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이전 글에서는 배우자에게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기대를 가지게 되는 심리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망 없이 기대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부부 간에 아무 기대 없이 살 수는 없는데, 그 기대는 좀처럼 채워지지도 않는 이런 현실적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선 하나는,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기대를 최소화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은, 우선적으로는 심리적 상처를 덜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랑하고 사랑 받는 행복을 포기해야만 가능할 것이라서 그리 권할 것이 아님을 이전 글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따라서 제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자신의 기대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대하고 또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녀의 성적 결과가 기대한 것에 못 미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일부 문제 부모들은 어떤가요? 부모 자신의 기대가 비현실적이었을 수 있었음을 인정하지도 않고, 차선책을 선택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낮은 성적에 몹시 절망하여 심하게 나무라거나, 자녀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재수할 것을 강제하기도 합니다.

그런 결과로 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심히 악화된 경우가 드물지 않음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식적인 부모이라면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자녀를 격려하면서 자녀의 의견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대학을 권하거나 또는 재수라는 부담을 기꺼이 감당하려 할 것입니다.

결혼 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이나 배우자에 대해 (자신은 당연한 것으로 알겠지만) 부적절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결혼 후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실망스러운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서는) 자신의 처지를 대단히 불행한 것으로 여기면서 배우자를 심하게 비난하기 쉽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부부 불화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까 기대를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상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고 사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사실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포기할 수도 없고, 쓰라린 실망을 또 다시 경험하기도 싫은데,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요?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현명하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기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상대가 꼭 들어줄 수 있거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조련사가 동물을 길들이는 방법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그 동물을 위협하거나 벌을 주어서는 절대로 원하는 동작을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조련사는 평소에 동물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가 동물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 ‘긍정적 피드백’ 즉 그 동물을 쓰다듬어주거나 좋아할 만한 먹이를 줍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 동물은 어느새 아무 거부감 없이 그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이런 예를 드는 것이 불쾌한가요? 천만에요. 사람도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만취하여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술 마시지 말고 일찍 좀 들어오라!”고 잔소리해서 성공했다는 부인의 성공담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도리어 더 심해지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입니다. 그런 ‘부정적 피드백’보다는 어쩌다 남편이 술 마시지 않고 일찍 들어온 날 대단히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것이 맛있는 음식이든 칭찬이든 성 관계든 관계없이,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부인 자신이 바라는) 일찍 귀가 하는 것에 연결시킬 수만 있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가 좋아할 것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겠지요.

두 번째로, 흔히 꿈은 크게 가지라고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작은 꿈을 가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을 기대하면 영영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선 자신의 기대가 현재 상황에서 실현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작은 꿈이 중요한 이유는,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를 실천하기가 훨씬 쉽고, 작은 목표들을 달성하다 보면 어느새 큰 목표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보다 상대가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쉬워 보이고 당연한 것이라도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식사 후에는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 달라”는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는, 반찬 그릇을 덮어 달라거나, 식탁 의자를 넣어달라는 정도로 한 번의 행동으로 그칠 수 있는 정도만 부탁하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것을 실행한 남편(을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처럼 대하지 말고)에게는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정도로 감사할 게 뭐 있느냐? 앓느니 죽고 말겠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지만) ‘동물 길들이기’에는 그런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 또는 ‘시작은 미약하나 결과는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로 당신의 실망과 분노를 삭이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한 마디를 들어주기 시작한 상대는 머지않아 당신의 두 마디, 세 마디를 기꺼이 들어주게 될 것이니까 말입니다.

요약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당신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 또는 당신이 그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기대하고 원하는 것을 상대가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여기는 건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가진 기대들의 대부분은 솔직히 상대방을 위한 것보다는 당신 자신을 위한 것들일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아주 타당하고 상식적인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또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해도, 상대가 들어줄 지 말 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상대에게 달려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상대 역시 당신에게 가진 기대나 요구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완벽하게 들어주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상대가 잘 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대단히 감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또 상대의 행동이 실망스러울 때에도, 그것을 비난하기 보다는, 일단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쉽게 움직일 수 있겠는지를 연구하시기를 권합니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당신의 칭찬과 감사와 더불어 고래의 몸짓을 춤으로 보는 당신의 관점에도 달려있는 것이랍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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