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성평등 보이스] 현직 검사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고 나섰고, 검찰이 진상조사에 착수해 귀추가 주목된다. 서지현 검사(여․통영지청)가 최근 검찰 내부 게시판 글과 TV 출연을 통해 털어놓은 7년 여 전의 아픈 기억은 성폭력에 관한 한 검찰 조직문화가 총체적 부실 상태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검찰은 이 사건을 1회성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성폭력 관련 조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 검사의 용기가 검찰을 비롯한 각계의 조직 내 성폭력 고발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져갈지 지켜볼 일이다.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 사진= Jtbc 방송 화면 캡처(Jtbc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

◇개요
서 검사는 서울북부지검에 근무할 당시인 2010년 10월 30일 동기의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상당 시간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강제추행을 공개적으로 당했다.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으나 사과는 없었고, 오히려 돌아온 것은 좌천 인사 등 불이익이었다고 밝혔다.

▲ 사진= Jtbc 방송 화면 캡처(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

◇문제점과 개선방안

△성희롱 성폭력과 성차별이 일상화한 조직문화를 뜯어고쳐야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 어떻게 공공연하게 성추행을 자행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당당하게 뿌리치고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 검사는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당시만 해도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검찰 분위기,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검찰 이미지 실추,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 등을 이유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은 불이익과 수군거림을 비롯한 2차 피해 방지 등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성폭력에 관대한 조직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직문화를 피해자도 알고 가해자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과 참고 넘어가기의 악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서 검사의 첨부 글에 언급된 자신의 피해 사례들은 성희롱 성폭력과 성차별이 일상화한 검찰 조직문화를 말해준다. 선후배들이 “자꾸 네가 예뻐 보여 큰일이다,”,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줄 테니 나랑 자자.”, “안아 줘야 차에서 내릴 거예요.”, “부장은 왜 여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자는 남자의 50%.” 등 음담패설과 성차별적 발언을 함부로 하고 술에 취해 껴안는 등등. 성폭행 사례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성희롱 성폭력이 일상화한 조직문화를 뜯어고쳐야 한다. 피해자가 2차 피해 걱정 없이 당당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가해자가 확실히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실천해야 한다. 검찰 이미지 실추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걱정해야 할 사안이다. 상명하복식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인식 전환 교육도 당연히 강화돼야 한다.

△가해자 처벌 확실히 해야
조직 내 성폭력은 기관장의 척결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장관은 “내가 이놈을 수행하고 있는 건지 수행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동석했던 동료 선후배들 중 아무도 만류하지 않았으나, 현장을 벗어나서는 감찰부서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수군거렸다. 서 검사에게 피해와 감찰 협조 의사 여부를 확인한 동료 여검사에게 검찰 고위간부는 “피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고 다니느냐.”고 호통을 쳤고, 감찰은 흐지부지됐다. 서 검사는 지난해 8월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다.

기관장은 성폭력 가해자 처벌에 무관용 원칙을 선언하고 실천해야 한다. 모른 체 하거나, 문제가 드러날 경우 사표 받고 적당히 끝내는 게 아니라 중징계를 해야 한다. 동료들은 성폭력을 목격하면 제지해야 한다. 성폭력을 무마 또는 은폐하려는 간부도 엄중 처벌해야 한다. 성폭력에는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민감한 것을 나무라는 행위도 잘못이다.

가해자는 “오래 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여서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술을 마셨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음주를 강요하지 않고 술 권하는 조직에서 벗어나도록 음주 및 회식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 제대로 해야
서 검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무감사에서 다수 사건을 지적 받고, 사무감사 지적을 이유로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으며, 이를 이유로 전결권을 박탈당했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은 여검사에게 ‘잘나가는 남자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성추행은 당연히 문제 삼아야 하고, 성추행한 검사가 피해 검사의 발목을 깨무는 방울뱀이다. 공론화 후 서 검사에 대해 지지와 격려가 쇄도하는 가운데 “정계 진출을 노려서 폭로했다.”는 등 헛소문도 나돈다고 한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과 수군거림이 2차 피해다.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범죄행위이자 징계 대상이다. 동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지 말아야 한다. 색출해야 할 대상은 언론 발설자가 아니라 2차 피해 발설자다. 검찰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찾아서 징계해야 한다. 수군거림을 방치하는 기관장과 부서장도 문책해야 한다. 불이익도 사실이라면 바로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차 피해를 방치하는 기관장과 부서장을 문책하는 등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을 당해도 2차 피해가 두려워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공부문 성폭력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성폭력 편견 깨고 피해자가 당당히 나서야
서 검사는 “성실히 근무만 하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고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해자가 종교에 귀의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회개는 피해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방송 출연 이유를 3가지로 말했다.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 엄마가 피해자 딸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

서 검사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에도 8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한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큰 괴로움을 겪었다. 자책감은 성폭력 피해자의 치유를 방해한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로 자책감을 떨쳐줘야 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 헌팅은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상처와 자책감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지 못하다가 멘토 숀 맥과이어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으면서 상처를 치유 받는다. 반면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주인공 유정은 15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후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어떻게 처신을 한 거냐!”며 뺨을 맞고는 자책감에 사로잡힌 채 가해자보다 엄마를 더 미워하며 마음 문을 닫게 된다.

▲ 영화 ‘굿 윌 헌팅’ 중 치유 장면>

서 검사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 받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편견 깨기부터 시작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후 제가 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혼자만의 목소리를 냈을 때 왜 조직이 귀 기울일 수 없었는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진상조사에 외부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검찰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대해 성희롱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진솔한 응답과 비밀유지가 긴요하다. 성폭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조직문화도 바뀌고, 피해자도 당당히 나서야 한다. 자정능력이 없는 조직은 투사를 키운다. 피해자가 조직을 떠나는 고리를 끊도록 서 검사는 힘들어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닭과 함께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 ‘줄탁동기'(啐啄同機)가 검찰에도 필요한 시점이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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