기 1127년. 본래의 취지를 잃고 이집트를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른 십자군 기사들이 런던 외곽 지하에 묻히고 한 기사의 관에 ‘세트의 단검’의 생명줄인 보석이 함께 매장된다.

현재. 중동 분쟁지역에 투입된 영국 용병 닉 모튼(톰 크루즈)은 사실 부하 베일과 함께 혼란을 틈타 유물을 도굴해 수익을 챙기며 산다. 전날 원나잇스탠딩을 한 고고학자 제니 할시(애나벨 월리스)의 가방에서 고대유물 지도를 훔친 그는 베일과 함께 이라크 최대 격전지인 모술에 간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반란군과 교전이 발생하자 지원을 요청하고, 아군 군용기의 폭격으로 반란군이 철수한 곳에서 거대한 이집트의 무덤을 발견하자 때마침 아군들과 제니가 줄줄이 현장에 나타난다. 그들은 무덤 안에서 수상한 기운이 감도는 석관 하나를 발견한 뒤 수송기에 싣고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베일러가 미쳐 상관 등 동료들을 살해하자 닉이 사살한다. 비행기는 까마귀 떼의 습격을 받고 런던 외곽에 추락하는데 닉은 하나뿐인 낙하산으로 제니를 살리고 자신은 추락사한다.

그러나 시체 안치실에서 닉은 상처 하나 없이 부활한다. 석관에 비밀이 있음을 감지한 두 사람은 비행기 추락지역을 수색하다 무덤에서 깨어난 아마네트를 만난다. 아마네트는 사라진 ‘세트의 단검’과 보석을 찾아내 합치시킨 뒤 닉을 희생양 삼아 세트를 불러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정체불명의 용병들이 나타나 두 사람을 구하고 아마네트를 생포한다. 닉이 눈을 뜬 곳은 각종 몬스터를 잡아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려는 비밀조직 프로디지움의 본부. 리더 헨리 지킬(러셀 크로우) 박사는 하이드란 악마적 인격을 동시에 소유한 자다.

닉은 아마네트의 저주에 의해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상황. 아마네트를 도와 영원불멸의 악의 신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을 운명. 아마네트는 지하에 잠든 십자군 시체들을 불러내 프로디지움을 습격한 뒤 결박을 풀어 활개를 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이드로 변한 헨리가 닉을 죽이려 하는데.

약간의 유머가 있고 전반에 살짝 몽환적일 뿐 시종일관 어둡다. 영화는 니체의 니힐리즘(허무주의)과 그를 이은 실존주의의 대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근거로 한다. 기존에 일반적으로 인정돼온 이상, 도덕규범, 문화, 생활양식 등의 모든 가치관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니힐리즘은 생철학에서 실존주의를 낳았고, 하이데거는 이를 이어받아 크게 발전시켰다. 심지어 카뮈는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봤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아마네트는 실제 역사에 없는 가상의 인물이다. 영화 속 대사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공주 하나가 사라졌다”며 “그게 그 시대의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고 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아마네트 닉 베일 등은 모두 니힐리즘의 산물이다.

아마네트는 현실을 부정하고 가장 부조리한 친족살인을 저지르지만 그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부활을 믿었기에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축제로 여겼다. 다만 부활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죽은 자들의 신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같은 신 아누비스에게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과해야 했다. 만약 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 무게가 가벼울 경우 괴물에게 먹힘으로써 부활할 수 없게 된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그래서 영화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며 “무덤은 통로일 뿐”이라고, 또 “과거는 영원히 묻힐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과연 아마네트가 꿈꾸는 자신과 세트의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

가장 돋보이는 주제는 희생이다. 사랑을 믿지 않고 정의는 엿하고 바꿔먹은 듯한 닉은 갑자기 제니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면서 급변한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낙하산을 제니의 등에 묶어줌으로써 그녀를 살린 뒤 죽음에서 부활한 닉에게 제니가 고맙다고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때 닉은 “두 개인 줄 알았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건 어쩌면 부활한 자신을 가리켜 생명이 두 개인 줄 알았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 여기에 이 영화의 교묘한 알레고리가 숨어있다. “괴물이 괴물을 막는다”는 이이제이의 동양적 정서가 깃든 대사가 있다. 이는 신과 인간 그리고 악마라는 세 존재의 경계에 대한 철학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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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타락한 전직 천사(신)고, 인간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뜬 토우에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다. ‘신=악마’ ‘사람=신’라는 아이러니컬한 등식의 성립이다. 그렇다면 귀납법에 의해 ‘사람=악마’라는 등식마저 가능해진다. 바로 이 영화의 결말이다.

영화는 SF 오컬트 스릴러에 좀비스타일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았다. 메이저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니 스케일 또한 부족함이 없다. 다크 유니버스의 출발을 알리는 예고장치도 훌륭하다. 다만, 설정된 닉의 캐릭터는 크루즈보단 왠지 조니 뎁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옥에 티. 110분. 15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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