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박물관하면 왠지 따분해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런 박물관을 흥미롭게 만들어 준 것이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박물관은 인류의 문화인 미술, 문화, 역사, 과학 등의 업적 및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하고 대중에 전시를 한다. 이들은 대중에게 다양한 행사 및 체험을 제공하고 강의, 지역 문화 전시회나 영화 및 공연을 주최한다. 오늘날은 사람들에게 다량의 정보를 제공하고 문화 및 자연 유산을 미래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가상박물관을 개설해 일반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박물관은 유료 혹은 무료로 개방되는데, 특정한 날에 무료로 개방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 55,000개 이상 박물관이 있고, 대표적인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의 대영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이다.

박물관은 설립 주체에 따라서 국립, 공립, 사립 박물관 등으로 나뉜다. 전시 내용에 따라 종합 박물관과 전문 박물관으로 구분된다. 종합 박물관은 여러 전시품을 한데 모은 것이며, 전문 박물관은 고고학, 역사, 미술사, 인류학 분야 등 특정 주제로 세분화된 박물관이다.

역사를 보면, B.C 2000년 메소포타미아에 박물관에 가까운 유형이 있었다고 본다. 영어 museum의 어원은 그리스어 ‘뮤제이옹(mouseion)'으로 ‘뮤즈(Muse)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안의 보물 창고)’, '뮤즈 아홉 여신의 자리'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회화, 조각 등과 철학 등의 학문적 성과, 보물 등을 봉헌/ 보관하며 다양한 공연 예술을 행하는 문화공간이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박물관 형태라 추정한다. 현대의 박물관에 근접한 것은 B.C 284년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된 ‘mouseion’으로 대박물관이자 대학의 원형이었다. 이곳은 알렉산더 원정 이후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왕이 만든 것으로 부왕의 물건과 예술품을 보관했다. 후일 신전 및 학자들이 문학, 미술, 철학을 연구하는 장소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교육기관들도 뮤제이옹으로 불렸는데, 이들은 연구소나 학교의 성격이 강했고 플라톤의 '아카데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시움'이 대표적이다. 이들 뮤제이옹은 전리품 및 역사적 사건이나 일상의 그림도 전시했기에 박물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 예술품에 대한 관심 증대는 로마시대도 이어졌다. 로마 장군들이 정복지의 미술품 등 전리품을 가정에 진열하며 사립박물관이 탄생했고, 폼페이우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신전을 공개했다. 라틴어 'museum'은 로마 시대에 주로 철학을 논하는 곳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토론장소’란 의미로 사용했다.

중세에는 사원들이 박물관 역할을 했고, 귀족과 부호가 독점했던 미술품과 기타 수집품들이 일부 예술가나 학자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사유재산이라 수집기능 외에 고전적 박물관 기능이 없는 흥미 위주의 전시와 고가의 입장료를 받았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후 희귀 물품들이 반입되며 귀족과 부호들은 이들을 개인 소장품화 했다. 이 시기 미술과 작가에 대한 후원이 높았는데, 박물관의 형성에 메디치가의 후원은 큰 영향을 주었다. 귀족들은 후원하는 작가에게 자신의 선전용 그림을 그리게 했고, 거장의 작품들을 모았다. 일부 귀족과 특정 계층이 이용한 당시 ‘박물관(museum)'이라는 용어는 로렌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15세기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17세기에 박물관은 ‘진기한 물품들을 수집하는 곳’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18세기에는 일반에 공개되는 ‘공공소유의 수집품들을 보존, 전시하는 기관’으로 알려졌다. 18세기 유럽은 외래품의 관심 증가와 계몽운동 정신의 시대로, 이 영향으로 Sir Hans Sloane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대영박물관이 1753년에 설립되었다. 최초 공공박물관은 옥스퍼드대학교의 애슈몰린 박물관이다. 또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1793) 역시 개관되었다. 정부가 설립한 대영 박물관은 역사 및 과학상의 수집품을 장려했다. 미술품 중심의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왕실들의 소장품을 1750년부터 일부 공개했었다.

시민 혁명 후 박물관은 학술연구기관 성격에 대중에게 교육기관의 역할도 했다. 19세기에는 전문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1799년 파리 이공학 박물관, 1807년 덴마크의 고고학 박물관 등의 설립은 신흥 도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장식이 많고 건물이 화려했다. 이 시기 박물관은 시민 교육기관의 의미를 지녔고 특정계층용 박물관은 '공공성'을 부각하며 대중 친화적으로 변모했다. 영국은 1845년 박물관령 공포로 박물관이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췄다. 프랑스는 혁명 후 국가의 문화유산이자 시민을 위한 박물관으로 변화시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서는 수 많은 박물관 설립이 활발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불경기 등의 사회변화로 유럽의 정부, 협회들은 변하는 사회속의 박물관 역할을 재검토했고, 대중 서비스 개선을 추구했다. 소련은 혁명 후 국가가 박물관을 통제해 정치적 선전도구가 되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자국의 역사와 인물들을 선전하기 위해 지방박물관을 신설해 민족주의를 고취했다. 제2차 세계대전후 국립박물관의 기능 확대로 많은 지방박물관에 재정 및 기타 원조를 하며 박물관은 큰 발전을 했다. 박물관들은 변화하는 사회에 부응해 발전하며 박물관의 대상이 학자중심에서 일반인으로 바뀌었다. 19, 20세기 박물관은 일반인에 공개되는 문화적 물품을 소장하는 건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우리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박물관(museum)’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Museum’은 고대 그리스어 ‘Mouseîon(뮤즈 여신의 신전)’이 라틴어 ‘mūsēum(library, study, 복수형은 museums)’이 되었다. 이 말을 영어에서 차용하여 최종 ‘museum’으로 정착을 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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