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표석 따라 서울 톺아보기] 이 칼럼은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세 번째 답사기다.     

‘표석(標石)’은 현존하지 않는 역사적 장소, 또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 발생한 공간에 설치한 표지물이다.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은 1985년 ‘역사문화유적지 기념표석 신설 및 정비계획’에 의해 처음 설치돼 2023년 1월 현재 335개에 이른다.     

문화지평은 지난 6월 17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합정역에서 출발해 한강변을 넘나들며 ‘나루터와 물산의 표석길’이란 주제로 답사를 했다. 표석 답사는 모두 7회 진행된다. <편집자 주>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3차 답사 웹포스터.     
2023년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일환으로 문화지평이 진행하는 ‘표석이 품은 소멸문화유적을 따라 톺아보는 서울 역사’ 3차 답사 웹포스터.     

3차 답사 해설은 전상봉 해설사가 맡았다. 전 해설사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있다. 강남개발사를 담은 ‘강남을 읽다’ 등을 저술하고 한성백제 역사에 해박한 서울학 전문가다. 문화지평과는 2016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역량 있는 해설가다.

무더위가 서서히 시작되는 계절이라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자 오후 느지막이 3시에 답사시간을 잡았지만 열기가 뜨거웠다. 한창 핫한 동네 합정답게 타오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넘쳤다. 답사팀은 역 인근 한산한 곳으로 이동해 '경조오부도'부터 살폈다. 한성부 전체가 담긴 지도에는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등 주요 궁궐을 비롯해 서울 인근의 지역이 상세히도 담겼다. 

그 중엔 답사 일행이 거닐 장소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은 원체 교통수단이 발달해 굳이 한강에 의존하지 않아도 온갖 물물의 이동이 가능하나 당시로선 한강의 힘이 실로 컸다. 한강진, 용산나루, 서강나루 등 3강을 주축으로, 훗날 양화진, 마포나루, 더 나아가 서빙고, 두모포, 뚝섬 등지까지 한강 곳곳에 나루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부유한 상인들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를 양산했고 교역의 중심지라 칭할 법한 장소들이 이날 답사 장소로 선택됐다. 정확히는 표석을 따라 걷는 일의 일환이었고, 교역과는 다소 상관이 없을지라도 위치가 한강 유역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들른 곳도 있긴 했다. 

한강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절두산 유적지를 가로질렀다.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희생이 있었던 장소다. 이제는 하나의 성지이자 지역주민들을 위한 훌륭한 공원이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절두산 앞쪽으로 양화진 나루터 표석이 있다. 

한 때 동일한 모양의 표석이 몇몇 곳에 놓여 있기도 하였으나 정확한 위치를 두고 다툼이 있은 후에 철거되는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이곳의 표석 또한 바로 옆에 뿌리내린 나무에 절반  가량 뒤덮인 상태였는데, 지금은 일종의 타협을 한 듯 나무의 한 쪽 부분이 가지치기 된 모습이었다.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에 부임한 후 이병연과 더불어 만든 화첩이 있어 당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극도의 세심함이 담긴 그림에는 태종의 손자인 이홍이 지은 별장의 흔적 또한 담겨 있었다. 앞이 탁 트인 풍경이 풍류를 읊기에 제격이었을 것이요. 왕위 계승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왕실 집안사람에게는 별장에 기거하며 시를 짓는 일 따위가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전부와도 같았을 것이다. 

나루터는 부유한 상인과 물산 집합소    

문화지평 회원들이 답사중 당인리발전소인 마포새빛문화공원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문화지평 회원들이 답사중 당인리발전소인 마포새빛문화공원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한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한강의 푸르름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시설물이 등장했다. 1929년 준공, 1930년부터 전기를 생산한 석탄화력 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는 공원이 됐다. 여전히 지하에선 2기의 발전기가 가동 중이지만 과거처럼 연기와 소음을 내뿜어가며 에너지를 생산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꽤 됐다.

이즈음에서 우리나라의 전기 생산 역사를 살펴본다. 최초의 전기 사용은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주변 국가에 비한다면 오히려 일렀으면 일렀지 늦지는 않았다. 건청궁을 환히 밝혔을 1887년 무렵에는 어쩌면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겠단 자부심으로 마음이 설렜을 수도 있으나, 서대문에서 홍릉을 오가는 홍릉선 전차가 개통된 1899년에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일제의 칼을 맞고 스러진 명성왕후를 떠올리는 고종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지, 전차를 타고 홍릉을 찾을 적마다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 가득 수심이 피어오르진 않았을지 싶다. 초기의 전기 생산에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다. 향원정이 전기 생산을 위한 물 공급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엄청난 소음과 고온을 내뿜었다. 

당인리발전소를 나와 한참을 걷다가 서강나루터 표석을 만났다. 표석에는 ‘삼개 나루(용호,마호,서호)의 하나. 삼남 지방과 서해안으로부터 곡물과 어물이 들어오던 나루터.’라고 각자돼 있다. 원래의 위치는 여기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위치 비정 이루어지기 힘든 까닭이 있다. 나루터라는 것이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한강을 타고는 마포나루나 서강나루 일대까지 올라왔고, 이는 세금 등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배의 자유로운 정박을 가능케 했다. 그에 따라 각종 물산의 보관을 위한 창고 같은 시설 또한 생겨났고 이들 흔적은 오늘날 지명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역명 광흥창역의 ‘광흥창'은 관리들의 녹봉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그런가 하면 창전동은 '창고 앞 동네'를 의미한다. 

광흥창이었음을 알리는 표석과 맞닿은 곳에 공민왕 사당이 있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그를 기리는 공간이 어찌 한양에 자리를 잡았는지를 두곤 광흥창을 지을 때 꿈에 공민왕이 나타났다는 둥, 광흥창을 관리하는 이의 꿈에 공민왕이 등장했다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어떠한 연유가 되었건 한강 근처에 각종 부군당이 많은 건 뭐라 설명이 어려운 기운이 이 근방에 서렸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사당이 품은 신성한 기운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내부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공민왕, 노국공주, 최영 장군의 영정이 있단 문장이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아파트 단지로 접어들었다. 모든 이들에게 심각한 충격을 안기며 무너졌고, 불도저로 불리던 서울시장의 퇴임을 촉진한 와우 아파트가 있었던 곳이다. 무너진 동의 위치가 어디 즈음이라는 설명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당시의 흔적을 찾을 길은 없었다. 무조건 지우기가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겠지만, 새로운 것으로 뒤덮어 버리면 없앨 수 있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며 오랜 기간 앞으로 나아가기에만 바빴던 게 사실이다. 

폭파된, 그러나 차츰 흙이 쌓이면서 다시금 거대해진 밤섬의 거주자들이 섬에서 쫓겨나 세웠다는 부군당은 들어선 아파트로 인해 입구가 가로막힌 형국이었다. 담장 위로 솟은 기와지붕을 통해 대략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섬 폭파가 이루어진 건 1968년이다. 

아무리 여의도 개발이 절실했다고는 하나 섬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까지 했다는 점은 무척 놀랍다. 섬에서 나와서도 한데 모여 살았다는 밤섬 실향민들. 그들의 애처로움이 이제는 밤섬 관련 문화 행사나 독특한 지역 정체성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지 싶으면서 아이러니했다. 

한강변에 여러 개 있는 무쇠막터 

무쇠막터는 무쇠솥과 농기구 등을 만들던 공장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성동구 금호동에도 있다. 
무쇠막터는 무쇠솥과 농기구 등을 만들던 공장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성동구 금호동에도 있다. 

쇠를 녹여 솥이나 농기구 등을 만들던 터를 뜻하는 무쇠막터 표석은 횡단보도를 앞둔 지점에 놓여 있었다. 표석에는 ‘무쇠막은 정부에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바친 철공장이 모여 있던 곳이다. 일찍부터 무쇠막 또는 무수막 터로 알려졌는데, 무수막에서 수철(水鐵)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수철리에서 신수동이라는 동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적혀 있다. 

한쪽은 신수동, 다른 쪽은 구수동, 이와 같은 지명은 수철리(水鐵里), 즉 무쇠솥과 농기구 등을 만들던 공장이 있어 불린 이름인 '무쇠막', '무수막' 등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전 해설사는 성동구 금호동 쪽이 더 번성했다고 설명했다. 

성동구 무쇠막터에는 ‘조선시대 선철(銑鐵)을 녹여 농기구, 무쇠솥 등을 주조(鑄造)하던 대장간 집단지로 무쇠를 녹이던 곳. 무시막이라고도 하였다.’고 써있다.

남편의 날개 이야기를 발설한 부인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는 박석고개를 지나 영풍 아파트에 다다랐다. 구수동 41-2. 시인 김수영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주소로 이를 의식한 것 마냥 우리 눈앞에 놓인 건물의 입구에는 41-4라는 숫자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시인은 1956년 6월부터 1968년 6월 15일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치여 사망(사고 다음 날인 6월 16일)할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를 비롯해 각종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찼으며 재건축으로 일대가 번잡하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외진 장소였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서울 한복판에서 닭을 치며 생활하는 일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건물 앞에 모여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르신 한분께서 말씀을 건네셨다. 당신께서는 시인에 관한 표석 설치를 위해 애쓰고 계시다고 하셨다. 그럼서 김수영 문학관을 도봉구에 “빼앗겼다”고 표현했다. 사실 시인과 관련된 공간은 이곳 구수동만이 아니다. 도봉구(문학관이 위치한 방학동보다는 시비가 놓인 도봉동 쪽이 보다 연관 있다 하겠다.)는 물론 포로수용소가 위치했던 거제 또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태어나고 자랐던 종로는 또 어떤가.  

탕평책의 교범 박세채 소동루 있던 곳  

전상봉 해설사가 ‘박세채 집 터’ 표석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전상봉 해설사가 ‘박세채 집 터’ 표석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한강을 바라보는 아파트들을 옆에 낀 채 조심스레 오르막길을 올랐다. 밤섬 공원 옆 아파트 단지 입구에 박세채 정승이 살던 곳임을 알리는 표석이 놓여 있었다. 표석에는 ‘박세채(1631~1695)는 조선후기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유학자로 예학(禮學)을 중시하였으며, 대동법의 실시를 적극 주장하였다. 이곳은 박세채 집에 있던 소동루라는 정자가 있던 곳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름은 낯서나 알고 보니 좌의정까지 역임했으며 문묘에 종사된 육현 중 한 명이었다. 당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를 살다 간 이 인물은 한 때 송시열과의 친분을 쌓았으나, 나중에는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분자라는 평도 물론 가능은 할 터이나, 양자 모두를 이해하는 유연한 학문적 사상은 훗날 영·정조가 탕평책을 펼치는데 이론적 토대로 활용됐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밤섬공원을 거쳐 삼개나루라 불렸다는 마포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훈련도감의 군병들 급료를 지급하는 곳이었다는 별명창과 그 곳에 딸린 누각인 읍청루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이제 답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가까운 여의도에서 열려 그런지 이를 대비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토정터 표석은 한강삼성아파트 내 어린이공원 뒤쪽에 있다. 표석 문구는 ‘조선중기 저명한 역학자(易學者)였던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집터.’라고 써 있다.  

굳게 닫힌 문으로 인해 먼발치에서 까치발을 한 채 내부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용강동 정구중 가옥을 끝으로 해설을 마무리했다. 답사는 3시간40분 가까이 진행됐다. 

<참고문헌>
- 2023년 역사문화유적 표석 정비 계획, 서울시 문화재정책과, 2023
- 서울시 표석현황,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2022
- 디지털 인문학과 시민 교양 : 서울시 역사문화유적 표석 관련 사료 디지털화의 필요성 및 그 방안, 장진엽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조교수, 2022
- 역사문화유적 표석 :사료조사 상․하, 연세대산학협력단, 서울특별시, 2019
- 역사문화유적 표석 사료집,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2015
- 전수정 네이버 블로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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