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레슬링은 던지기, 꺾기, 누르기 등의 기술을 이용해 두 사람이 겨루는 격투 스포츠이다. 경기 방식과 규정은 과거부터 현대적인 형태까지 다양하다. 그 기술은 군의 백병전 기술 등을 비롯한 다른 무술에도 적용되어 왔다. 레슬링 경기는 서서 또는 바닥에 몸을 대는 등 여러 방식으로 한다. 레슬링 분류는, 첫째, 벨트와 재킷을 착용하며 주로 그것을 붙잡고 시합하는 벨트앤드재킷 레슬링, 둘째, 규정대로 상대방을 잡고 경기를 하는 캐치홀드 레슬링, 셋째, 현대의 국제경기방식인 루스 레슬링 등이다. 루스는 선수들이 떨어져서 경기하며 옷을 잡거나 급소를 공격하는 등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상대선수의 어떤 곳도 잡을 수 있다.

레슬링은 가장 오래되고 널리 분포된 스포츠로 복싱처럼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레슬링은 육박전에서 시작되어 상대가 죽음 대신 항복하면 끝나는 스포츠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벨트 레슬링은 B.C 3000년경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미술에도 묘사되어 있고,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언급이 있다. 인도의 루스 레슬링은 B.C 1500년 이전에 시작되었으며 고전적 서사시들인 리그베다, 라마야나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화병이나 주화에는 레슬링 삽화가 있다. 삽화의 스타일은 루스 레슬링이었고, 선수들은 그리스의 다른 운동선수들처럼 벗은채 겨뤘다. 레슬링은 그리스 신화와 서사시 가운데 특히 장례식 경기에서 나타나며 B.C 776년부터 올림픽대회 종목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B.C 700년부터, 일본에서는 B.C 1세기부터 루스 레슬링 기록이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5종 경기의 하나였으며 B.C 668년에는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판크라티온(pankration) 경기가 벌어졌다. 1896년 근대 올림픽 부활과 함께 레슬링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다. 북미 인디언들과 아마존 강의 인디언들은 유럽인의 도착 전에 전쟁에 대비한 훈련으로 루스 레슬링을 했다. 18세기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남태평양 제도에서 원주민의 레슬링을 발견했다. 20세기에 스위스인, 아이슬란드인, 카자크인들의 벨트 레슬링은 B.C 2500년 이집트인들의 레슬링과 비슷했고 남미, 아프리카, 몽골, 티롤의 고산지대와 같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는 레슬링들도 흡사하다.

고대 올림픽 대회에는 3판2승제의 토플링 경기와 레슬링과 권투를 혼합한 항복해야 끝나는 판크라티온의 레슬링 선수권전이 있었다. 똑바로 서서 하는 레슬링도 고대 경기의 하나였으며, 한 선수가 쓰러질 때까지 싸웠다. 에트루리아인들의 묘실화에서도 벗고 레슬링하는 모습이 있다. 로마에서는 코모두스 황제와 막시미두스 황제는 레슬링 선수였지만 그리스처럼 대중적이지 못했다. 로마 제국 멸망 후 A.D 800년경까지는 레슬링의 기록이 없다. 페르시아 통치자들이 800년경 투르크 용병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루스 레슬링의 일종인 코레시를 전래시켰다. 이는 길고 꼭 끼는 바지 입은 선수들이 상대의 등을 바닥에 닿게 하는 것으로 투르크가 이슬람교 지역 전체를 통치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후 13세기 몽골식 레슬링이 들어왔고, 몽골식 레슬링이 왕실 후원으로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 레슬링이 이란의 국기가 되었다.

레슬링은 중세 유럽 전역에서 여러 스타일로 생겨났다. 앵글로색슨족, 게르만족과 켈트족은 로마인들과 접촉하기 전부터 레슬링을 했다. 잉글랜드와 브르타뉴에서는 콘월과 데본이라는 재킷 레슬링이 4~5세기에 시작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시대에는 기사들에게 레슬링을 무술로 가르쳤고 귀족들은 '30년전쟁'이 일어난 1618년까지 레슬링 교사를 고용했다. 아이슬란드에는 1,000년 전 벨트 레슬링 스타일인 글리마의 기록이 있으며, 스위스의 벨트 레슬링인 슈빙겐은 13세기에 시작되었다. 1526년 몽골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개한 몽골의 루스 레슬링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근대 초기 영국의 헨리 8세와 찰스 2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등은 레슬링을 적극 후원했다. 1800년대초 독일 정부는 체조훈련으로 레슬링을 채택했다. 미국은 레슬링이 변경지대의 스포츠로 한 선수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했다. 19세기 후반 2종류 레슬링이 국제 레슬링계를 지배하는데 그레코로만형과 자유형 레슬링이다. 자유형은 상대방의 신체 모두를 잡고 한다. 그레코로만형은 상대의 다리를 걸고 넘기는 것이 반칙이며 오직 상반신만을 사용하여 다툰다. 처음 프랑스에서 보급된 그레코로만형은 고대 레슬링의 한 형태로 여겼기에 그렇게 명명된 것이다. 그레코로만형은 프로 스포츠로 파리 국제박람회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지만, 1896년 부활된 올림픽 대회의 종목으로 채택된 후 올림픽 대회의 정식종목이 되었다. 자유형은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보급되었는데, 프로 스포츠로 시작하여 1888년 아마추어 체육협회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처음에는 권투처럼 체급 구분이 없었지만(제1회 올림픽 대회는 헤비급이 유일한 체급),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체급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권투와의 인기경쟁에서 뒤지던 프로 레슬링은 1913년 고치가 은퇴하며 스포츠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아마추어 단체는 19세기초부터 전국 규모로 조직되었고, 19세기 후반 지역간 경기를 갖으며 1911년 국제 아마추어 레슬링 연맹(FILA)이 조직되었다. FILA는 올림픽 대회 및 국제대회의 규칙을 제정, 1951년부터 세계 그레코로만형과 자유형 레슬링 선수권대회를 주관해왔다.

그리스 시대 바닥에서 하던 레슬링이 아마추어 선수들은 매트에서, 프로 선수들은 권투처럼 로프를 친 링에서 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아마추어 레슬링의 가장 큰 변화는 20세기에 있었다. 초기의 레슬링은 휴식이 없이 치러졌고 시간제와 때로는 시간을 제한이 없었다. 아마추어 레슬링의 3분 3회전으로 제한 규정이 1967년부터 모든 국제대회에 적용되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레슬링의 한 종류로 삼보가 있다. 이것은 재킷 레슬링의 일종으로 소련의 아나톨리 하를람피예프와 그밖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전통적인 레슬링 스타일을 연구하여 합성해낸 것이다. 삼보는 1964년 FILA의 공인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1934년 YMCA에 레슬링부가 생겼으며, 1941년 4월 YMCA 주최로 제1회 전조선 레슬링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45년 8.15 광복 후 각 지방에 레슬링 도장이 들어서며 널리 보급됐다. 1948년 8월 국제 아마추어 레슬링 연맹에 정식 가입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장창선 선수가 은메달을 따며 세계에 알려졌고, 1966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장창선 선수가 레슬링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으며, 제21회 몬트리올 림픽에서는 양정모 선수가 자유형 62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아마추어 레슬링 강국이 되었으나 프로레슬링에서 역도산을 비롯하여 김일 등이 활약한 뒤로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서로 몸을 비틀면서 싸우는 ‘레슬링(wrestling)’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wrestling’은 고대 영어 ‘wræstlian/ wraxlian(다투다, 레슬링, 씨름하다)’이 중세 영어 ‘wrestlen/ wrastlen’이 되면서 ‘wrestle’로 정착을 했다. 이 ‘wrestle(레슬링, 씨름하다, 싸우다)’은 ‘wrest(서로 비틀어 가면서 맞붙어 싸우다, 격투, 씨름하다)’와 ‘-le’가 혼합된 말로 여기에서 ‘wrestling’이 나왔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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