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백범 김구]

남목청 사건

-임시정부 시절에 겪은 남목청 사건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1938년 5월 임시정부가 옮겨간 중국 장사(長沙)에서 독립운동 세력의 합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모임에서 밀정인 조선혁명당원 이운한의 총격으로 가슴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정신을 잃었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총에 맞은 나는 장사 상아병원으로 옮겨졌고, 수술 후 기적적으로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총알이 심장 앞에서 멈췄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일을 ‘백범일지’에도 적어놨습니다. 그날 조선혁명당 당부(黨部)인 남목청(楠木廳)에서 연회가 있었지요. 금전 보조를 조금 해준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참석했는데 밀정이었습니다. 그가 권총을 난사할 때 제1발은 내가 맞고 제2발에 현익철이 중상, 제3발에 유동열이 중상, 제4발에 이청천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범인은 곧 체포됐고 사건을 사주한 박창세, 강창제 등도 수감됐습니다.”

-안두희는 백범 선생 암살의 하수인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그 배후에는 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누가 봐도 일개 포병 소위 따위가 단독으로 암살계획을 세우지는 않았겠지요. 아마도 생각건대 이승만 정권의 핵심, 친일파, 분단세력, 외세 등이 조직적으로 연계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두희가 처음에는 특무대장 김창룡의 지시로 암살했다고 밝혔지만 나중에는 아니라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직도 정확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의혹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기자로 활동할 때 안두희씨와 한번 인터뷰를 했는데 김창룡의 지시로 했다고 그러다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는 등 약간 횡설수설 하더군요.

“그랬을 겁니다. 그날도 아무런 사전연락도 불쑥 찾아왔는데 용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더군요.”

전국에 울려퍼진 조가와 조시

-아무튼 그해 7월 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해방 후 국민장은 처음이었습니다. 경교장을 찾은 조문객은 무려 124만 명이었습니다. 이때 노산 이은상이 짓고 김성태가 작곡한 조가가 전국에 울려퍼졌습니다.

“아, 그래요.”

잠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그날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다음은 김삼웅씨가 쓴 ‘백범 김구 평전’에 실린 조가의 내용이다.

1. 오호 여기 발 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땅도 울고 바다조차 우는 소리 끝없이 우는 소리.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여 듣습니까.

2. 이 겨레 나아갈 길이 어지럽고 아득해도 임이 계시오매 든든한 양 믿었더니 두 조각 갈라진 땅 이대로 버리고서 천고의 한을 품고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3. 떠도신 70년을 비바람도 세옵드니 돌아와 마지막에 광품으로 지시다니 열매를 맺으려고 지는 꽃이 어이리까. 뿜으신 피의 값이 헛되지 않으리라. 헛되지 않으리라.

4. 삼천만 울음 소리 임에 몸 메고 가오. 편안히 가옵소서 돌아가 쉬옵소서.뼈저리 아픈 설움 가슴에 부드안고 끼치신 임의 뜻을 우리 손으로 이루리다. 우리 손은로 이루리다.

이밖에 시인 박두진이 ‘오, 백범 선생’이라는 시를 썼고 시인 조지훈은 ‘마음의 비명-김구 선생의 영여(靈轝)를 보냄’이라는 시를 썼다. 중국 망명시절에 서로 의지했던 중국 총통 장개석은 백범의 비보를 듣고 ‘추성이 하룻밤에 떨어지니/하늘과 땅은 놀라고 슬퍼하며 우는 도다’라는 만사(萬詞)를 영전에 보내왔다.

장례식은 이날 저녁 9시10분경 서울 용산 3의사 묘역이 있는 효창원 장지에서 거행되고 10시5분 촛불을 켜고 하관식을 마쳤다. 불꽃 같은 생애를 상징하는 듯했다.

▲ gamsam1013@naver.com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부덕민, 『백절불국의 김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2009)
·김삼운, 『백범 김구 평전』 (시대의 창, 2004)
·김구,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돌베개, 2018 개정판)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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