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꾼’(장창원 감독)이 지난 22일 개봉되자마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저스티스 리그’를 누르고 흥행 선두를 내달리고 있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 후 ‘재미있다’는 호평과 ‘전형적이다’라는 혹평이 동시에 대두됐지만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구조’ 안에서 관객의 허를 찌르는 맥거핀(속임수, 미끼)을 거듭 장치한 게 맞아떨어져 흥행에 추진력이 붙고 있는 것.

오는 29일엔 할리우드와 한국의 탐정물 ‘오리엔트 특급 살인’(케네스 브래너 감독)과 ‘반드시 잡는다’(김홍선 감독), 그리고 스릴러 ‘기억의 밤’(장항준 감독)이 가세한다. 이렇듯 관객과 두뇌게임을 펼치는 맥거핀의 장치를 뼈대로 해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부류의 영화가 한꺼번에 극장에 내걸린 건 보기 드물다. 과연 맥거핀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맥거핀 장치로 요즘 관객에게 고전처럼 남아있는 이른바 반전 작품을 손꼽으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1996)와 M.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1999)가 대표적일 것이다. 정체불명의 악마적 범죄자 카이저 소제의 정체가 경찰의 지근거리에 있던 나약한 절름발이였다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은 오랫동안 관객들을 전율케 했다.

▲ 영화 <식스 센스> 스틸 이미지

‘식스 센스’는 귀신이 보인다는 소년의 상담을 해주던 아동심리학자가 귀신이었다는 결말을 보였다. 그 소름 끼치는 상황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디 아더스’(2001)로 연결되기도 했다. 제임스 완의 ‘쏘우’(2004)는 폐소공포증까지 곁들인 호러로서 피해자들이 처음 발견한 시체가 사실은 범인이었다는 결말이 음악만큼이나 온몸에 닭살이 돋게 만들었다.

서스펜스 맥거핀이라고 하면 당연히 앨프리드 히치콕이다. 중장년층은 ‘스팅’(1973, 국내 개봉 1978)을 잊지 못할 것이다. ‘꾼’은 케이퍼 무비의 외형에 서스펜스 효과를 적절하게 버무리고 맥거핀 장치를 거듭하는 묘수를 부린다. 감독(작가)들이 아이디어가 비상해질수록 관객의 머리도 발전해가기 때문에 속임수 영화는 더욱 복선을 발전시키기 마련. ‘꾼’이 그렇다.

외형상 수조 원의 다단계 사기극을 펼치고 외국으로 도망간 뒤 사망으로 위장한 장두칠을 잡으려는 박희수 검사와 자살로 위장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장두칠을 잡으려는 사기꾼 위를 나는 사기꾼 황지성이 주인공. 두 사람은 다른 동기의 같은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연합하고, 여기에 ‘평범한’ 사기꾼 고석동 춘자 김 과장 등이 가세한다.

▲ 영화 <꾼> 스틸 이미지

그들은 장두칠을 은신처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그의 오른팔인 곽승건을 상대로 사기극을 꾸민다. 예전의 영화 같으면 승건을 대상으로 한 사기극이 잘 풀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승건이 역전극을 펼쳐 위기를 맞다가 우여곡절 끝에 두칠의 소재를 알아내지만 여기서 충격적인 반전이 벌어진 뒤 결국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장 감독은 좀 더 영리한 변화를 준다. 두칠의 존재를 일찌감치 등장시킨 뒤 그냥 미끼 같은 맥거핀인 줄 알았던 조연들에게 2번 이상의 반전을 부여한 뒤 이리저리 퍼져있던 퍼즐들을 막판에 절묘하게 조합해 관객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내리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전 추리소설로 널리 알려져 3번째 영화화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범인이 누구냐’는 결말도 충격적이지만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오랜 사유를 유도하는 가슴 저린 메시지가 돋보인다. 법은 원칙이 중요하다. 법은 정의를 추구한다. 그런데 정의는 반드시 법의 범위 안에서만 실현되는 것일까?

▲ 영화 <다크 나이트> 스틸 이미지

옳음과 그름의 경계 혹은 그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마치 한 아이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 둘을 심판한 솔로몬의 판결을 연상케 한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의 고뇌와 유사하다. ‘맨 오브 스틸’에서 미군은 슈퍼맨이 딴마음을 먹을 것을 우려하고,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에서 배트맨은 아예 그걸 원천봉쇄하기 위해 슈퍼맨을 죽이려 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예지의 초능력자가 범죄를 예고하면 경찰이 출동해 범인을 미리 잡는 미래의 시스템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슈퍼맨이 범죄를 저지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논리라면 UFC 선수들은 죄다 예비 폭력 범죄자로 잡아들여야 할 것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죽이려 한 행위가 오히려 범죄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은 고담 시의 평화를 위해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 뒤 폐인이 된 브루스 웨인으로서만 살아간다. 시에는 진정한 영웅이 필요한데 나약한 내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로 정체를 가린 채 범죄자와 싸우는 과정에서 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신의 불법은 결코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영화 <반드시 잡는다> 스틸 이미지

‘반드시 잡는다’는 ‘꾼’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는 달리 서스펜스 스릴러에 집중하는 수사물인데 사법권이 없는 평범한 노인 둘이 연쇄살인범 검거에 나선다는 설정 역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행위 자체야 ‘용감한 시민 상’ 감이지만 피해자를 살리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살인, 시신 유기, 유괴 등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게 문제다.

70대 초반과 60살 전후의 노인들이 액션을 펼치는 게 ‘테이큰’이나 ‘킹스맨’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가 미지수이긴 하지만 겹겹의 맥거핀 장치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국 클리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핸디캡.

이렇듯 서스펜스나 스릴러의 장르를 표방하는 맥거핀 장치의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는 건 기술의 진화의 끝이 안 보이는 SF 장르와의 차별화가 이유다. 멜로는 극장에서의 입지가 현저하게 약화됐다. 안방극장에서도 설자리를 점점 잃어갈 정도이니. 그렇다면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두뇌회전으로 관객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릴 수 있는 맥거핀이 좋은 무기다.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미지

한때 TV에서 ‘몰래카메라’라는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 크게 각광받은 바 있다. 특정 연예인을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다른 연예인 및 제작진이 극적인 상황으로 주인공을 몰아간 뒤 나중에 거짓이었음을 알리면서 낭패감 혹은 모욕감을 주는 자극적인 설정이었다.

시청자들은 이미 그게 속임수인 줄 알고 즐긴다. 결말에 자신이 골탕 먹었음을 알고 곤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시청자는 마치 자신이 스타를 속였다는 착각 속에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주인공의 절망감이 클수록 제작진의 성취감은 커지고, 그만큼 시청률은 상승했다.

맥거핀 장치가 바로 그렇다. 제작진은 관찰자고,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사실 관객이다. 모든 진실과 결말을 알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은 약속대로 연출하고 연기하며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 일치단결한다. 그리곤 관객들의 충격이 클수록 입장권은 불티가 나고, 제작진의 불어나는 주머니만큼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심리는 완벽에 가깝게 충족된다.

한 연구는 사람이 깨어있을 때 1시간에 약 12회의 거짓말에 노출되는데, 그중 95%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그 사람은 착해’라는 말은 ‘호구야’ ‘못생겼어’ ‘패션 감각이 꽝이야’ 등의 본뜻이 숨어있는 식이다. 사법 전문가들은 사기꾼이 가장 집중하는 곳은 피해자의 불안 믿음 욕망 등의 심리라고 한다.

▲ 영화 <꾼> 스틸 이미지

그런 맥락에서 영화의 맥거핀은 관객들의 불안감(긴장감)을 이용해 서스펜스나 스릴을 즐길 여건을 조성해준 뒤 맥거핀으로 허를 찌름으로써 ‘보기 좋게 당했다’는 심리에서 역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해준다는 측면에선 선의의 거짓말을 잘 활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언어학자 소쉬르에 따르면 인간의 욕동(≒본능)은 불안할 때 시니피에(기호의 의미)에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거짓의 시니피앙(기호)을 발음하기 마련이기에 그렇다. 뭔가 심리가 불안정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네가 했지?’라는 질문을 갑자기 받으면 순간적으로 무의식중에 ‘아뇨’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어차피 2시간 동안 영화를 안 보면 24번의 거짓말을 대하게 될 텐데 혹시라도 그 속에 자신의 핸디캡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짓말이나 진짜 사기를 목적으로 한 속임수가 있다면 불쾌하거나 힘들 텐데, 영화에 속으면 ‘몰래카메라’ 같은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풍부하니 1만 원의 투자 효과는 충분할 것이니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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