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언더우드家 기념관] 연세대학교의 교내를 걷다보면 한적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서양식 주택이 있다. 오랜 세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이 건축물에는 6.25의 상흔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1885년 4월의 부활절 주일.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가 1885년 4월 5일 제물포를 통해 조선 땅을 밟았다. 그의 조선 이름은 원두우. 당시, 알렌에 의해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화학과 물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그의 선교 사역은 시작됐다.
그리고 이듬해 직접 고아원을 설립하면서 언더우드는 조선의 근대 교육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언더우드 학당을 비롯해 경신학교를 만드는 등 교육 선교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개인적인 선교와 교육활동이 가문으로 이어진 것은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통해서였다.
연세대학교 출범 후에도 언더우드의 교육 선교는 후대를 거쳐 120년 가까이 이어졌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의 사망한 후 원두우의 아들인 H.H.언더우드(Horace Horton, 한국명 원한경)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갔고, 원한경의 뜻은 다시 원일한(1917~2004)으로 이어졌으며, 다시 원한광(언더우드 4세)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70년대 언더우드 가족의 기증 후 한때 강의동 신축과 함께 철거될 뻔했던 사택은 2003년, 방 한 칸 짜리 전시실을 갖춘 기념관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주택은 원래 2층이었지만, 6.25전쟁 당시 전쟁 피해를 입어 파괴되고 전후에 1층만 복구하여 주택으로 사용하였다.
기념관 안 생전에 사용하던 사무공간의 모습은 원일한 박사의 고증으로 193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거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에는 언더우드 가문과 한국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연세대학교를 설립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의 설립자인 존 토마스 언더우드에 관한 기록과 언더우드 타자기도 볼 수 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들어서 지금은 캠퍼스의 상징이 된 근대 양식의 교사 역시 언더우드家가 남긴 결실이다.
지난 2004년 119년 4대에 걸친 한국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간 언더우드家 사람들. 하지만 종교 교육 뿐 아니라 조선 땅에 진정한 근대 대학교육의 터전을 다진 그들의 역사는 영원히 한국에 남아있다.
<언더우드家 기념관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16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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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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