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상업적 구도는 선악의 대결을 통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 다수의 예상을 깨는 반전, 억지스러움이 묻어나지만 눈물을 유도하는 감동 등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채비’(조영준 감독, 오퍼스픽쳐스 배급)는 자극적인 가공양념이 배제된 유기농 무비다. 한때 유행했던 ‘힐링’이란 단어가 안성맞춤이다.​

서울의 중심이지만 서민이 많이 사는 홍제동. 늙은 애숙(고두심)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문경(유선) 인규(김성균) 남매를 키우며 살아왔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애숙에게 인규는 각별했다. 인규는 30살이지만 7살에서 성장이 멈춘 지적장애인이기에 애숙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거나 남의 삶에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애숙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거리에서 작은 잡화점을 하며 근근이 먹고살고 있다. 문경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어린 딸 미솔을 데리고 새 남자를 만나 살지만 소득에 비해 큰 허영심 탓에 경제적으로 쪼들린다. 똑같은 자식인데 인규만 감싸고도는 엄마가 서운하고,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인규가 불편하다 못해 밉기까지 하다.​

▲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인규는 백지같이 순수한 사람이지만 그만의 트라우마가 있다. 7살 때 아버지가 죽던 날 엄마는 세상을 잃은 듯 오열했고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그에겐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작은 실수를 했는데 엄마로부터 심하게 야단을 맞은 뒤 엄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하게 됐고,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놀린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됐다.​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어지던 어느 날 애숙은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는다. 뇌종양이다. 의사는 길게 1년, 짧게 6개월의 시한부생명을 선언한다. 애숙이 겁을 집어먹는 건 자신의 삶이 다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떠나면 인규가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까마득해서다.

이웃이라고 해봐야 약사 정자(김희정)와 구청 박 계장(박철민) 부부. 애숙은 박 계장을 통해 인규를 제과점의 장애인 인턴시스템에 합류시킨다. 애숙의 걱정과 달리 인규는 일도 잘 배우고, 혼자서 버스로 출퇴근도 하며, 밥을 차려먹을 뿐만 아니라 엄마의 몫까지 챙겨줄 정도로 자립에 빠르게 적응해간다. 그리고 애숙의 시간표는 더 빠르게 흘러가는데.​

▲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영화는 매우 일상적이고 평면적이며 통상적이다. 뭔가 새롭거나, 아주 특출하거나, 매우 극적인 시퀀스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냥 진짜 홍제동 어딘가에 사는 한 서민가정의 지극히 소소한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다큐멘터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다만 약간의 코미디를 연출로 가미한.​

평범함 속에서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 작품이 가진 미덕이다. 고두심 김성균 유선이란, 또래 중 연기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배우들을 한 가족으로 세운 조합이 매우 절묘했다. 고두심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선은 잔잔한 흐름이 심심하지 않게끔 살짝 갈등의 축을 맡으면서도 엄마이자 딸의 중의적 의미를 더함도 덜함도 없이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중요한 지점은 조폭부터 살인마까지 매우 자극적인 캐릭터를 변주해온 김성균의 첫 ‘백지’ 캐릭터다. 그는 ‘맨발의 기봉이’의 신현준과는 차별화된 캐릭터를 절묘하게 그려낼 줄 아는 아주 영민한 능력을 보여준다. 고두심이 밑그림을 탄탄하게 그리고, 김성균이 거기에 화려한 색칠을 하며, 유선이 미세하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준 영화다.​

▲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애숙의 모성애로 시작해 인규의 홀로서기 성장드라마로 본편이 전개되다가 결국 삶이 아닌, 죽음의 철학을 메시지로 던지며 끝을 맺는다는 점에선 확실히 지금까지의 감동드라마들과 다른 차원을 보인다. 보여주거나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라는 영화다. 저마다의 사유와 인식과 고찰을 유도한다.

죽음은 생존의 본능을 지닌 모든 생명체에게 최악의 부정적 언어다. 사람은 100년을 살기 힘들다. 그러나 누구나 죽음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고, 진리며, 순리다. 하물며 코끼리도 ‘장례문화’가 있으니 인간은 훨씬 고등한 문화로 망자를 떠나보낼 줄 아는 게 당연하다. 물론 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대 이집트인은 죽음을, 마야인은 희생을 영생이라며 기껍게 받아들였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에는 장례를 축제문화로 즐길 줄 아는 부족이 존재한다. 애숙이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건 곧 지적장애자인 미완성의 인규가 향후 자립해 살아갈 삶을 정립해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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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만날 투정과 말썽으로 엄마를 삶에 찌들도록 만들었던 인규는 뒤늦게 자신의 인격을 완성해간다. 그는 엄마의 걱정과는 아랑곳없이 노점을 벗어나 인근 유치원으로 가서 망원경으로 신입 선생님 경란(신세경)의 모습을 훔쳐본다. 아들의 짝사랑이 커질수록 상처가 더욱 아플 것을 염려한 애숙은 경란에게 매몰차게 대응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경란에게 고백을 하러 갔던 인규가 하늘을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행복해하며 돌아온다. 인규는 경란에게 “좋아한다”고 말했고, 경란은 “남자친구가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경란은 “우리 친구해요”라고 덧붙였다. 누나에게도 외면당한 인규가 첫사랑 고백이 실패했음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한 이유는 진심을 나눠준 첫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회에서 편견투성이의 눈초리만 받고 살아온 인규에게 필요한 건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프라이처럼 자신의 입맛을 이해해줄 친구였다. 천박한 경제논리도, 음흉한 성적 욕망도 아닌, 그냥 순수한 원초적 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혼자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생명체라서 엄마의 희생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그였기에.

▲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어려서부터 인규가 목에 달고 산 망원경은 편견에 소외된 인규 같은 소수자들에 대한 메타포다. 그가 제 눈으로 세상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이유는 세상이 그를 비뚤어진 시각으로만 본 탓에 차마 마주 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경란을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장면을 목격한 학부모들은 변태라고 왜곡한다. 이 사회가 그렇다는 강력한 알레고리다.​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식 날짜를 기억하는 인규에게 문경은 야단을 친다. 인규는 “그날 누나 시집갔어. 그런데 인규는 못 갔어”라고 말한다. 동생이 창피해 결혼식에 부르지 않은 문경은 이 사회고 제도다.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 밖에 버려질 인규의 삶이 두려운 애숙은 모정을 넘어선 인류의 마지막 희망, 양심이다.

▲ 영화 <채비> 스틸 이미지

그녀가 아이를 못 갖는 정자에게 민속신앙을 들먹이며 자신의 속옷을 건네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인규가 엄마의 영정 앞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참으로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기적인 자아도취나 아전인수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미필적 고의가 팽배한 이 세상에 대한 경종이다.​

감정의 갈무리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그 숭고함! 무식하고 가난하지만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세상과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지 잘 알았던 엄마의 가르침의 계승이다. 그가 가고 싶었던 곳은 아마존. 아직 때 묻지 않은 오지인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으로 점차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징성! 114분. 12살 이상. 11월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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