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K팝이 세력을 더욱 넓혀갈수록 디지털의 반대편에서 과거의 명곡을 못 잊는 아날로그 정서도 함께 들썩이고 있다. 이하이가 최근 고전적 정서의 발라드 ‘한숨’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끄는 배경은 KBS2 ‘불후의 명곡’의 롱런과 MBC ‘복면가왕’의 돌풍 등과 정서를 공유하고 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곡은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영원히 간다. 글로써 수많은 명곡들을 재조명해본다.

▲ 유튜브 화면 캡처

https://www.youtube.com/watch?v=w4THXeOD-Dw (Led Zeppelin-Since I've Been Loving You)

하드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 바로 영국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다. 비틀즈가 록의 모든 하위 장르를 만들었고, 롤링 스톤즈가 영국적 정서를 잘 표현한 록밴드라면,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와 더불어 록의 근간이 되는 컨트리앤웨스턴과 로큰롤의 미국적 스타일을 가장 영국적으로 치환한 하드록밴드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제플린은 1937년 독일에서 만든 세계 최대의 비행선이다. 야드버즈 출신의 지미 페이지(기타)는 로버트 플랜트(보컬), 존 보냄(드럼), 존 폴 존스(베이스) 등을 끌어 모아 뉴 야드버즈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구성했다가 좀 더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던 중 예전에 친구와의 대화에서 거론된 ‘Lead ballon’(실패)에서 착안해 1968년 레드 제플린이라 지었다.

이듬해 향후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블루스록 색채가 돋보이는 몽환적이고 애절한 ‘Babe, I'm gonna geave gou’를 앞세운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그 외 ‘Good times-Bad times’ ‘Dazed and confused’ ‘Communication breakdown’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미국차트 톱 텐에 올랐고 밴드는 영국에 이어 전미 투어에 오른다. 2집 앨범 역시 미국 차트 정상에 올랐고 싱글커트된 ‘Whole lotta love’는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른다. 1970년 10월 발매된 3집이 가장 레드 제플린다운 블루스록의 진수를 담게 되니 바로 ‘Since I've been loving you’다. 레드 제플린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팬들이 떠올리는 대표곡은 이듬해 발표한 4집의 ‘Stairway to heaven’이지만 그들의 진득한 블루스적 성향을 더 좋아하는 팬들은 당연히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엄지손가락에 세운다.

▲ 유튜브 화면 캡처

4명의 멤버 모두 워낙 훌륭한데다 특히 이 곡에서는 각자의 파트에서 맹활약을 펼치기에 어느 누구가 출중하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명연주를 펼친다. 샤우팅 창법의 대명사격인 플랜트는 때론 탄식하듯, 때론 절규하듯, 때론 포효하듯 자유자재로 감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진성과 가성이 불분명한 3옥타브 이상의 음역을 두드린다.페이지와 이 곡을 공동작곡한 존 폴 존스는 확실히 드럼의 뒤에서 차분한 중심을 잡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연주패턴이다. 아무래도 드럼의 보냄과 기타의 페이지의 활약이 조금 더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게 이 곡의 구조고 편곡이다. 페이지의 어레인지 솜씨가 특히 돋보인다.

페이지의 블루지한 기타가 첫 소절부터 갑자기 튀어나오면 그 느린 노트의 뒤를 보냄의 드럼이 컴핑하며 인트로가 펼쳐지다 애절한 플랜트의 보컬이 시작되면 이미 듣는 이는 전율할 수밖에 없다. 주로 장조 음계인 블루스가 단조 음계의 한의 정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곡에 담겨있다. 페이지의 기타는 배킹의 드럼이나 하몬드 오르간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러닝타임 내내 리드 인스트러먼트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특히 코러스를 지나면서 중간 애드리브에선 마치 벌써 카덴차를 들려주려는 듯 에너지를 쏟아 붓는 가운데 플랜트와 격렬한 전쟁을 벌이는 듯한 양상의 컬래버레이션 혹은 경쟁을 펼친다. 그리고 카덴차는 역시 페이지의 기타다. 여운은 매우 길다.

▲ 유튜브 화면 캡처

페이지는 가끔 펜더 스트래터캐스터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깁슨을 애용한다.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할 땐 그에 의해 유명해진 더블기타 즉 깁슨 더블 12 모델이었다면 여기선 고전적인 깁슨 레스 폴 스탠다드다. 그 빈티지하면서도 날카로운 톤은 세련되고 공격적인 어레인지의 애드리브로 전개된다. 그는 장조 모드에선 주로 리디안 선법을 많이 사용하고, 오픈코드 배킹을 근간으로 한 하모나이징과 펜타토닉 스케일에 능한 기타리스트로 알려졌는데 이 곡에서 그의 실력의 정수를 거의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선 톤의 구사에서 가끔씩 실수가 옥에 티라고 지적하지만 그의 기타의 근간이 블루스라서 그마저도 때론 의도됐거나 혹은 그 자체가 블루스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정서적으로 풍부한 연주 스타일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에릭 클랩턴-제프 벡-지미 헨드릭스의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헨드릭스가 요절하자 그 자리에 페이지를 추대했을까?

레드 제플린은 1980년 보냄이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하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밴드를 해체한다. 그 이유는 ‘존 보냄이 없는 제플린은 제플린이 아니다’였다. 그만큼 레드 제플린은 오리지널 멤버 그대로여야만 했던 밴드고, 더불어 보냄이 그 정도로 독보적인 드러머였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는 진저 베이커, 카마인 어피스와 더불어 3대 록 드러머에 손꼽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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