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모가디슈> 포스터

[미디어파인 칼럼=정분임 작가의 아무튼 영화&글쟁이 엿보기] 1991년 부패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대와 아이디드가 이끄는 반군의 침공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아비규환이었다. 생사를 다투는 그 곳에서 남한과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극적으로 탈출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실화와 영화는 좀 다른 점이 있으나 남·북한 사람들이 죽음의 위기에서 서로를 챙기며 이방의 땅 모가디슈를 빠져나오는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북측 사람들이 약탈을 당하고 폭력을 당해서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던 강대진(조인성)은 마음을 열게 된다. 북측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남과 북측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데 북측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지 못 한다. 믿지 못 해서이다. 한신성(김윤석) 대사가 북측 대사의 밥그릇을 바꾸어 밥을 입에 욱여 넣자 그들은 안심하고 식사했다.

북한 아이들을 보자마자 남측 대사관 사무원(김재화)은 “쟤들은 훈련받아서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인다던데”라며 꺼림칙하게 여겼다.

▲ 영화 <모가디슈> 스틸이미지

남측 대사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북한 아이들의 눈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이 먼저 다가왔다. 그냥 아이들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던 아이들은 밖에 있었다. 소말리아 부패 정부 아래서 억압당하여 모든 순수함을 약탈당한 아프리카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총을 겨누며 “돈 내놔! 돈 내놔!”를 외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 로버트 게스트는 그의 책에서 “콩고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계단에 앉아 AK-47 소총에다 뺨을 대고 있는 소년 병사의 모습”(『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김은수 역, 지식의 날개, 2009)이라고 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위대와 폭도를 따라서 총을 쏘고 물건을 훔치는 어린 병사들이 참 끔찍하고 가여웠다. 호돌이 남한 인형을 보고서 눈을 감아야 했고 사상 교육을 철저히 받아온 북한 아이들이더라도 총소리가 나면 엄마의 치맛자락에 파고들었다. 소말리아 아이들이 총으로 “따다다다” 쏘는 시늉을 하자 북한 아이들은 “욱”하며 쓰러지는 시늉을 하였다. 잠시 전쟁놀이를 하면서 얼굴이 검든 검지 않든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허공에 총알을 난사하면서 아이는 악마가 깃든 표정을 지었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부모의 보호 아래 먹고 자고 쉬어야 할 아이들에게 신은 너무나 가혹했다. 신에게 엎드려 기도를 끝내자마자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폭도들은 진정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걸까? 그들의 신이 이교도들 따위야 모두 원수이고 악마이니 무조건 없애라 했을까? 아이들도 무장하여 싸우라 했을까? 아이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와 순수에 씻김을 받지 못하고 소말리아 사람들은 아버지임을 잊은 채 맹목적으로 신을 믿고 싸웠다. 진정 무엇을 위해서?

▲ 영화 <모가디슈> 스틸이미지

1991년 이후 남과 북의 관계는 좋아졌는가?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갔다. 북한 주민들은 환호했고 김정일도 반겨주었다. 개성공단이 생기고 2000년 6월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통일의 물꼬가 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개성공단은 폐쇄가 되었는데 정회장이 주었던 소들은 북한 땅에서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지 않았을까?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은 정부의 부패, 가난, 내전 등으로 불안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커피콩을 따고 돈 벌러 나간 부모를 대신하여 흙밥을 먹으며 집을 지킨다. 이슬람국가IS소년 병사는 몸에 폭탄을 설치한 채 테러 현장에 뛰어든다. 북한의 아이들은?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코로나에 얼마나 감염되었는지? 치료제는 있는지? 백신은 맞았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모가디슈에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돌봐주었던 그 마음이 지금도 우리에게 있을까? 사람을 때려잡는 애라고 여겼는데 그냥 남한 아이와 똑같이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였음을 깨달아 빗발쳐오던 총탄 속에서도 지켜주었던 아버지같은 마음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우리가 맞아야 할 코로나 백신을 북한에 왜 퍼 주냐며 볼멘소리를 내던 마음만 남아있는 건 아닐까?

▲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극동방송 주님의 시간에 작가(2014~19)
글쓰기 강사
저서 ‘영화로 보는 신앙’, ‘꿈꾸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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