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희생은 점점 더 큰 희생을 요구할 뿐입니다 [박수룡 칼럼]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l승인2019.12.03l수정2019.12.03 17:5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데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때로는 해를 끼치는 남자를 사랑하고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남자가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이런 여자들은 아주 작은 흔적을 가지고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또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를 좋은 남자로 바꾸어서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하겠다는 각오로 살아갑니다. ​이런 경우를 ‘구원자 환상’이라고 합니다.​

‘구원자 환상’에 빠져있는 여성들은 냉정한 남자에게 더 끌리고 자신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남자는 따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처를 주거나 신체적,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는 ‘나쁜 남자’를 좋은 남자로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그 남자가 아주 사소하게 베푸는 친절을 사랑의 표현이라 믿고,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다고 여깁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을 것이고, 내가 떠나고 나면 그가 외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떠나지 못합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이 남자를 구원할 수 있다는 과도한 책임감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

이들은 왜 이런 사랑에 빠지고 또 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구원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정서적인 욕구를 충분히 충족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 부모가 밥을 주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자라서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무관심하거나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 욕구가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정서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아이들은 반항적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순종적으로 되기도 합니다. 지혜씨처럼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책임져서 부모의 수고를 덜거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애쓰는 식입니다. 마치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꺼야?’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지요. ​또 어른이 된 후에는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타인에게 쏟아 붓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즉 자신의 부모를 ‘좋은 부모’로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배우자는 ‘좋은 배우자’로 바꾸려고 애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부모와의 관계가 언제 단절될지 모르는 공포 상황에서 자라난 경우에도 ‘구원자 환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혜씨는 어머니가 언제 가족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며 자라왔기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게 버림받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어떤 희생이라도 하면서,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불행해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다 같이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심리 밑바닥에는 과거에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이 남아 있습니다. ​

하지만 그 열망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사랑과 관심을 얻으려 하는 대신,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선택하여 그를 보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보답을 받지 못해도 상대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만 자신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만 더 애쓰면 상대가 ‘착한 마음’을 회복해서 자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본인도 미처 모르는) ‘다른 사람을 조정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대가 사랑한다고 확실히 말을 했거나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은 분명히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 부모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이 사람만은 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다음편에서 계속...)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미학적 포토갤러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5가길 28, 10층 1016호(적선동, 광화문 플래티넘  |  대표전화 : 02-734-8802  |  팩스 : 02-6383-0311 ㅣ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42  |  등록일자 : 2015년 1월 20일 ㅣ제호 : 미디어파인 ㅣ 대표이사 : 문수호  |  전무이사 : 이창석   |  주필 : 김주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석
Copyright © 2019 미디어파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