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이행불능이란 이행하기로 약정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행불능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① 불능이 된 시점에 따라서 원시적 불능과 후발적 불능으로 나눌 수 있고, ② 귀책사유 유무에 따라서 당사자 모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당사자 일방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당사자 모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행불능은 각 경우에 따라 법적 효과가 다릅니다.

이 중 채무자가 부담하는 급부가 후발적으로 불능이 되었는데 이에 관하여 당사자 모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의 법적 효과를 살펴보자면, 채무자는 그의 급부의무를 면하게 되고 그의 채권자에 대한 반대급부청구권 역시 상실됩니다.(민법 제 537조) 따라서 채무자가 이미 채권자로부터 반대급부를 수령하였다면 부당이득 법리에 따라 받은 것을 반환하여야 합니다.(민법 제 741조)

최근 이러한 법리를 적용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땅을 매도한 채무자가 매매계약 이후 그 땅을 양도하지 못하는 택지개발 조합원이 된 것으로,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건의 목적물인 을의 땅은 2001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일부 지역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면서 택지지구에 편입됐습니다. 이후 을은 보상안내에 따라 생활대책용지 6평을 공급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고, 2006년 7월 을은 자신이 공급받을 생활대책용지 6평을 5,200만원을 받고 갑에게 팔았습니다.

이듬해 8월 을은 생활대책용지 공급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는데 이 때 두 사람의 거래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성남시가 '생활대책용지의 공급대상자로 선정된 자들이 자율적으로 조합을 구성해 성남시와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조합 명의로 용지를 공급 받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생활대책용지 공급 방식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갑은 다른 공급대상자들과 함께 비법인사단인 상가조합을 조직해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합의 정관 내용 중에는 '조합원은 조합이 토지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기 전 조합에서 탈퇴해서는 안 된다. 조합원의 각 지분권은 개별적으로 양도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었습니다.

을과 갑 중 그 누구도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토지 명도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결국 갑은 땅을 넘겨받을 수 없게 되자 이미 지급한 매매대금을 돌려달라며 을을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법원은 갑의 주장 중 일부만을 받아들였지만 을은 갑에게 매매대금인 5,200만원 전부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재판부는 "갑과 을이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양 측의 귀책사유 없이 실제 토지의 매매가 불가능한 상태에 됐는데, 매매계약 계약 체결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로 매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돼 무효가 됐기 때문에 을은 갑에게서 이미 받은 매매대금 5,2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하면서, "두 사람이 매매계약 체결 당시 목적물을 '생활대책용지 6평'으로 특정했는데 당시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생활대책용지의 구체적 공급방안을 발표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서야 구체적 공급 방안이 알려진 점에 비춰볼 때 계약의 목적물은 생활대책용지에 관한 권리에 해당하고 을이 조합원으로서 가지게 될 권리라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쌍무계약, 예를 들어 일반적인 매매계약에 기하여 당사자 일방이 부담하는 급부가 후발적으로 불능으로 되었으나 이러한 불능에 대하여 양 당사자 모두 책임이 없는 경우, 당해 계약은 무효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을이 갑에게 받은 매매대금은 법률상 원인 없는 이익이며, 을에게 그 반환의무를 인정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법원은 급부 내용에 대한 판단 기준점을 계약 당시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안에서 갑과 을이 이 사건 목적물에 관한 매매계약을 할 당시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생활대책용지의 구체적 공급방안을 발표하지 않아 계약 당사자들은 이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할 것이므로 이후의 상황을 감안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상대방의 급부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에 억울하게 반대급부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이행한 경우에도 부당이득 반환이 인정된다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그렇지만 계약 당시에 예상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는 그 책임을 묻게 되므로 쌍무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놓치는 것이 없는지 주변 정황마저 신중을 기하여 검토할 것이 요구됩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