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는 큰 틀로 보면 심각하지만 유머의 재미가 있고, 줄곧 어두운 분위기지만 낭만도 갖췄다. 기본 구조는 세종대왕(송강호)과 소헌왕후(전미선)가 중신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것, 세종과 신미(박해일)의 협업과 자존심 대결, 소헌과 신미의 종교적 공감대다.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관리하는 승려 신미는 역적의 아들이다. 그가 불교에 귀의한 건 조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이다. 소헌 역시 친정아버지를 역모죄로 잃었다.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불심은 반정부 행위다. 하나 세종은 그게 기득권을 쥔 양반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는 억지임을 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려는 이유는 “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한 마디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헌법의 사상이 짙게 배어있다. 그는 생업에 바쁘고, 재력이 약한 백성이 보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글이 있어야 국가가 존속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는 왕이지만 권위를 누리거나 왕실을 지키는 것보다 백성의 행복을 더 중하게 여겼다. 백성을 국가의 주인으로 보고 반상의 구분, 양반의 착취와 전횡 등으로 신음하는 그들을 해방시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한글 창제였다. 신미도 그 의견에 동의했고 흔쾌히 동참한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모든 역사 속 군주제라고 왕이 무소불위의 절대적 권력을 휘두른 게 아니다. 특히 조선시대엔 당파가 왕을 폐위하기도, 새로 옹립하기도 했다. 순리대로 양위된 왕일지라도 집권당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세종 때의 사대부는 공자를 섬기는 유교 신자였다. 학문과 사상의 준거틀이 중국인 것.

사랑하는 아내의 부친의 목숨조차 못 지킨 왕이다. 신미는 매우 수양이 깊은 듯 말하지만 사실 그도 인간일 따름. 세종에 배타적이고, 조선에 부정적이다. 무고한 아버지에게 역모를 뒤집어씌워 사형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독재정권 때의 권력 유지를 위한 ‘북풍’과 간첩 조작을 연상케 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는 세종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코웃음 치는 신미의 갈등 구조는 한글 창제라는 하나의 어젠다로 봉합된다. 그들의 작업 과정엔 언어학자 소쉬르와 바르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대화자의 언어 규칙)와 파롤(화자의 언술)으로 나눴다.

그 영향을 받은 바르트는 신화론을 통해 고대의 신화는 물론 현대의 광고와 기사에 서브리미널 효과나 각인 효과를 통한 세뇌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사대부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지만 소헌은 ‘암탉이 울어야 나라도 번성하리’라고 가치전도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강변한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신미가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에 능하다는 건 중국을 우러르는 사대주의에 대한 통렬한 조롱, 중화사상과의 선 긋기다. 특정 종교가 우월하기보다는 서로 다르다는 게 보편적 판단이다. 불교의 선조는 인도의 붓다고 삼장은 중생 구제의 가르침을 얻고자 고초를 겪으며 서역에 갔다.

붓다도 공자도 현자고 성인이다. 그리스 신화로 보면 차안을 떠나 피안에서 신이 된 존재자다. 한자만이 우수한 문자고, 중국의 사상만이 올바른 철학이며, 사상의 척도라는 편견은 기득권 사수를 위한 아전인수다. 산스크리트어로 장작과 걱정이 같은 건 각각 육체와 마음을 태우기 때문이라는 신미!

그래서 그는 물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도롱뇽에게 “너희들이 나보다 낫다”는 세종과 통할 수 있는 것. 그들이 한글을 창제하는 방식은 매우 과학적이고 현사실적이다. 이 작품은 관념론과 유물론을 교묘하게 버무린다. 입 모양, 소리 나는 원리, 실생활의 도구적 존재 등을 조합해 자모음을 만든다.

그 근원은 점-선-면이니 얼마나 간편하고 생활밀착형인가! 여기서 세종은 그동안의 영화나 드라마가 설정한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너희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늙은이일 뿐”이라며 중신들에게 도움을 간청한다. 또 임금 노릇 30년에 겨우 책 한 권 만들었다고 탄식한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이런 장중한 분위기는 조연들이 문득 의외의 유머로 밝게 바꿔준다. 특히 소년 스님 학조(탕준상)와 나인 진아(금새록)의 아슬아슬한 멜로가 그렇다. 진아는 나이로 보나 신분으로 보나 이성 교제 경험이 없을 학조의 마음속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슬그머니 멀어진다. 학조는 ‘ㅂㄱㅅㄷ’라고 쓴다.

사형 학열(임성재)이 ‘보고 싶다’라고 외치자 토라진 학조는 ‘보기 싫다’라고 반박한다. 왕자들의 밥상에 오른 고기를 보고 그들은 “궁궐에 들어온 보람이 없네”라며 신미에게 은유적 항의를 하고, 신미는 “힘든 일을 하는데 풀만 먹을 수 없지”라며 무장을 해제한다. 세 주역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송강호는 예전과 달리 절제된 동작과 표정 관리를 통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적 철학자를, 그래서 지금까지의 왕 노릇의 결과가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허무주의를 표현한다. 박해일은 겉으론 해탈한 현자인 듯하지만 내면은 드넓은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에 고뇌하는 염세주의를 그린다.

고 전미선은 신미의 표현대로 대장부의 강건한 기개를 돌출함으로써 자칫 남성 위주의 영화로 그려질 뻔했던 역사에 딸, 아내, 어머니로서의 완벽한 존재감을 완성한다. 신미는 이제 한글 완성은 시간문제라고 하고, 세종은 나지막이 “내겐 그 시간이 문제”라고 뇌까린다. ‘말모이’의 원조 격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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