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007’ 시리즈나 ‘본’ 시리즈와 차별화된 스파이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킹스맨2’)은 수많은 관객들이 기다렸던 만큼 언론시사 후 국내외 각 매체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은 B급액션을 가장한 A급고어물이었고, 속편은 그런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면서 더욱 커진 블록버스터로 중무장했다. 누가 봐도 스파이물의 ‘어벤져스’다.

런던의 고급수제양복 맞춤집으로 위장한 영국 최고의 스파이조직 킹스맨의 중심인물이 된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평소처럼 퇴근하는데 그 앞에 킹스맨 인턴 동기이자 시험에서 탈락한 찰리가 나타난다. 전편에서 부상으로 잃은 오른팔의 자리엔 첨단 의수가 달려있어 에그시의 목숨을 위협한다.

천신만고 끝에 찰리를 따돌린 뒤 택시(특수차량)를 몰고 지하의 비밀벙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에그시는 전편에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감옥에서 구출해주고 연인이 된 스웨덴 공주 틸디(한나 알스트룀)와의 저녁식사 자리에 간신히 도착한다. 며칠 뒤 그들은 스웨덴 궁에 초청돼 틸디의 부모인 왕과 왕비와 함께 식사를 한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캄보디아 오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채 마약사업에 매진해 이제 전 세계의 카르텔 중 가장 큰 조직을 이끄는 포피(줄리안 무어)는 발렌타인을 흉내 내 엘튼 존을 납치해와 자신의 전용극장에서 노래를 시킨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인 킹스맨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왔다. 찰리는 바로 그녀의 오른팔이었고, 찰리와 에그시의 결투 중 택시 안에 남게 된 찰리의 의수가 바로 킹스맨의 조직을 해킹할 도구였던 것.

에그시가 예비 장인 장모와 달콤한 식사를 하는 동안 포피의 작전이 펼쳐져 총 10곳의 킹스맨의 아지트가 모두 붕괴되고 유이하게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만 살아남게 된다. 망연자실한 두 사람은 ‘최후의 수칙’에 따라 작은 바에 들어가 스카치를 마시던 중 그 병에 적힌 단서를 발견하곤 그것을 찾아 미국 켄터키로 날아간다.

도착한 곳은 양조장 스테이츠맨. 이곳은 미국의 킹스맨 같은 곳이다. 수장 샴페인(제프 브리지스)을 비롯해 진저에일(할리 베리) 데킬라(채닝 테이텀) 위스키(페드로 파스칼) 등 주요 요원들과 합류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른쪽 눈은 물론 기억마저 잃은 해리(콜린 퍼스)를 만난다. 전편에서 발렌타인의 총을 눈에 맞고 쓰러진 그를 진저가 첨단 의료장비로 구해낸 것.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는 역행성 기억장애로 나비학자가 되느냐, 군에 입대하느냐의 기로에 섰던 젊은 시절까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에그시는 해리의 애완견에 대한 기억을 자극해 그의 정체된 모든 기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하지만 예전의 전투능력까지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 사이 포피는 전 세계에 만연된 마약의 해악을 놓고 미국 대통령과 담판을 짓는다. 투약자는 처음엔 파란 발진만 생기지만 이내 조광증에 걸렸다가 전신마비로 발전된 후 죽고 만다. 대통령은 군사 담당자와 행정 담당자 둘과 이 협상에 대해 상의한다. 대통령은 마약 중독자들은 해악이라며 그들이 죽더라도 테러리스트와 협상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행정 담당은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이에 반대하지만 그녀 역시 과다한 업무 탓에 어쩔 수 없이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대통령이 만든 마약투약자 전용감옥에 강제수용된다.

뿐만 아니다. 데킬라 요원과 틸디마저 마약에 중독돼 에그시와 스테이츠맨 등은 모두 다급해진다. 이제 연인과 동료도 구하고 지구촌의 수많은 희생양도 구하기 위해 그들은 포피의 본거지에 침투하게 되는데.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전편의 가장 큰 미덕은 계급파괴였다. 여성들의 기대심리에 안성맞춤이자 남성들의 남성성의 판타지의 끝이랄 수 있는 킹스맨이란 정체성은 바로 영국의 상류사회를 대표한다. 그래서 요원들의 이름은 브리튼족 켈트인의 전설적인 왕인 아서부터 마법사 멀린, 원탁의 기사인 갤러해드와 랜슬롯 등이었다. 그런데 전형적인 ‘루저’인 에그시가 바로 그 왕의 남자들에 합류한 것도 모자라 일류 요원이 됐다.

낡은 청바지에 빈티지한 옷을 믹스매치하고 스냅백을 비스듬히 쓴 그가 하루아침에 젠틀맨이 됐다. 그건 영국에 뿌리가 깊게 내린 귀족주의에 대한 통렬한 조소다. 신분에 계급이 분명하다는 의도적인 무의식의 잔존에 대한 무자비한 난도질이다. 바로 에그시의 아버지가 전형적인 귀족계급인 해리를 구한 생명의 은인으로 설정된 점이 명명백백한 증거다.

이런 계급주의의 잔상이 비단 영국에만 남아있을까? 천만의 말씀! 영국과 미국의 비교, 미국에 대한 조롱 등이 넘실대는 ‘킹스맨2’가 세계관의 확장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 배경이다. 이번엔 그런 글로벌한 철학은 윤색된 대신 자본주의의 메카로서 지구촌의 헤게모니를 쥐고 흔드는 미국에 대한 알레고리가 두드러진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킹스맨 역시 서민 입장에선 곱게 봐주기 힘들다. 킹스맨의 모델은 런던의 명품 맞춤양복점 거리 새빌로다. 이곳에서 수트 한 벌 맞추는 데 드는 비용은 1000만 원 안팎. 서민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으로 당연히 영국 상류층이 주 고객이다.

그런데 ‘킹스맨2’의 스테이츠맨의 수입원은 바로 술이다. 포피는 ‘마약이 술, 담배보다 뭐가 더 나쁘냐’고 자신의 사업을 합리화한다. 물론 억지긴 하지만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그래서 어쩌면 명품 맞춤양복으로 돈을 벌고, 그걸 가치관으로 강조하는 킹스맨보다 술장사에 열을 내는 스테이츠맨이 더욱더 고약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전편에서의 교회에서의 충격적인 하드고어 액션은 이번엔 채식주의자인 포피의 분쇄기를 이용한 인육버거 요리와 위스키의 전자채찍을 이용한 적의 신체절단 기술로 이어진다. 이 영화를 단순한 첩보액션이라기보다는 고어액션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증거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스틸 이미지

성적인 B급유머는 살짝 수위가 낮아졌다. 손가락 콘돔을 이용해 찰리의 연인의 은밀한 부위에 추적기를 심는 신 등은 여성들에겐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전편에서 양아치 수준이었던 에그시가 조직의 부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희생’해야 한다고 틸디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그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결정적인 행위’를 자제하는 시퀀스가 그 불쾌함을 상쇄해주기 충분하다.

모든 걸 떠나 141분의 러닝타임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유쾌하며, 통쾌하기에 뒤끝이 시원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팝콘무비’로선 전편을 능가한다. 특히 인트로의 카체이싱 시퀀스는 유사한 영화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명불허전이다. 게다가 영국 스웨덴 미국 이탈리아 캄보디아 등으로 설정된 호화 로케이션은 물론 각 세트의 화려함 역시 눈을 호강하게 만든다.

▲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샌디에고 2017 코믹콘 인터내셔널 현장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클라이맥스의 멀린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무반주 독창 신. 여기엔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정착한 미국인과, 미국에서 영국을 찾으려는 영국인들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맥락은 유사한 애환과 고뇌가 담겨있다. 미국의 대통령을 매우 이기적이고, 유아적 정치철학에 머무는 유치한 인격체이며, 그의 최측근이 그른 걸 그르다고 지적하지 못하는 ‘예스맨’에 불과하다는 조롱은 통렬하다. 그러면서도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 ‘Annie's song’을 메인테마곡으로 사용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그건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을 정도로 영국이 존경해 마지않는 울트라슈퍼급 뮤지션 엘튼 존을 악당의 전용 노래노예로 만든 것도 모자라, 로봇개를 조종하는가 하면 70살이 넘은 나이에 젊은 악당을 상대로 액션을 펼치게끔 만든 감독의 ‘음흉한 의도’로 이어진다. ‘미국 남부는 영국의 정신을 잇는다’는 대사를 펼치면서도 영국과 미국 양국을 은근히 조롱하는 그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절묘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9월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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