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개그콘서트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KBS2 ‘개그콘서트’ 제작진이 논란과 관련해 “많은 개그맨을 초대하지 못해 안타깝고, 그들의 아쉬움을 잘 새겨듣고 점검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그콘서트’의 한 시대를 풍미한 정종철과 임혁필이 초대받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뒤 시청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제작진의 ‘갑질’ 혹은 ‘무성의’에 대한 비난여론이 형성되자 조심스레 해명 혹은 반성의 뜻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는 3회의 900회 기념 특집방송을 기획해 지난 14일 첫 회에 기존에 사랑받았던 ‘전설의 코너’ 19개를 재조명하는 가운데 유재석을 초청했다. 하지만 전설의 코너 19개 중 8개를 이끌었던 정종철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정종철은 SNS에 서운함을 표시했고, 임혁필이 “이런 게 하루, 이틀이냐? ‘개그콘서트와 아무 상관없는 유재석만 나오고”라고 맞장구를 쳤다.

제일 처음 나온 반응은 임혁필에 대한 비난이었다. ‘선배인 유재석에게 존칭을 안 썼다’는 것. 유재석은 1991년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임혁필은 1997년 KBS 13기 공채개그맨으로 각각 데뷔했다. 개그계는 서열이 깍듯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둘은 동선이 완전히 달랐고 1972년 동갑내기다. 고루한 시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의미다.

▲ 사진=KBS 개그콘서트 화면 캡처

통상적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 연예인 등 유명인의 존칭이나 직책을 붙이진 않는다. 언론의 공식 지침도 존칭 생략이다.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문재인 대통령’ ‘文’ ‘문재인’ 등이 혼용된다. 어린애들도 ‘유재석’이라고 얘기하지, ‘유재석님’이나 ‘유재석 아저씨’라고 말하는 건 흔치 않다. 같은 서운함을 토로하는 임혁필과 정종철이 사적인 대화에서 굳이 ‘유재석 선배님’이라고 격식을 갖추는 건 어색하다.

다행히 여론은 두 사람이 느낀 서운함과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개그콘서트’의 곪을 대로 곪은 내부적 문제점(점점 떨어지는 시청률, 제작진과 전 현 출연진 사이의 갈등)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제작진의 사과 엇비슷한 해명은 그런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개그콘서트’는 오는 8월이면 18살이다. 지금까지 거쳐간 개그맨은 최소한 수백 명일 것이다. 그들을 일일이 초청하는 건 무리다. ‘일등공신’의 기준도 모호하다. 정종철과 임혁필의 논리에도 약간의 오류가 있는 이유다. 순서대로라면 론칭의 일등공신인 전유성 김미화가 초대 1순위고, 특집을 1년 내내 해야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토로에는 분명히 이유가 존재한다. 정종철은 누가 뭐래도 최소한 이등공신이다. 제작진의 무성의 혹은 의도된 ‘왕따’의 의심을 제기할 순 있다. ‘개그 콘서트’는 2002년 인기 절정일 때 당시 코너의 대부분을 책임지던 스타밸리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들이 ‘웃찾사 ’론칭을 위해 SBS로 옮겨가자 일대 위기를 맞았다.

그때 ‘개그콘서트’를 살린 일등공신은 바로 박준형 사단이다. 정종철과 임혁필은 그 중의 핵심멤버. 스타밸리 사단의 이탈로 위기에 빠지는 듯했던 ‘개그콘서트’는 그동안 스타밸리의 ‘집권’에 억눌려 기를 못 펴고 있던 박준형 사단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신인발굴로 인해 탄력을 받아 오히려 기존 최고의 시청률을 뛰어넘는 맹위를 떨치며 결국 ‘웃찾사’의 1차 폐지를 바라보는 완승을 거둔다.

▲ 사진=KBS 개그콘서트 화면 캡처

‘개그콘서트’에도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있지만 개그맨의 자체적인 아이디어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국 그게 시청자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전적으로 제작진이 좌지우지한다. ‘개그콘서트’에 출연중인 개그맨이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지금 시점에서 봐도 그런 이례적인 ‘사건’은 찾기 힘들다.

최근에야 개그맨의 CF를 비롯해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의 출연 기회가 널리 열렸지만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바늘귀에 낙타 들어가기’였다. 출연료는 유명 배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부족한 생활비와 품위유지비는 각 지역 행사나 칠순잔치 결혼식 사회 등의 부수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개그콘서트’ 출신 한 개그맨이 2번이나 수입차를 절도한 사건은 죄질은 나쁘나 단편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렇게 부수입이라도 올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개그콘서트’ 출연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작진이나 헤게모니를 쥔 선배의 지시는 거의 율령이었다. 2002년 전후로 ‘개그콘서트’의 헤게모니를 나란히 이어받은 스타밸리 사단과 박준형 사단의 경우 단합효과와 더불어 개개인의 능력이 시청률 상승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맞다.

그럼에도 시대별로 한 기획사가 프로그램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엄연한 현실은 분명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불우했던 먼 역사를 볼 것도 없이 지난 박근혜 정권만 하더라도 권력이 지나치게 한 곳에 쏠리면 그 결과가 어떤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독재의 입맛에 길들여진 파생적 권력 역시 그와 비슷하거나 때론 더욱 잔인한 힘을 휘두르기 십상이다. 그 하위개념의 백성들은 왕과 천왕을 동시에 모실 수밖에 없는 처지.

허나 정종철의 “선배들과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개그콘서트’를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게 아니란 거 말씀드리고 싶다. 개그맨들도 연예인이며 ‘개그콘서트’를 만들어 가는 기둥”이라며 “ 제작진, 맥을 한참 잘못 짚는다.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이 왜 ‘웃찾사’에 가고 ‘코미디 빅리그’로 가는지 깊게 생각하길 바란다. ‘개그콘서트’를 지키는 개그맨들은 티슈(일회성 소모품)가 아니다”라고 한 일갈에는 다소 주관적인 시각이 엿보인다.

제작진 중 누구에게도 개개인의 성향이나 인간관계, 때론 이권문제로 인한 편향적 ‘선택’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제작진의 첫 번째 목표는 시청률이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개인적 인간관계를 원천봉쇄하는 게 당연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살아남으려면 기준이 냉정해야하는 게 방송가의 현실이다.

그들이 개그맨들의 세대교체를 자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젊은 시청자가 많은 개그 프로그램 역시 트렌디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처럼 유행에 민감하다. 코너를 수시로 바꾸는 것만큼 신인도 꾸준히 찾아내야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는다. 일부 사감이 끼어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불변의 대의명분은 시청률이다. 옥동자나 마빡이의 아이디어는 신선했지만 지금까지 그렇진 않다. 개그에도 해학과 풍자가 깃들어야하지만, 웃기지 못하면 ‘꽝’이고, 식상하면 물길이해야 하는 게 방송의 생리다.

▲ 사진=SBS 웃찾사-레전드매치 홈페이지 캡처

민영방송인 SBS는 ‘웃찾사’를 시즌제로 운영하겠다며 또 폐지를 점검중이다. 그나마 공영방송인 KBS는 지상파 방송사의 유일한 정통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어떡하든 이어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개그맨 개개인을 배려해서가 아니다. 투자 대비 수입이 좋은 ‘효자’의 손을 뿌리치기 어렵기도 하지만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에게 ‘싼’ 수신료를 받고 큰 웃음을 선사해주기 위함이다.

어쨌건 이런 불협화음의 논란이 이는 원초적 책임은 오롯이 제작진의 몫이고, ‘전 출연자와 현 제작진이 불편한 논쟁을 펼치는 건 저마다 자신이 주인이란 착각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시청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충분하다. 방송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시청자니까. 이번 논란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속내와 사건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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