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사코>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아사코’(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는 판타지의 외형으로 시작돼 개개인의 이기적인 심리를 매개로 참다운 사랑과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묻는다. 오사카의 여대생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거리에서 우연히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난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이어간다.

아사코는 바쿠의 집에서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다. 늦은 밤 바쿠는 갑자기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사겠다며 나간 뒤 돌아올 줄 모른다. 걱정이 돼 집을 나선 아사코는 바쿠를 보자 울음을 터뜨린다. 허름한 목욕탕에 들어갔다 잠이 들었다고 한다. 6개월 뒤 바쿠는 신발을 산다며 나가더니 잠적한다.

2년 뒤. 아사코는 도쿄의 한 카페에서 일을 한다. 카페 앞 건물의 사케 회사에 커피 배달을 갔다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만난다. 아사코는 미칠 듯 그리운 바쿠를 료헤이의 그림자에서 찾고, 오사카에서 막 전근을 온 외로운 료헤이는 아사코가 자꾸 눈에 밟혀 카페 문밖에서 서성거린다.

아사코의 룸메이트는 여배우 마야고, 료헤이는 직장 동료 쿠시하시와 친하다. 우연히 사진전에서 료헤이가 아사코와 마야를 도운 인연으로 마야가 료헤이와 쿠시하시를 집에 초대한다. 집에서 본 마야의 드라마를 놓고 쿠시하시가 혹평을 한 계기로 아사코-료헤이, 마야-쿠시하시 커플이 탄생한다.

▲ 영화 <아사코> 스틸 이미지

아사코와 료헤이가 동거를 한 지 5년. 회사는 료헤이에게 다시 오사카 전근을 명령하고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두 사람은 오사카에서 행복을 가꿔나갈 하천변 집을 계약한 뒤 돌아와 이사를 준비한다. 그런 아사코 앞에 갑자기 바쿠가 나타나 막무가내로 함께 떠나자고 하는데.

영화는 대놓고 사진작가 고초 시게오, 극작가 안톤 체홉, 헨릭 입센을 거론한다. 동명으로 영화화된 사진집 ‘셀프 앤 아더스’로 유명한 고초를 통해 자아와 타자의 관계망을 묻는다. 입센은 여성 해방, 체홉은 인간성 해방을 의미한다. 아사코의 선택은 바로 거기에 대한 감독의 철학을 담았다.

아사코의 “춤출 줄 몰라”라는 말에 친구의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 돼”라는 답. 바쿠의 “좀 늦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테니 걱정 마”라는 매우 일방적인 주문. 과연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마음이나 입장만 중요한 걸까? 주인공들을 우유부단하거나 이기적인 캐릭터로 그린 건 그런 의미다.

영화는 멜로의 탈을 쓴 사회적 드라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한다. 어미가 새끼에게 애틋한 건 종족보존의 본능이고, 새끼가 어미에게 집착하는 건 생존의 본능이다. 그런데 다 자란 후손은 어미 곁을 떠나거나 선대와 서열 경쟁 혹은 먹이 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 영화 <아사코> 스틸 이미지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자식은 독립하더라도 부모와의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각종 집단에서 친구도, 연인도, 멘토나 멘티도 만든다. 개개인의 이익과 목적이 근거를 이루기도 하지만 결국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다. 사랑은 남녀 사이에만 형성되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간섭한다.

영화는 그 근거가 믿음이라고 웅변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끈끈할 수 있는 근원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위안을 주며, 지킴이가 된다는 믿음에 있다.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뢰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감독은 충동과 계산 사이의 인간 심리를 묻는다.

바쿠가 료헤이일지, 혹은 료헤이의 환생일지에 대한 흥미로운 판타지로 서사를 펼치더니 이내 ‘테세우스의 배’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던진다. 아사코가 료헤이에 관심을 갖게 된 근거는 바쿠에 대한 그리움의 대리만족일까? 그렇다면 동거 후의 사랑과 결혼 승낙은 전체를 보수한 ‘테세우스의 배’다.

료헤이의 아사코에 대한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첫 만남에서 자신을 아는 척하고 담대하게 뺨을 어루만진 예쁘장한 여자에게 관심을 안 가질 남자는 없을 것이다. ‘저 여자가 나를 아는 것일까?’ 혹은 ‘그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관심이 사랑으로 변한 건 자연스럽다.

▲ 영화 <아사코> 스틸 이미지

이에 비하면 바쿠의 사랑은 매우 불친절하다. ‘첫눈에 반한다’는 테제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매우 유물론적인 건 사실이다. 그 반함의 기준은 외모가 절대적일 것이고, 취미나 사상 혹은 비전의 공유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바쿠처럼 충동적이거나 이기적일 수도.

바쿠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아의 감성이나 감정을 오성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사회성의 결여에 기인한다. 그래서 그는 아사코의 또 다른 자아 혹은 거울이다. 료헤이는 딸 아리아드네의 배신으로 망한 크레타의 왕 미노스다. 과연 아사코가 아리아드네가 될지 아닐지가 영화의 결론이다.

“사케도 커피도 물이 중요하다”는 대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라 일컬은 탈레스의 활용. 그는 삼라만상의 최초의 질료적 원인이 물이라고 했다. 즉 물은 생명이자 진리인 것. 많은 비가 내려 혼탁해진 하천을 보고 료헤이는 “더럽다”고,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각자 달리 본다.

료헤이는 아사코의 내면과 감성의 출렁임이 저급하다고 보는 걸까?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는 제 감정이 추하다는 걸까? 아사코는 자신의 이성에 이물질이 개입됐지만 그럴지언정 그 사랑만큼은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걸까? 결코 해피엔딩이 아닌 불안함이라서 더 빛나는 영화! 12살. 3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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