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방도령’, ‘병맛’ 희극과 작위적 비극의 절묘한 재미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7.03l수정2019.07.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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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유치하지만 웃기는 ‘위대한 소원’으로 자신의 장르를 확보한 남대중 감독의 새 영화 ‘기방도령’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다지 기발하지 않은, 많은 작가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미처 시도하지 않았던 기획에 나름의 웅변까지 담아 재미를 담보한다는 점에선 재치가 넘치고, 발전의 가능성을 보인다.

전란으로 경기가 침체된 조선시대 기방 연풍각. 청년 허색(준호)은 여기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지금은 이곳의 주인이 된 ‘이모’ 난설(예지원)의 손에 자랐다. 난설은 그를 통역관이라도 만들려 했지만 이름대로 동네 처녀는 물론 ‘식구’까지 넘보는 난봉꾼에 불과하다.

경기가 어려워 사채까지 빌려 쓴 탓에 곧 연풍각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난설은 보다 못해 색을 쫓아낸다. 거리를 헤매던 색은 자칭 고려 왕족 출신 도인이라는 육갑(최귀화)을 만나 친구가 돼 한잔 사겠다며 연풍각에 데려와 당당히 술잔을 기울인다. 기가 찬 난설은 그들을 묶고 체벌을 한다.

그때 한 손님이 들어오고 잠시 후 기생들이 ‘진상 손님’이라며 투정을 한다. 그러자 색이 응대를 자청하고 잠시 후 난설의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매상이 오른다. 알고 보니 그 손님은 남자가 아니라 남편을 여읜 뒤 수절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인 과부였다. 색은 난설에게 남자 기생 사업을 제안한다.

▲ 영화 <기방도령> 스틸 이미지

육갑이 홍보를 하고 색이 타고난 용모와 갈고닦은 풍류 솜씨로 손님들을 만족시키자 기방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던 색은 어린 몸종 알순과 홍시를 따는 미모의 해원(정소민)을 보고 첫눈에 반해 유혹을 한다. 그녀는 거리를 두는 듯하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그녀는 부모를 여읜 뒤 가세가 급락한 양반가 규수로 오빠 동주의 입신을 위해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동주의 친구인 형조판서 차남 유상(공명)이 오래전부터 그녀를 흠모해 청혼을 하는 중이었다. 색과 해원의 관계는 진전되고 이를 눈치챈 유상은 색의 정체를 의심해 뒤를 캐는데.

전반은 각 시퀀스와 모든 대사가 코미디다. 기호에 따라 엇갈릴 수는 있겠지만 ‘개그 콘서트’보다 거친 실생활적인 일상 속어가 친근하다면 반가울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나체로 거리를 유유자적하던 육갑이 색에게 던진 첫마디가 “도를 아십니까?”다. 말 이름을 색마로 짓는 식이다.

색이 한 기생에게 수작을 걸자 난설이 “식구끼리 그러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주고, 전단지에 ‘꽃선비 상시대기’라고 쓴 것도 생활의 개그다. 색이 해원과 사찰에서 차를 마실 때 저도 모르게 과자를 집어 입에 대는 몸에 밴 ‘접대부 버릇’의 몸 개그. “간장게장 같은 놈. 밥도둑”이란 언어의 유희.

▲ 영화 <기방도령> 스틸 이미지

육갑은 당연히 유머의 중심이다. 난설에게 “나보다 어린 계집”이라 호통쳤다 역공을 당한 뒤 제 나이를 고백할 땐 장내에 웃음이 터질 것이다. 색이 해원을 그리는 시를 ‘텔 미’에 빗대 ‘태을미’라고 지을 땐 살짝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육갑과 난설의 로맨스 같은 키치가 길항작용을 해준다.

이렇듯 유치하다는 비난에서 피하기 힘든 유머 코드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미덕과 철학은 존재한다.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는 남녀평등 혹은 여권신장이다. 마을엔 열녀당이 있고 여기 등재된 열녀들은 수절이라는 족쇄에 행복 추구 권리를 제압당한 채 본능과 욕구의 억제를 명예로 강요당한다.

색은 사랑에 눈뜬 마르크스다. 수염도 없고, 미남이며,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민중 봉기를 외친다는 점에선 다분히 그렇다.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점에선 플라톤이다. 반상의 차별을 반대하는 양반 해원은 ‘여자 엥겔스’다. 부모의 사업이 쫄딱 망해 쪽박을 찬 게 다르지만.

과연 이 내용이 조선시대에 국한된 것일까? 색은 아내를 무시한 채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기방의 여자들과 놀아나고, 그녀들에게마저 상처를 입히고도 당당한 권세가들에게 분통을 터뜨린다. 그가 그런 표리부동한 이중인격자들에게 고통받는 여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술동무가 돼준 게 죄일까?

▲ 영화 <기방도령> 스틸 이미지

해원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엄마를 봤기 때문이다. 엄마는 한 양반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됐다. 하지만 거둬주겠다는 약속을 안 지키자 엄마는 세상을 등졌다. 한 기생이 17살의 나이에 한 세도가에게 ‘기꺼이’ 팔려간다. 그녀는 거둬준다는 약속을 굳게 믿지만 결과는 달랐다.

해원은 색을 ‘단지 외로워 투정 부리는 어린이 같다’고 표현한다. 육갑은 원효대사의 해골을 예로 들어 관념론으로, 또 물아일체란 단어를 통해 헤라클레이토스와 헤겔의 이항대립의 통일론으로 대변한다. 동네 처녀들은 물론 기생들에게마저 인기를 누리는 색은 정작 사랑 경험이 없는 풋내기다.

스스로 ‘양아치’가 아니라고 외쳐대는 건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에 대한 항변이다. 양반과 상놈이란 계급을 타고난다는 불합리성은 과연 조선시대에 끝났을까? 기방과 룸살롱이, 기생과 호스티스가 뭐가 다를까? 숫총각인 육갑이 색에게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묻자 “그냥 들어주면 된다”고 답한다.

그렇게 참다운 사랑을 깨달은 육갑은 외려 색에게 “마음에 들었으면 주둥이가 아니라 마음을 대”라고 충언한다. 유치하지만 현사실적인 코미디로 웃기고, 통속적인 코드로 울리려 하는 점은 윤제균과 닮았다. 정소민의 존재감을 압도하는 알순 역의 고나희가 복병. 110분. 15살. 7월 1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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