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엔 볼 게 없다고요? 천만의 말씀!” [유성호 칼럼]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l승인2018.09.10l수정2018.09.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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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등록비영리민간단체인 문화지평은 지난 1일 양천향교(양천현아지) - 궁산 - 소악루 - 겸재정선미술관 - 허가바위 - 공암나루터 - 허준박물관 - 광주바위 – 염창터 등 강서구 역사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약 5시간 동안 1만5000보를 걸었다.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의 문화‧관광이야기]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이 현령으로 5년간 근무했던 양천현은 지금의 강서구다. 이 지역 지명은 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가면 재차파의(濟次巴衣)현이란 이름이 나온다.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 때는 공암(孔巖)현이었고 고려 현종 9년(1018년)에는 수주군(부천군의 옛이름)에 속했다. 이후 양원, 양평, 파릉, 제양 등으로 변했다가 고려 충선왕 2년(1310년)에 비로소 양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양천의 뜻은 ‘밝은 태양과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란 의미다.

조선시대에 금양현됐다가 태종 16년(1416년)에 다시 양천현으로 복귀했다. 겸재는 영조 때인 1740년 12월부터 1745년 1월까지 양천현령을 지냈다. 고종 32년 을미개혁 때 현에서 군이 됐지만 양천이란 이름은 지켰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국권을 뺐긴 1914년 양천군은 통진군과 함께 김포군으로 통합됐다. 이 지역은 영등포구 관할이었다가 강서구로 분구가 됐고 목동 신시가지 조성으로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다시 1988년 양천으로 분구 됐다. 목동 신시가지 건설 때문에 양천구로 나뉘었지만 정작 가양동에 양천현아지를 비롯해 옛 양천의 역사는 강서구에 대부분 남아 있다.

서울시등록비영리민간단체인 문화지평은 지난 1일 강서구 일대를 답사 했다. 그동안 서울시 역사문화 답사를 하면서 늘 마음에만 담아 두었다가 마침 실력 있는 역사문화 해설사를 만나 실행하게 됐다. 출발은 양천향교(양천현아지) - 궁산 - 소악루 - 겸재정선미술관 - 허가바위 - 공암나루터 - 허준박물관 - 광주바위 – 염창터를 약 5시간 동안 1만5000보를 걸으며 답사했다.

강서구 지역에는 그다지 볼게 없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완전히 바뀐 날이었다. 해설을 한 워킹서울 정연재 대장의 심도있는 설명이 큰 몫을 했다. 무엇 보다 이 지역 역시 서울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풍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그것을 간과했을 뿐이다. 이번 답사의 큰 수확은 한강의 재발견이다. 언젠가 한강을 따라 서울 600년을 걸어가 볼 요량이다. 그럼 이제 강서의 역사를 거슬러 걸어 가보자.

□ 양천향교(양천현아지)

양천향교는 조선조 태종 12년(1412년)에 지어졌다. 향교는 고려시대 이후 지방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됐다. 국가에서 선생을 파견해 학문을 가르치고 공자 등 동양 성현에 대한 제사도 지었다. 명륜당과 대성당이 각각 그 기능을 담당했다. 향교에서 공부해서 과거를 보면 진사나 생원이 됐는데, 그래야 조선조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입학 자격을 갖는다. 조선 중기에는 사립학교 격인 서원이 생기면서 향교가 쇠퇴했다. 향교 입구 좌측에는 겸재를 비롯한 역대 현감들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경기도 향교였지만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서울시의 유일한 향교로 남아있다. 향교 아래쪽은 양천현아지로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다. 흔치 않은 남방불교를 표방하는 홍원사(조계종)와 전통방식으로 면을 만드는 ‘옛날국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 궁산

시민들에게 안식을 주는 근린공원으로 조성돼 조붓한 산책로가 형성돼 있다. 높이는 약 76m로 높지 않지만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둘레 726보짜리 산성이 있어 성산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란 의미다. 지금도 산정에는 양천고성지 성터 흔적이 남아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는 궁산 산성에 관군과 의병이 진을 치고 한강 건너편 행주산성 권율 장군과 함께 왜적을 물리쳤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도 군부대가 주둔했다. 궁산이라는 명칭은 산자락 양천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궁(宮)으로 여긴데서 유래됐다. 궁산서 내려다보이는 한강 다리는 마곡철교다. 궁산에는 관산성황사(關山城隍祠)가 있다. 관산은 궁산의 다른 이름이다. 성황사는 조선시대에 마을 수호신인 도당할머니를 모시는 곳이다. 궁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역사 유적지와 이야기가 풍성하다.

□ 소악루

궁산은 서쪽의 개화산, 오른쪽의 탑산, 쥐산 등과 함께 한강변에 아름답게 서 있다. 그래서 예부터 선비들이 한강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다. 산꼭대기에는 중국의 동정호 누각 이름을 본 딴 악양루(岳陽樓)가 있었지만 소실됐다. 영조 때인 1737년 그 자리에 소악루(小岳樓)가 만들어졌다. 이마저 없어지고 1994년 다시 복원됐다. 겸재는 소악루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해질녘 궁산에서 강 건너 안현(서대문구 안산)의 봉화를 바라본 <안현석봉>, 남산과 양화진이 보이는 <소악후월> 등이 남아 있다. <소악후월>은 겸재가 사천 이병언의 시를 감상한 후 그린 그림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 강서지역 답사를 마친 문화지평은 다음 답사로 추석연휴 기간인 25일 익선동과 북촌 전역을 돌면서 우리나라 요정문화와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 겸재정선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뒤편에는 궁산땅굴이 있다. 2008년 궁산기슭에서 발견됐다. 길이 68m, 높이 2.7m, 폭 2.2m 규모의 일제가 판 군사용 땅굴이다. 일제 강제징용의 아픈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겸재정선미술관은 당초 겸재정선기념관 이었으나 겸재의 그림 진품을 사들여 2014년 미술관으로 등록했다. 겸재는 양천현령으로 5년간 근무하면서 사천 이병연과 교류하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 강서지역 풍광을 많이 남겼다. 양천을 이야기하면서 겸재를 빼 놓을 수 없다. 태어난 곳은 경복고와 자란 곳은 인왕제색도를 그린 장동(장동 김씨 세거지)이지만 양천현령 시절 그의 붓이 가장 농염하게 물 오른 때였다는 평가 때문이다. 미술관 옥상에서는 마곡지구 서쪽 끝자락이 보인다. 또 서울식물원이 들어설 자리에 공사가 한창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같은 날 모두 관람할 경우 할인혜택이 있다. 단체일 경우 해설사의 해설을 신청할 수 있다.

□ 공암바위(허가바위)

미술관을 나와 공암바위로 가는 길에 ‘事貴正直’(사귀정직)이란 김도연의 유묵비가 서있다. 일에는 정직함이 귀중하다는 의미다. 염창동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정부수립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낸 청백리다. 돌에 새겨진 글의 의미가 돌 만큼 묵직하다. 허가바위는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바위동굴 입구에 서 있다. 바위에 구멍이 뚫린 모양이라 공암(孔巖)바위라고도 한다. 경기읍지에 따르면 허선문이 나이 아흔이 넘도록 고려 태조 왕건을 섬겨 후백제를 세운 견훤을 정벌하러 갈 때 군사들을 격려한 공으로 이곳 촌주로 임명됐다. 그래서 이곳이 양천(공암) 허씨 세거지가 됐다. 의성 허준, 여류문인 허난설헌 등을 배출했다.

□ 공암나루터

공암바위 근처는 양천과 행주를 잇는 공암나루터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공암나루는 양화진 어영청의 진선 10척 중 5척이 배속된 주요 나루였다. 이곳에는 전설이 내려 온다. 이조년, 이억년 형제가 지방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중 황금 두덩어리를 주워 하나씩 나눠 가졌다가 우애에 금이 갈까봐 강에 던졌다는 전설이다.

□ 허준박물관

의성(醫聖)이라고까지 칭송받는 구암 허준(1537~1615)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의학자로 옛 양천현인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났다. 허준박물관은 구암이 남긴 <동의보감>이란 학문적 업적과 생애를 널리 기리고자 2005년 설립된 공립 박물관이다. 국보 319호 <동의보감>은 의학서적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박물관은 구암의 각종 저서를 비롯한 한의서, 내의원과 한의원 재현, 다양한 약초와 약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초 120여종을 심어 놓은 약초원은 자연 체험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니 꼭 들러 봐야 하겠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대한한의사협회 건물이 들어서 있다. 담장이 없어서 마치 한의사협회 부속 박물관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박물관은 강서문화원이 관리한다.

□ 광주바위

광주바위가 있는 구암근린공원 일대는 한강이 흐르던 곳이다. 1982~1986년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광주바위 주변 한강 일부가 메워져 작은 연못이 됐다. 옛날에 큰 홍수 때 경기도 광주(廣州)로부터 떠내려 온 바위라는 전설이 있어서 ‘광주바위’라고 부른다.

□ 염창터

지금은 주택가 한 구석에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는 염창터. 과거 양천현은 서해에서 한양으로 들오는 뱃길의 초입이다. 한강은 강화도 때문에 입구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배들이 강화를 거쳐 행주산성을 지나 양천현을 지나는데 지금도 남아 있는 염창동이란 지명은 이 곳이 소금창고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멀리 전라도서부터 충청도, 경기도에서 거둬들인 곡식과 소금배가 염창을 지나면서 소금을 부리고 갔다. 이 소금이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을 통해 한양도성으로 운반됐다. 얼마 전 개발로 인해 지금은 소금길이 완전히 사라졌다. 염창터 표지석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로 아파트 담벼락 구석에 박혀있다. 소금이 돈이었던 시절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강서지역 답사를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파전집에 모였다. 회기역 파전골목처럼 모여 있진 않지만 강서지역에 유난히 파전집이 많다. 혜화와 성북 지역에 국수집이 많은 것처럼. 역사문화 답사는 지역 관광과 같은 개념이다. 오늘도 문화지평은 강서구 지역을 관광한 셈이다. 다음 답사는 추석연휴 기간인 25일 익선동과 북촌 전역을 돌면서 우리나라 요정문화와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문화 향유공동체 ‘문화지평’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현장 평가위원
지자체 근현대문화유산‧미래유산 보존 자문위원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
대중음식평론가(‘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연재 중)
前 뉴시스 의학전문기자, 월간경제지 편집장
前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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