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울의 눈물> 스틸 사진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이하 협회)의 정진우 이사장 등 임원진의 임기가 사실상 지난달 말로 끝났지만 새 임원선출 총회가 2차례 미뤄지는 가운데 아직도 총회 성회는 요원해 이를 바라보는 감독들 및 영화인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협회 정관에 따르면 임원의 임기만료 2개월 전에 총회를 통해 후임을 뽑아야 했다. 그러나 정 이사장은 이를 무시하고 뒤늦게 지난 19일 첫 총회를 공고했고, 다시 27일로 유회했지만 또 다시 유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정 이사장의 임기만 자연스레 늘어난 셈.

그 배경은 정 이사장의 정상적인 임기 만료 1주일을 앞두고 이사회가 개정한 선거관리규정 때문이라는 게 회원인 A 감독의 증언이다. 기존의 500만 원이던 후보 예탁금을 1000만 원(단독 후보는 1500만 원)으로 바꾸고 회비 미납자의 선거권 피선거권 의결권 등을 제한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바람에 총회가 자꾸 유회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229명의 정회원 중 200명에 가까운 이들이 후보자격은 물론 투표권마저 박탈당하는가 하면 선거에 대해 조금만치의 권리마저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선거가 파행으로 치닫게 됐다고 한다.

이사회와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첫 총회가 무산되자 각 회원들에게 공지를 보내 회비 완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최대 3년 치 36만 원(월 회비 1만 원)이나 되는 미납 회비를 완납할 경제력을 지녔거나 협회에 애정을 가진 감독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지난 25일까지 유예된 회비납부 기한에 완납을 한 회원은 단 1명이었던 게 그 증거다. 이번 신임 임원선출 총회의 파행을 바라보는 뜻있는 감독들의 공통적인 시각은 정 이사장의 전횡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는 것. 정관을 무시하고 총회를 뒤늦게 연 점, 임기만료를 불과 1주일 앞두고 갑자기 선거관리규정을 개정한 점, 그리고 누가 봐도 정 이사장의 의지를 따르는 행태를 보이는 이사회와 선관위의 행보 등이 그 증거라고 중견감독 A는 목소리를 높인다.

▲ 영화 <서울의 눈물> 스틸 사진

그는 “갑작스런 선거관리규정 개정으로 인해 투표 자체가 성사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기존에 유력 이사장 후보로 손꼽히던 복수의 감독들이 출마 자체를 포기했다”며 “그들은 모두 정 이사장의 독단적인 협회 운영에 불만을 품고, 협회를 긍정적인 차원에서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졌던 이들이었다”고 이번 사태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모두 지난 16년간이나 영화인복지재단(이하 재단) 이사장 자리를 지켜오는 가운데 지난 3년간 협회 이사장을 겸임해온 정 감독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놓지 않기 위해 펼치는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선관위 사무국은 229명의 선거인 명단과 2016년 정회원(2013년 6월 28일 수정판) 명부를 입후보자들에게 제공했지만 명단은 주소와 연락처도 없이 딸랑 이름만 적혀있었다. 또 정회원 명부에는 일련번호가 234번까지 적혀있었으나 중간에 8개의 결번이 있었고 세상을 떠난 3명에게도 번호가 부여돼있었다. 이 11개의 번호를 제외한 정회원은 223명인데 이 중에 번호가 틀린 이가 40여명이고 주소가 아예 없는 이가 20여명이니 223명 중 60여명은 총회공지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다. 더불어 나머지 160여명의 주소나 전화번호가 정확한 것인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엉터리 선거인 명부로 선거를 치르겠다며 총회원이 229명이니 과반수인 115명이 총회에 참석해야 성원이라는 선관위의 기준이 이해가 안 된다”고 성토했다.

▲ 영화 <서울의 눈물> 스틸 사진

총회의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협회는 2010년 12월 17일 총회를 열고 3년 임기의 신임 이사장으로 정진우 감독을 선출했지만 낙마한 이민용 감독은 당일 불참한 채 총회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선거를 앞두고 협회 이사회가 정회원 자격을 정리하면서 젊은 감독 상당수를 투표권이 없는 특별회원으로 전환했다는 게 근거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장진 등이 그 명단에 들어갔다. 이 감독은 젊은 감독의 지지기반이 탄탄하다. 더불어 당시 선관위(위원장 김영효 감독)는 정 이사장의 당선 무효를 결정하기도 했다. 선거 당시 정 후보의 공탁금이 국세청에 의해 압류돼 결과적으로 공탁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선된 것이므로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선거 무효 및 당선 취소를 결정했다는 것. 정 감독은 36억 원이 넘는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 고액 세금 체납자에 올라 있는데, 당시 선거에 출마하면서 낸 공탁금 500만 원이 숨긴 재산으로 규정돼 국세청에 압류 조치됐다.

정 감독 측은 ‘이미 끝난 결과를 놓고 상설기구도 아닌 선관위가 이를 뒤집으려 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거가 다음 날 협회의 컴퓨터 본체 등을 포함한 주요 서류와 통장 및 직인 등을 개인 사무실로 옮겼지만 결국 법원은 이 감독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2년간 이사장 자리가 공석이다가 2013년 정 감독이 단독출마해 이사장에 당선됐다. A는 “정 감독이 16년째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원로영화인들 사이에 일면서 기존에 영화 관련단체의 개혁을 통한 한국영화의 발전을 주장했던 젊은 감독들의 ‘반 정진우’ 바람이 원로에게까지 번지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의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영화 <걸떡쇠> 스틸 사진

그는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로영화인들에게 재단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원성이 높다”며 “예전의 이사장 선거의 공탁금 압류도 정진우 감독을 비판하고 있는 영화인 단체 관계자가 국세청에 제보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재단과 정진우 감독에 대한 영화인들의 불만은 꽤 많았다. 2006년 정 감독과 소송 중이던 동생 정광웅(전 영화제작협동조합 이사장) 씨가 처음으로 이와 관련된 진정서를 문광부에 제출했고, 이듬해와 2009년에도 정인엽 감독 등이 협회 등을 통해 같은 문제의 진정서를 접수했다. 2010년엔 한국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이사장 김갑의)가 영화인총협회(이사장 정인엽 감독)에 재단과 관련해 “영화인들의 복지를 책임진 재단이 기금 확충도 제대로 안 하고, 지원 기준도 이사장 마음대로 정하는 등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이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낸 바 있지만 매번 흐지부지됐다.

당시 재단 이사인 강범구 감독은 “복지재단은 우리나라만 존재하고 있는데 (원로영화계인들이) 복지재단 돈에 손을 못 대 저러는 것”이라며 “만약 정 감독이 없었다면 지금쯤 복지재단은 풍비박산 났을 것”이라며 정 감독의 노고를 치하한 바 있다.재단은 1984년 영화제작업자 몇 명과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기금 등을 합해 설립됐다. 영화계 원로 인사들의 복지 향상 및 후진 양성이 설립 목적이다. 당시 한국영화의무제작 규정과 외국영화 수입쿼터 등을 통해 출연된 기금으로 시작됐고, 영진위에서 나오는 지원금 등을 합쳐 원로 영화인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을 해왔다. 처음에는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가 재단 관리를 담당하고 ㈔영화인협회가 운영을 전담하는 이중적 방식이었다가 1997년 12월 영화인협회(당시 이사장 김지미)에 이관됐다. 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재단 이사장도 겸임했으나 1999년 8월 이사회를 통해 정진우 감독이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영화 <걸떡쇠> 스틸 사진

정 감독에 강하게 반발하는 계층은 그가 16년 동안 이사장을 맡으면서 재단을 사유화하고 있고, 1996년 문예진흥기금을 횡령해 실형을 살았던 전과가 있음에도 이사로 선임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목청을 높인다. 협회와 재단을 둘러싼 이런 추악한 다툼은 내부적으로는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주무부서가 나서야한다는 게 뜻있는 영화인들의 이구동성이다. 협회는 감독들의 회비로 운영되지만 춘사영화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매년 개최해왔고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시기관이다. 재단의 관리감독 기관은 국가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다.

영화제작자 B는 “K팝이나 한류드라마처럼 영화 역시 한류열풍의 주역으로서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지금까지 협회와 재단이 이렇게 분쟁이 심한 것은 사실상 주무부서의 직무유기와 다름없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번 협회 이사장 선거에 행정부와 사법부가 개입해 명명백백하게 흑백을 가려야 더 이상 영화계가 신구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영화발전에 매진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강도 높게 입법 사법 행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 영화 <걸떡쇠> 스틸 사진

협회는 그동안 질곡의 여정을 거쳤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문화공보부의 지도와 감시 아래 복종과 보고의 의무를 졌던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 산하 영화인협회 8개 분과위원회의 하나로 출발했다. 하지만 1988년 유현목 이장호 등 감독 61명이 창립회원으로 나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문화통치 수단의 일환에 의해 타율성으로 구성돼 정부의 시녀노릇을 해온 예총 산하 영화인협회를 탈퇴한다”고 독립을 선언했다. 다시 협회는 2000년 7월 27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회원의 권익옹호와 지적재산권 등을 포함한 권리증진을 위한 사업, 영화예술 창달을 위한 정책제안과 학술적 정립을 위한 사업, 한국영화감독의 자질향상과 복지증진 및 영화저변확대를 위한 사업 등이 주요 사업인데 실질적으로 드러난 사업은 춘사영화제가 유일하고 그마저도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모양새다.

이번 선거의 이사장 후보는 정진우 감독 계열의 김진국 감독과 반 정진우 계열의 김현명 감독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김진국 감독은 ‘껄떡쇠’(1989) 단 한 편의 연출작만 있고, 김현명 감독은 이보희 유인촌 주연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아가다’(1984)를 비롯해 ‘서울 손자병법’(1986) ‘서울의 눈물’(1991) ‘학교전설’(1999) 등을 연출, 제작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