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군함도> 크랭크업 현장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내달 26일 개봉되는 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제작사는 류 감독의 아내 강혜정 씨가 대표로 있는 외유내강이다. 바깥살림(감독)은 남편이, 안살림(경영)은 아내가 한다는 것과 더불어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강하다는 원뜻의 중의적 회사명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화제 속에서 호재와 악재가 겹치고 있다. 수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갖고 ‘필독서’ 운운하는 데 힘입어 흥행폭발의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우익세력이 작품을 폄훼하는가 하면 한 누리꾼의 ‘보조출연자 혹사’ 글이 딴죽을 걸고 있다.

지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군함도’의 보조출연자였다고 주장하는 한 누리꾼이 “촬영현장은 그야말로 시나리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배우들의 강제징용이었다”며 하루 12시간 넘게 촬영을 했고,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주연배우에 비해 음식과 대우 등에서 극단적인 차별을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이에 수많은 대중이 감독과 제작사에 비난을 쏟아냈지만 곧바로 반전이 일기 시작했다. 외유내강 측은 재빠르게 반박하는 공문을 돌렸고, 이를 돕듯 다른 보조출연자와 스태프 등이 반박하는 글을 보탠 것. 스태프였다는 한 누리꾼은 “촬영 시작부터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특별한 무리 없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고정 단역 출연자 중 한 명이었다는 누리꾼은 아예 계약서를 첨부해 표준계약서를 증명하며 “힘든 날도 있었지만 편한 날도 많았다. 주연배우들처럼 많은 급여는 당연히 못 받았지만 2주 이상 급여지불이 미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감독님이 ‘오랫동안 정말 고마웠다. 너희들 때문에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고 격려해주셨을 때 데뷔한 단역배우로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썼다.

주연배우 및 중요한 조연배우, 그리고 총감독 및 카메라감독 등 각 파트별 지휘자들과 이를 제외한 말단 스태프와 보조출연자들의 대우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영화 한 편에 10억 원에 가까운 개런티를 챙기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1회 촬영에 10만 원 안팎의 인건비를 겨우 받아내는 엑스트라도 많다. 그것마저 떼이는 경우 역시 없지 않다. 스태프의 경우 말단은 연봉이 100~200만 원일 수도 있다.

▲ 영화 <군함도> 촬영 현장

그러나 그건 표준계약서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의 주먹구구식 관행이 만연되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은 각 스태프와 보조출연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단체와 이들의 손을 들어주는 정부부처의 행정방침 때문에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영세 제작사들의 볼멘소리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는다.

‘열정 페이’는 노동력착취의 동의어다. 이념을 배제하더라도 시장원리에 의거할 땐 오너가 큰 수익을 올리면 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노동자에게 합당한 급여를 제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고용주와 피고용자 사이엔 영원히 화합하기 힘든 자기합리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고용주는 자신의 자본으로 꾸민 회사에 노동자의 일자리를 마련해줬기 때문에 자기의 기준에 따라 급여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회사가 흑자로 잘 돌아가고 고용주가 배를 불렸기 때문에 지금의 급여보다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그 간극은 영원히 메우기 힘들다. 왜? 자본주의 체제니까. 대척점에 서있던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세계의 헤게모니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지만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번의 논란을 야기한 고용주의 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다.

‘부당한 대우’ 운운한 누리꾼은 논란이 일자 금세 글을 삭제했다. 일각에선 익명성을 들어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뒤이은 스태프와 보조출연자의 반박하는 글도 힘을 보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유내강과 류 감독 측에 곱지 않는 시선을 보냈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아직도 완벽하게 개선되지 않은 연예콘텐츠 제작현장의 ‘말단’들의 부당한 처우문제가 존재한다는 데 기인한다. CJ E&M이라는 대기업의 한 정규직 PD가 자살할 정도라면 일용직 노동자의 더욱더 열악한 환경이 충분히 예상된다.

일단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봤을 땐 외유내강의 무죄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말단’과 일용직의 처우개선은 아직 요원하다. 그 이유는 제작사 쪽에 있기보다는 자본에 있다고 보는 게 영화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말단’과 일용직의 열악한 현실은 일부 제작사의 ‘횡령’ 탓도 있지만 대부분 투자사의 일방적인 ‘갑질’이 제작사의 운신의 폭을 줄인 데서 기인하기 마련이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스타와 무명배우, 기술자와 초보자의 엄청난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없는 영원한 숙제이자 한계다. 특히 요즘처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제작시스템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에선 ‘말단’이나 일용직이 설정된 제작비를 초과하는 관행을 벗어난 인건비를 요구한다면 CG 등의 과학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으로 대처할 것이다.

주연배우와 보조출연자의 음식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리우드의 경우 스타의 계약서는 책 한 권 분량이다. 호텔부터 세끼 식사 메뉴는 물론 물까지 자세하게 지정되는 게 정상이다. 스튜디오가 보조출연자에게 그런 대우를 해줄 리 만무하다. 부자와 빈자의 밥상이 같을 리 없다. 자본주의니까.

결국 영화의 사이즈 대비 투입되는 인원수와 처우에 대한 투자사의 영화적 이해가 우선되는 게 답이다. 블록버스터라면 당연히 제작비에 상응하는 사람들이 매달리는 게 바람직하다. 독립영화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 영화 <군함도> 촬영 현장

류승완은 그가 만든 영화의 제목대로 이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현재야 흥행감독이지만 그 역시 쌈짓돈을 털어 찍는 독립영화의 길을 걸어왔다. 블록버스터를 처음 찍는 것도 아닌 그가 많은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모를 리 없다.

부정적 누리꾼은 류 감독이 주연배우들만 챙겼을 뿐 자신은 홀대했다고 했고, 긍정적 누리꾼은 스타 감독 스태프 보조출연자 모두 한데 어울려 밥차에서 밥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고 했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이겠지만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결과가 어쨌든 그게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류 감독은 많은 스타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몇 안 되는 스타감독 중의 하나라 캐스팅에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현장에서 주연배우를 우선 챙기는 건 감독으로서 아주 당연한 의무다. 여기에 더해 말단 스태프와 무명의 보조출연자까지 두루 챙긴다면 인성이 훌륭한 감독이고, 완벽한 프로페셔널이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현재 대한민국은 외교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드 배치 압력의 미국, 그에 반대하는 압박의 중국, 그리고 미국에 동조하는 가운데 위안부 독도 등 역사와 영토 문제로 어깃장을 놓는 일본 등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때 일본의 우익세력에게 ‘군함도’는 큰 위협이고, 우리 민족에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호재다.

CJ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기’ 식의 안전점검 차원에서 외유내강은 물론 모든 제작사들의 인건비 지급 현황을 촘촘히 챙길 일이다. 더불어 모든 배급사들과 연계해 그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는 체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일이다.

만약 외유내강이 ‘무혐의’로 판명될 경우 ‘혹사’를 주장한 누리꾼에 대한 법적인 조치도 고려해볼 일이다. 왜냐하면 이 중차대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역사를 바로잡자는 영화에 헛소문을 퍼뜨려 흠집을 내려했다면 그 ‘혐의’는 ‘노동력 착취’와는 차원이 다른 민족적·국가적·역사적 중범죄이기 때문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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