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표석 따라 서울 톺아보기] 이 칼럼은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첫 번째 답사기다.

‘표석(標石)’은 현존하지 않는 역사적 장소, 또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 발생한 공간에 설치한 표지물이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은 1985년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신설 및 정비계획’에 의해 처음 설치돼 2023년 1월 현재 335개에 이른다.

문화지평은 지난 4월 29일 오후 3시부터 6시30분까지 동대문역 경성궤도회사터 표석부터 서대문정거장터 표석까지 종로길을 중심으로 남북을 오가며 ‘조선·대한제국 경제번영의 표석길’이란 주제로 답사를 했다. 문화지평 답사는 7회 차 진행된다. <편집자 주>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1차 답사 웹포스터.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1차 답사 웹포스터.

1차 답사 해설은 김태휘 해설사가 맡았다. 김 해설사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조경학 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건축문화와 역사, 환경 등에 대한 해설을 하는 인문학자다. 창덕궁‧의릉 궁궐길라잡이, 한양도성 시민순성관으로 있으면서 생태와 건축, 역사 분야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번 답사 주제인 표석과 관련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등 총 4권의 공저를 주도한 표석 전문가다.

출발지인 동대문역 7번 출구에 인접한 동대문호텔(구 이스턴호텔) 정문 오른쪽 인도변에는 ‘경동궤도회사터’ 표석이 있다. 표석 문구는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뚝섬과 광나루까지 경성 궤도회사가 경영하던 궤도전차가 운행하던 시발지. 이 협궤전차는 승객 및 물자 수송, 교외 나들이의 중요한 교통시설이었다.’고 적혀 있다.

경성궤도회사터부터 서대문정거장터까지

문화지평 회원들이 답사 출발에 앞서 동대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문화지평 회원들이 답사 출발에 앞서 동대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이번 답사는 단순히 표석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역사문화 자원 전반을 훑으면서 서울이 가진 역사적 시층(時層)을 톺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산재한 표석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표석을 선별해 한 주제로 꿰서 답사하는 주제형 답사로를 만들었다. 이번 주제는 ‘조선·대한제국 경제번영의 표석길’인데, 조선과 대한제국 시기, 근대까지 경제활동의 중심이었던 운종가(종로통)를 중심으로 설치된 표석을 답사했기 때문이다.

운종가는 구한말 노면 전차가 처음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놓이면서 경제활동을 더욱 촉발시켰다. 인구와 물산의 원활한 이동 속에 문물과 지식이 함께 움직였고 성리학의 시대와 안녕을 고하고 실학과 실물경제의 시대로 접어드는 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일제의 강제합병에 의한 식민지 시대와 해방, 한국전쟁 등 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격변을 겪는다. 이런 시층이 사대문 안에 첩첩이 쌓였고 후대들은 이를 표석으로 남기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 답사는 동대문 앞에서 모여 경성궤도회사터를 시작으로 전차차고터, 공립어의동실업보습학교터, 이교터, 최시형순교터, 좌포도청터, 천주교신자순교터, 단성사터, 세창서관터, 경시서터, 육의전터(이설 전), 김수영생가터, 우미관터, 대한천일은행본점터, 조선일보창간사옥터, 3.1독립운통기념터(종로YMCA), 김상옥의거터, 육의전터, 의금부터, 혜정교터, 장예원터, 한성전보총국터, 사역원터, 아주개, 협률사·원각사터, 훈련도감터, 홍화문터, 동양극장터, 김종서집터를 거쳐 서대문정거장터에서 마무리했다.

27개 표석 지나며 역사 시층 들여다 봐

김태휘 해설사가 ‘전차차고터’ 표석이 있는 동대문 메리어트호텔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김태휘 해설사가 ‘전차차고터’ 표석이 있는 동대문 메리어트호텔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답사로인 동대문과 서대문을 이었던 전차는 이번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전차관련 표석은 ‘전차차고터’ 하나지만 서대문 출발지 옆에 있던 서대문정거장은 경인철도의 종착점으로 기차와 전차의 연계 때문에 애초 전차노선 계획까지 변경시켰다. 전차는 한성부의 전기, 전차, 전화사업의 특허권을 허가받은 한성전기주식회사(1904년 한미전기로 개칭)가 대한제국이 선포된 다음 해인 1898년 설립되면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한성전기는 1898년 1월 18일 이근배, 김두승이 한성 구내에 전차, 전등, 전화 설비 시설 및 운영권을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신청해 26일 인가받은 회사로 전차 부설은 다음 달인 2월 1일 사장 이채연과 콜부란 간의 전차 건설계약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계약서에 따르면 전차가 부설될 노선은 ‘남대문으로부터 주요 도로를 경유, 동대문을 통과하여 홍릉’에 이르는 것이었다. 처음 계획된 전차 개통노선은 조선시대 한성부 동서 중심축인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종로 대로에 남대문을 연결해 부설하는 것이었다. 또 동대문 동쪽으로는 홍릉까지를 노선으로 했다. 그러나 전차노선은 처음 계획과 달리 남대문~홍릉 간이 아닌 서대문~홍릉 간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경인철도 종착역인 경성역(이후 서대문정거장)과의 연결 때문이었다.

당시 종로통에는 전차사업 주체인 한성전기가 있었고 동대문 현 메리어트 호텔 자리에는 전차 동력원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와 전차차고가 위치하는 등 전차 노선 주변에 주요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경제번영은 시민들의 문화생활 향유와 맞물려 있다.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문화에 대한 욕구와 함께 지출도 늘어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다. 그래서 이번 표석 길에는 극장들도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옛 전차차고터에도 광무대(光武臺)란 극장이 있었다. 원래 활동사진과 창극단의 주무대로, 당시 명칭은 ‘전기회사 활동사진소’였다. 광무대 극장건립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나와 있지 않지만, 1898년(광무 2년)에 한성전기회사 전차고 안에 설치한 가설무대가 그 전신으로 알

려져 있다. 우미관, 단성사, 협률사, 동양극장 등이 당대 서울의 문화를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던 공간으로 모두 이번 답사 노선에 포함돼 있고 지금은 표석만 남은 곳이다. 표석만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져 보조되지 못하거나 사유재산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표석 답사는 ‘소멸 역사자원의 가치 제고’가 목적

이번 답사의 숨은 목적 중 하나는 표석을 세울 필요가 있는 소멸역사유적을 찾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로구 수표로 104 현 대한보청기 종로직영점 옆 건물은 박인환이 문을 연 ‘마리서사’라는 책방이 있던 곳은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꽤나 많은 문인들과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답사의 숨은 목적 중 하나는 표석을 세울 필요가 있는 소멸역사유적을 찾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로구 수표로 104 현 대한보청기 종로직영점 옆 건물은 박인환이 문을 연 ‘마리서사’라는 책방이 있던 곳은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꽤나 많은 문인들과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지평은 이번 답사 목적을 시대 변화에 따라 소멸된 문화유적이 위치했던 자리에 1985년부터 세워진 표석을 따라 도보답사를 하면서 표석이 품고 있는 역사·예술·학술·경관적 가치를 톺아봄으로써 서울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역사문화 역량을 시민과 공유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또 선대의 얼과 문화가 담겨 있는 소멸건축물과 장소성은 서울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은 역사문화 자원으로써 이를 담고 있는 표석의 가치와 정확한 위치 중요성 등을 시민과 알아가고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근현대를 아우르는 표석은 당시의 국가 제도와 생활사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 소멸문화유적의 중요성과 아울러 표석 제도의 필요성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표석에 세워진 소멸문화유적 뿐만 아니라 주변의 도시 경관 변화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광복이후를 거치면서 쌓인 역사·문화자원, 자연·생태자원, 산업·관광자원 등에 대한 시층별 ‘시공간’ 답사를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가치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목적이다.

이를 통해 표석과 소멸문화유적은 물론 서울의 가치에 대해 시민사회 관심을 증진시키는 한편 다양한 디지털 아카이빙을 통해 항구적 기록보존과 불특정 다수 시민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문회지평 방침이다.

코스가 긴 만큼 답사는 3시간30분 가량 진행된 후 어스름이 내려올 무렵 마쳤다. 답사객 모두 표석에 담긴 의미를 새삼 느꼈다는 반응이었고 다만 답사로는 너무 익숙해서 다소 밋밋했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설치된 표석 335개 중 80%에 달하는 271개가 종로와 중구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서울 시민이라면 수도 없이 다녀서 새로움은 비록 적었지만 그동안 스치듯 지나쳤던 표석이 품고 있는 서울의 역사 한 자락을 알고 돌아간다는 면에서는 의미있는 답사라고 자평한다.

<참고문헌>
- 2023년 역사문화유적 표석 정비 계획, 서울시 문화재정책과, 2023
- 서울시 표석현황,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2022
- 디지털 인문학과 시민 교양 :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관련 사료 디지털화의 필요성 및 그 방안, 장진엽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조교수, 2022
- 역사문화유적 표석 :사료조사 상․하, 연세대산학협력단, 서울특별시, 2019
- 역사문화유적 표석 사료집,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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