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감독 포토 다이어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감독 김기덕(57)이 여배우 폭행 혐의로 화제에 올랐다. 여배우 A(41)가 김 감독을 폭행과 강요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는데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일선 경찰서로 내려 보내지 않고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그만큼 사안이 중차대하다는 의미다.

A는 2013년 개봉된 김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 촬영 초기에 주연을 맡았었다. 그러나 그해 3월 촬영장에서 김 감독이 감정이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는가 하면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는 바람에 출연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촬영장을 떠난 그녀는 변호사를 찾아가 법률 상담을 받았지만 영화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 고소를 포기했다고. 그러나 정신적 상처에 고통을 겪다가 결국 올 초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정을 거쳐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선 것.

김 감독 측은 각 매체를 통해 “뺨을 때린 건 맞지만 폭행신의 연기지도였고, 시나리오에 없는 베드신을 강요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 김기덕 감독 포토 다이어리

김기덕은 홍상수와 함께 세계 유력 영화제에서 알아주는, 독립영화 성격의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이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드문 편이다. 그나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기간이 짧으며 큰돈을 들이지 않는 연출스타일이기에 의외로 경제적 부담이 적다는 게 영화계의 상업적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홍 감독은 김민희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제 그 비난의 화살은 김 감독에게 쏠리고 있다. 이런 법적 다툼까지 가야했을 만큼 김 감독의 잘못이 컸을까? 과연 촬영장에서 감독과 배우의 ‘갑을’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마지노선일까?

베드신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감독이 제작까지 겸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지금처럼 촘촘한 계약서가 없었다. 시나리오에 없던 베드신도 감독이 현장에서 갑자기 여배우에게 지시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리 제작자와 감독이 과한 노출신 촬영을 약속해놓고 여배우에게만 감췄다 현장에서 억압적으로 강제하거나 감언이설로 회유해 목적을 달성하는 사례도 있었다.

▲ 영화 <뫼비우스> 스틸 이미지

하지만 21세기 영화제작 현장에서 주연배우가 불편하게 여기는 장면을 강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독립영화의 경우 환경적으로나 감독의 성향의 특성상 시나리오가 갑자기 바뀌는 케이스가 전혀 없을 순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여배우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장면을 억지로 강행군하는 건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배우가 기꺼이 찍어도 예술이 될까 말까한데 억압에 의해 찍고 거기서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외설이다.

A와 김 감독의 주장이 각자 다르다면 촬영 현장의 증인이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다. 이는 검찰의 몫이다. 문제는 김 감독도 인정한 폭행이다. 이 역시 예술 차원에서, 영화적 환경을 기준해 충분히 잘잘못을 가름할 수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가 투자한 대규모 상업영화의 경우는-봉준호 등 극히 일부 감독을 제외하면-스튜디오가 감독에게 일일이 간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수의 영화는 그러기 힘들다. 김기덕이나 홍상수처럼 직접 제작에 관여하는 감독에겐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야구는 투수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거나 최소한 간섭한 뒤 콘티는 자신이 완성한다. 현장의 모든 진두지휘 권한은 감독에게 있다. 다만 제작사와 투자사에 따라 편집에 대한 권리가 제한되긴 한다. 문제가 된 것은 현장에서의 연기지도를 위한 폭행이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송강호 같은 베테랑 배우들에겐 굳이 감독의 지도가 필요 없다. 장훈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택시운전사’에 관여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고맙지만 ‘역시 송강호’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력이 부족한, 특히 경력이 일천한 배우라면 감독이 지도를 하기 마련.

그러나 배우의 분노나 공포심 등을 자아내기 위해 폭행을 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해 강제로 옷을 벗긴다면 그건 이미 예술의 경지를 떠난 고문이 된다. 폭행장면의 연기를 지도하기 위해 때리거나, 실제 여배우를 강간해 그대로 필름에 담는다면(외국 사례) 좋게 보면 다큐멘터리지만 어쨌든 범죄행위다. 스승이나 부모의 ‘사랑의 매’도 범죄를 취급되는 현실이다. 예술은 작가의 자아도취에서 시작되지만 관객의 인지와 인식에서 완성된다. 즉, 작가가 아무리 예술적이라고 떠들어봐야 대중이 그 미학과 예술성에 동의하지 않으면 ‘내로남불’이 되는 것이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홍 감독은 프랑스에서 선호하는 작가다. 유독 우리나라만 그들을 잘 몰라본다. 그건 대한민국 영화인부터 관객들까지 수준이 유럽만 못해서라기보다는 문화와 정서의 차이 때문이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이 세간의 화제가 됐을 때에 맞춰 개봉된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대한 대중의 댓글은 ‘불륜합리화’가 주류를 이뤘다. 김 감독의 영화 다수는 관객들의 후기가 ‘구토’였다.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오래 굳어진 문화와 이를 통해 자리 잡은 정서가 그런 류의 영화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 영화 <뫼비우스> 스틸 이미지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김 감독 입장에선 배우의 감정을 잡아주기 위해 뺨을 때리는 것 정도는 연출자로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찍는 영화는 자신을 비롯해 출연배우와 스태프 등 극히 폐쇄된 공간 속의 소수만 보자는 게 아니다.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게 중요하다.

만약 A가 당시 감독의 의도에 순응해 매를 맞고 촬영을 하고, 베드신도 찍었다고 가정한다면 영화가 개봉된 후에 논란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수도 있다. A가 개봉된 영화를 보고 분노와 수치심을 느낌으로써 지금보다 감정이 더 격앙됐으리란 짐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베드신 강요에 대한 증거도 충분했을 것이다.

예술은 고대에 합리주의적 철학과 과학에 의해 거세당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예술을 부활시킨 것 역시 모방과 상상력의 화합을 용인하는 철학이었다. 폭행으로 얻으려는 결과가 예술이 되려면 그게 추구하는 미메시스의 원본을 밝히고, 어떤 상상력에서 출발했는지를 이해시키는 게 순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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