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무간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홍콩의 빅 스타 류더화(유덕화)가 현지 폭력조직의 협박으로 20년 동안 연인에서 아내로 발전한 말레이시아 출신 주리첸의 존재를 숨겼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13일 대만 ET투데이가 현지 영화평론가 마이뤄위의 방송출연 내용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류는 홍콩 TVB 공채 배우로 데뷔해 일찍 스타덤에 올랐으나 당시 연예계에 깊게 개입했던 한 폭력조직이 “여자친구가 어디 사는지 안다"라고 협박하며 B급 영화를 찍도록 강요했고,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20년 가까이 연인을 공개하지 못했다는 속 사정을 알렸다. 1981년 데뷔한 류는 주리첸과의 열애 23년 만인 2008년 결혼을 했고, 4년 뒤 첫딸을 얻었다.​

류는 ‘무간도’를 통해 한때 침체됐던 홍콩 누아르의 부활에 앞장선 바 있다. 여기서 그는 경찰조직에 위장침투한 폭력조직의 밀정 역을 맡아 반대 임무를 띠고 폭력조직에서 암약하던 량차오웨이(양조위)와 첨예한 대결을 펼쳐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영화 속에선 조폭 역할을 숱하게 해온 그가 사실 조폭에게 시달렸다는 내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

▲ 영화 <대부> 스틸 이미지

할리우드 등 미국 연예계에 폭력조직이 개입한 건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상급 가수 겸 배우였던 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폭력조직에 깊게 연루돼있었고, 평소 조폭처럼 행동했다는 내용은 미국 사회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마피아 영화 중 최고 걸작에 손꼽히는 ‘대부’ 시리즈에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20세기 말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 가수들은 현지 연예계에 야쿠자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흔적을 봤다고 증언하길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양은이 영화 ‘보스’(1996)에서 주인공을 맡고 제작에 관여하며 연예계 진출을 시도한 바 있지만 일회성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조폭이 국내 연예계 곳곳을 누비는 동맥-정맥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있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그들이 현직에 있든, 과거를 씻고 연예계에 뛰어들었든. 왜 연예계와 조폭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사실 그건 뭐든지 두드러져 보이는 연예계의 일이기에 더욱 돋보이는 것이지, 그렇다고 조폭이 유독 연예계에 집중 기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익만 창출할 수 있다면 사회 어느 분야든 전방위에 걸쳐있다는 것은 뉴스 좀 챙기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폭이 유독 연예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맞다. 그 이유는 분명히 있다.​

▲ 영화 <내부자들> 스틸 이미지

영화 ‘내부자들’의 안상구는 전라도 출신 깡패다. 별 볼 일 없던 ‘논두렁 건달’ 상구는 조국일보 논설위원 이강희를 만난 뒤 굴지의 자동차기업 회장의 지원을 받아 노조와해 등에 개입하면서 성장해 서울에 진출한다. 유흥업소와 연예기획사를 차리고 배우와 가수 등을 키우며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결국 여권 대선후보의 뒤를 봐주는 정치깡패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질 당시 그 자리에 가수 심수봉과 미모의 여대생이 동석했다는 사실은 역사에 기록돼있다. 여기서 우리는 충분히 고위 정치권과 연예계의 관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적 공기가 탁했을 때일수록 정-연 밀착이란 분탕질의 가능성이 더 농후했다.​

첨단의 현대에서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횡행하는 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보기 힘들다. 얼마 전 전 국민을 공분케 했던 장자연 자살사건이 그 증거다. 강한 독버섯일수록 생존능력이 질기기 마련.​

▲ 영화 <신세계> 스틸 이미지

철없던 시절의 깡패나 희망을 품기 힘든 동네 ‘주폭’의 경우 주먹자랑이 최고지만 세력을 키우는 가운데 야망의 사이즈를 키워가는 조폭일수록 권력을 꿈꾼다. 정치깡패가 정치권에 빌붙기 힘든 현재의 경우 갈수록 지능화되는 조폭은 합법적인 사업가를 지향한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정재가 회장 직에 오르는 골드문을 보라! ‘불한당’의 설경구가 2인자로 득세하는 오세안무역은 사실 현시점에서 안 어울리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폭력조직이 전통적으로 분양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합법을 가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예계는 합법에 품위까지 더해질 뿐만 아니라 코스닥 상장이 쉽다는 점에서 최고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사드 문제로 중국의 투자가 주춤하긴 하지만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는 데다 국내의 투자 수요가 넘칠 뿐만 아니라 중국 외의 해외시장개척 판로가 넓디넓기 때문에 가장 눈독이 가는 사업이다. 게다가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조폭이 분양 등 건축업을 한다면 ‘노가다’로 폄훼될 수 있지만 한류대중문화사업을 한다는 구실은 매우 명예로우니 금상첨화다. 한마디로 축재의 기회가 더 크고, 신분상승의 가능성은 명료하다.​

▲ 영화 <무간도> 스틸 이미지

한때 조폭이었다는 이유로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이는 한류문화사업 참여를 막는다면 불공정 불평등의 인권침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갈 ‘권리장전’에도 위배된다. 문제는 그들이 유입할 자금의 출처가 투명한가다. 또 벌어들인 돈이 건전하게 소비되며, 그럼으로써 발전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느냐에 달려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각 정권에 걸쳐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폭 소탕에 나섰지만 뿌리째 뽑진 못했다. 사법기관은 마치 돌고 도는 유행처럼 때만 되면 연예비리 수사에 나서 나름대로 실적을 거뒀지만 정작 연예계의 밀실에 뿌리내렸거나 그 주변에 기생하는 조폭은 가지치기조차 못 했다.​

대중가요의 단골소재가 사랑이라면 현대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행적 요소가 조폭이다. 드라마조차 사극이라면 왈패를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넣는다. 그만큼 폭력조직이라는 존재가 극의 드라마틱한 구조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코미디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 영화 <친구> 스틸 이미지

우리 영화계에서 깡패라는 소재는 간간이 채택되다 ‘친구’(곽경택 감독)를 계기로 확장된 영역을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해 이젠 필수요소가 되다시피 했다. 아무리 사실에 기반을 두더라도 영화나 드라마는 픽션으로 버무리기 마련이다. 악인이 선인이 되고, 선인인 줄 알았던 위치의 사람이 극악무도한 캐릭터로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조폭의 미화라는 일부 뜻 깊은 의견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픽션에 대해 작가를 나무라긴 힘들다.​

왜냐면 그건 공포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발상이 오히려 안정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객들이 “무서워, 무서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공포영화에 탐닉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절대 영화 속 같은 상황이 닥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영화를 즐기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 귀신이 나오는 집에 1만 원이나 내고 들어가라고 하면 공포영화 마니아 중 절반 이상은 거부할 것이다. 검거된 연쇄살인마를 면회하라고 돈을 주면서 등을 떠밀어도 안 할 것이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조폭영화가 그렇다. ‘불한당’에서 재호(설경구)는 현수(임시완)의 어머니를 죽인 잔인한 조폭이지만 결국 현수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현수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조폭의 미화가 아니라 주관을 잃고 방황하던 한 인간의 내면의 객관화에 대한 철학이다. 더불어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니 죽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해석이다. 만약 끝까지 그걸 ‘조폭 미화’라 한다면 ‘경찰을 쏴 죽이자’는 가사에서 번창하기 시작한 랩음악은 금지돼야 한다.​

이렇게 영화든, 드라마든, 가요든 가상과 가정과 반전과 도발 등을 비롯한 급진적 혁명 등의 픽션은 극히 예민한 예외적인 내용을 제외하곤 채택이 열려있다. 작가의 양심에 근거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표현일 때. 여기에 철학과 메시지와 계몽사상이 함유된다면 금상첨화고.​

▲ 영화 <나쁜 남자> 스틸 이미지

다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나쁜 남자’에서 사창가 깡패 한기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 선화에게 다가가 강제로 키스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억류한 채 매매춘을 시키는 내용에 새삼스레 분개하는 관객의 반응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이번에 김 감독의 여배우 폭행 및 강요 혐의 피소 건이 없었다면 필요 없었을 일이다.​

만약 혐의가 사실이라면 김 감독은 영화계의 또 다른 형태의 조폭행위를 한 셈이다. 동네 ‘주폭’의 폭력에 영세상인들이 대응 못하고 벌벌 떠는 건 보복이 두려워서다. 김 감독을 고발한 여배우는 보복이 두려워 4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조폭은 사회 곳곳에 있다. 그 조직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진짜 폭력조직이든, 연예계 내부의 ‘동네 조폭’이건 사법부가 눈여겨봐야 할 이유는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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