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 중 풍부한 유머로 재미에 집중한 작품이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2편과 ‘데드풀'이 대표적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쉽지 않은데 북유럽 신화를 끌어들인 ‘토르’ 시리즈는 그 복잡한 우주관부터 등장인물과 지역의 이름까지 생소해 난해했지만 3편인 ‘토르: 라그나로크’(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배급, 이후 ‘토르3’)는 의외로 쉽고 엄청나게 웃긴, 재미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작품이다.

‘가오갤’ ‘데드풀’ '글래디에이터'를 합친 것 이상의 기대도 괜찮다. 말이 ‘토르’ 시리즈 3편이지 어벤져스의 또 다른 유닛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이 화려하다. 향후 어벤져스가 ‘가오갤’ 멤버들과 함께 어떻게 우주에서 활약을 펼칠지 기대감을 상당히 증폭시킨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불꽃을 얻어 아스가르드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불의 신 수르트를 무찌르고 그의 왕관을 빼앗아 아스가르드로 되돌아온다. 왕궁 앞에서 목격한 건 자신과 로키(톰 히들스턴) 오딘(안소니 홉킨스) 등 3부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극은 로키를 영웅으로, 토르를 ‘쪼다’로 묘사한다. 그는 로키가 마법을 부려 오딘으로 변장했음을 알아챈다.

토르는 로키를 앞장세워 오딘을 강제수용했다는 미국의 한 요양원으로 오지만 이미 폐쇄된 상태. 둘은 우여곡절 끝에 오딘이 요양 중인 노르웨이의 한적한 곳에 도착한다. 함께 고향으로 가자는 토르의 제안에 오딘은 곧 아스가르드에 라그나로크(종말)가 올 것이라며 그 주인공은 자신의 첫째 자식인 죽음의 여신 헬라(케이트 블란쳇)라고 말한 뒤 먼지처럼 사라짐으로써 생명을 다한다. 토르가 슬퍼할 틈도 없이 헬라가 나타나 공격하고 놀랍게도 헬라는 헐크도 들지 못한 묠니르를 한 손으로 잡다 못해 산산조각을 낸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토르와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수문장 헤임달(이드리스 엘바)에게 차원이동 문을 열어달라고 황급히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차원이동 공간 안으로 들어온 헬라에 의해 다른 행성으로 떨어진다. 토르가 깨어난 곳은 아스가르드의 반대편 행성 사카아르. 검투를 즐기는 그랜드마스터(제프 골드블럼)가 지배하는 거친 곳이다.

그곳에서 토르는 현상금 사냥꾼 스크래퍼142(테사 톰슨)의 강력한 무기에 제압된 후 그랜드마스터에게 비싼 값에 팔려 검투장 안에 강제로 세워진다. 그가 맞설 상대는 무패행진의 무시무시한 챔피언. 드디어 문이 열리자 나타난 챔피언은 다름 아닌 울트론과의 소코비아 혈투('어벤져스2') 후 잠적한 헐크(마크 러팔로). 토르는 반가움에 친구를 운운하지만 헐크는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함께 사라졌던 로키는 그랜드마스터에게 바짝 붙어 아부하며 그의 심복이 돼있었다. 그 사이 아스가르드에 도착한 헬라는 반항하는 군사들을 모두 죽인 뒤 유일한 배신자 스커지(칼 어번)를 집정관으로 삼아 신의 왕국을 폭력으로 지배하게 된다. 결전 뒤 숙소에서 마주한 토르는 지난 2년 동안 배너가 아닌 헐크로만 살아왔다는 사연을 듣는다. 그동안 헐크는 분노 하나로 살아온 게 아니라 다양한 감정도 품게 됐다.

토르는 스크래퍼142의 정체가 과거 오딘의 수호천사단인 발키리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되고, 그녀와 헐크, 그리고 로키에게 함께 아스가르드로 가서 헬라와 싸우자고 설득하는 한편, 다른 검투사들에게 그랜드마스터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키라고 부추긴다. 과연 토르는 무사히 사카아르를 벗어날 수 있을까? 로키는 토르에게 협조할까? 아스가르드에 도착한들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헬라를 물리칠 수 있을까?

MCU는 비주얼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놀랄 만한 그림을 매 작품마다 업그레이드해왔다. 이번에도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만한 화려한 비주얼이 펼쳐진다. 이번 작품이 특히 집중한 곳은 유머다. 로키가 수르트와 대결하는 도입부부터 영웅과는 거리가 먼 ‘몸개그’가 펼쳐지는 가운데 헐크마저 웃긴다.

유머의 중심엔 토르와 헐크의 자존심대결과 토르와 로키의 형제인 듯 형제 아닌 형제 같은 애증이 자리한다.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말다툼을 하는 이들이 과연 어벤져스 멤버 중 우주 최강의 전사로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무시무시한 존재가 맞는지 의심이 들 만큼 철부지 면모를 보인다. 로키는 가장 귀여운 매력을 뽐내면서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랜드마스터는 ‘가오갤’의 콜렉터(베니치오 델 토로)의 형제다. 이런 설정은 이미 알려진 대로 ‘가오갤’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의 우주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는 ‘떡밥’이다. 따라서 그랜드마스터의 존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발키리의 유일한 생존자 스크래퍼142다. 오딘의 친위대로서 오딘과 아스가르드를 위해 충성을 다했던 그녀가 왜 자신의 왕세자를 알고도 무시한 채 그랜드마스터에 팔아넘겼는지가 꽤 중요한 포인트다.

그 답은 아스가르드 왕궁에 입성한 헬라가 무너뜨린 천장 벽화 속에 숨어있던 원래의 벽화에 담겨있다. 헬라는 토르가 갓난아기 시절 오딘을 도와 우주정복에 앞장선 오딘의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서로의 뜻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오딘은 자신을 거역하는 헬라를 어둠 속에 가뒀던 것이었다. 향후 발키리가 토르를 도와 어떤 활약을 펼칠지 역시 이번 ‘떡밥’ 중 하나다.

‘토르3’의 주제는 비교적 쉽다. ‘천둥의 신’이라는 토르의 정체성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한 사람의 값어치를 논할 때 천박한 자본주의적 현실주의적 논리에 따른 ‘직위’나 ‘재산’이냐, 아니면 그 사람의 인격이냐는 인본주의에 있다. 대신 단 1초도 한눈팔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화와 암시가 깔려 풍부한 재미를 선사한다.

묠니르를 잃고 마음이 나약해져 패배의식에 젖은 채 자신이 헐크를 이겼다고,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만 치던 토르가 아스가르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 그는 비로소 ‘천둥의 신’이자 아스가르드의 통치자가 된다. ‘분노의 질주’의 레티 역의 미쉘 로드리게즈를 연상케 하는 테사 톰슨은 새로운 매력의 발견이다.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액션신에 삽입된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은 각별한 의미를 담았다. 130분. 12살 이상. 10월 2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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