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다 웃는데 한군데만 침울하다. 국내 4대 배급사 중 유일하게 극장에 직접적인 연이 없는 NEW 얘기다. 총제작비 180억 원을 쏟아 부은 대작 ‘대호’(박훈정 감독)가 지난 25일 성탄절에 16만5791명을 동원해 누적 관객 수 118만8908명을 썼다. 손익분기점은 사실상 멀어졌다. 이에 반해 경쟁작 ‘히말라야’(이석훈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는 같은 날 74만6270명을 끌어 모으며 역대 성탄절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가운데 총 관객 수 320만을 넘어서며 벌써부터 1000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 영화 '대호' 스틸

한국에서 유난히 흥행에 약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포스’마저도 44만6990명을 불러 201만 명을 합산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이미 깬 뒤 300만 명까지 넘보고 있다. 특이한 점은 ‘히말라야’에 혹평이 적지 않게 눈에 띄지만 ‘대호’는 호평이 두드러진다는 것. 물론 ‘히말라야’의 경우 이미 폭발적인 흥행세 때문에 큰 기대를 갖고, ‘대호’의 경우 의외의 부진한 성적 때문에 기대치를 낮추고 봤다는 선입견에 대한 반작용이겠지만 관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성적표는 곧 영화의 품질에 대한 절대평가임은 맞다는 점에선 아이러니다.

이를 위한 분석엔 역대 1000만 관객동원 영화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블록버스터를 제외한 ‘7번방의 선물’ ‘변호인’ ‘왕의 남자’, 그리고 준블록버스터급 ‘국제시장’에 그 답이 있다.

영화들은 하나같이 휴머니즘을 중심축에 탄탄하게 박아놓고 있다. ‘7번방의 선물’과 ‘국제시장’은 가족애고, ‘왕의 남자’는 인간 본연의 정체성과 인생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변호인’은 이념 논란을 떠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근본을 웅변한다. 결국 사람냄새를 진하게 풍겨 관객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면 사이즈가 작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다.

▲ 영화 '히말라야' 스틸.

그런 면에서 ‘히말라야’는 휴머니즘에 대한 흥행논법의 기본기에 아주 충실하다. 이 영화를 제작한 감독 출신의 윤제균은 초기엔 ‘코미디-성-신파’의 3단 흥행공식에 철저한 연출자였다가 점점 휴머니즘에 비중을 많이 두는 작가 겸 프로듀서로 변했다. ‘히말라야’는 이런 그의 스타일에 정확하게 응답했다.

‘대호’ 역시 부성애 등 가족애에 많은 비중을 할애했지만 앞이 아닌, 뒤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그것에 집중할 타이밍을 늦게 준다. 게다가 윤제균 식으로 그 누구나 알기 쉽게 드러내놓은 가운데 2차원적으로 그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은유적 표현법에 거창한 철학적 포장을 함으로써 지나치게 수준이 높았다는 게 오히려 핸디캡이다. 그건 상업영화의 화법이라기 보단 아트무비적 장치다. 뿐만 아니라 전작 ‘신세계’의 집중력을 박 감독이 많이 잃은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그 누구나 걸작으로 뽑길 주저하지 않는 ‘신세계’는 이자성(이정재) 강 과장(최민식) 정청(황정민)의 관계도가 명확했다. 세 인물이 어떻게 얽히고설켰는지, 왜 갈등하고 방황하는지, 그리고 그런 상승과 하강이 어떻게 매조지 되는지 아주 매끄럽게 그려냈다. 여기에 신스틸러인 이중구(박성웅)부터 중국 거지암살단까지 요소요소의 조연들이 딱 제자리를 지키게끔 배치한 연출력 혹은 편집의 힘이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호’는 구경(정만식)의 역할에 비해 과하게 비중과 무게를 주고, 류(정석원)의 캐릭터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등 주조연과 조연의 밑그림을 잘못 그렸다. 더불어 대호와 천만덕(최민식)의 대치관계가 지나치게 철학적이고 동화적인 면 역시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호’가 의외로 부진한 이유에 배급시장에서 엄연히 큰 힘을 발휘하는 상업의 논리가 없다고 보긴 힘들다. 만약 NEW가 국내 멀티플렉스 1, 2위를 다투는 CJ나 롯데는 아닐지라도 쇼박스처럼 메가박스에 대해 ‘옛정’이라는 구실이라도 들이밀 수 있는 ‘연줄’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학연 지연 혈연 등 특정 연을 바탕으로 한 카르텔 성격의 집단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병이란 사실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이미 이루 셀 수 없이 거론됐고, 되고 있는 중이다. 거의 유일한 충무로 토종 배급사지만 재벌이 지배하는 극장 구조에서 소외된 시네마서비스가 배급한 ‘소수의견’은 영화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38만여 명의 관객동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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