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제54회 대종상영화제에 이어 제38회 청룡영화상까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에 주목함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재평가의 바람이 조심스레 일고 있다. ‘불한당’은 지난 5월 17일 개봉 후 100만 명도 안 되는 최종 스코어로 막을 내렸지만 일부 열성적인 마니아들의 지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불한당’은 저주받은 걸작일까?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개봉보다 15일이나 빠른 2일 언론시사회를 열었다. 언론시사회의 경우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개봉 일주일을 전후해 열기 마련. 개봉에 임박해 연다면 스포일러 유출을 막기 위해서거나 영화에 자신이 없어서다. 무려 15일 전에 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넘쳐 입소문만으로도 흥행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개봉 후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4일째 드디어 15만 명의 스코어로 전날의 8만 명의 2배 가까운 성적을 올리며 본격적인 흥행가도를 달릴 듯했다. 입소문이 먹힌 것이다. 그런데 변 감독이 대선(5월 9일)을 앞두고 후보들의 각축전이 한창이던 4월 트위터에 올린 글들이 누리꾼을 통해 뒤늦게 퍼지면서 흥행에 급제동이 걸렸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경쟁 후보에 대해 낯 뜨거운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 여성과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까지 쏟아내며 결국 ‘불한당’ 관람금지운동의 물결을 야기한 것. 이 파동은 개봉 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경사까지 초상집 분위기로 몰고 가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언론이 바라보는 이 영화에 대한 시각은 좀 달랐다. 언론시사회 직후 각 매체들은 극찬을 쏟아냈다. 결국 감독의 ‘입방정’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배타심을 부추겼고, 그건 아예 관람하고 평가를 내릴 기회조차 원천봉쇄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설경구는 대표적인 비호감 톱스타였다. 송윤아와 재혼한 이후 그는 내내 대중의 미운털을 빼낼 수 없었다. ‘타워’ ‘감시자들’이 흥행에 성공했고, ‘스파이’ ‘소원’이 선방을 했지만 ‘나의 독재자’ ‘서부전선’ ‘루시드 드림’ 등 최근작은 이름값이 무색할 만큼 매우 참담한 성적을 냈다. ‘불한당’은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호평 속에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지만 의외로 감독의 트위터란 복병을 만나 침몰한 게 아쉬운 대목이다.

무역회사로 가장한 범죄조직의 회장 고병철(이경영), 2인자 재호(설경구), 병철의 조카이자 재호의 친구인 병갑(김희원), 그들을 잡으려는 경찰 천 팀장(전혜진), 그녀의 말단 팀원 현수(임시완)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불한당이다. 병철은 실제 중소기업 회장이 러프한 자사광고 모델로 나서는 것처럼 TV광고에 나와 방정맞은 춤을 추며 자사제품을 홍보한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실적지상주의자인 그는 병갑이 조카라고 봐주지 않는다. 번번이 공을 세우는 재호, 재호가 감옥에서 만나서 데려온 신예지만 실력이 좋은 현수를 팍팍 밀어주면서도 내심 날로 세력이 커가는 재호에게서 위기감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병갑을 자극한다.

재호는 감옥에서 라이벌세력에게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준 현수에게 전우애 이상의 우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미끼로 병철을 잡기 위해 위장잠입한 경찰이란 걸 알고는 그의 유일한 가족인 노모를 청부살해한다. 그 사실을 숨긴 채 천 팀장의 팀을 와해시킬 공작을 하나하나 펼쳐나간다.

천 팀장은 현역 때 병철을 잡으려다 놓치고 큰 망신만 당한 데 대한 복수심과 끝을 알 수 없는 집착에 시달리는 인물. 영화에서 적시하진 않지만 그녀는 분명히 핸디캡 혹은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다. 경찰조직에서 그 자리에까지 오르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여자란 정체성이 핸디캡이기 때문이란 추측은 쉽지만 그녀의 알 수 없는 복잡한 내면에 비춰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닌 듯하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그녀는 현수가 변해가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다. 그녀가 현수의 마음을 돌리는 수단은 경찰로서의 소명의식이나 한 국민으로서의 정의감이 아니라 협박이다. 이미 현수의 경찰자료를 지웠기에 그녀가 마음먹기 따라 현수는 그냥 그대로 수배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수는 가장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싫은 임무를 억지로 떠맡은 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을 듣고 밖에 나가려 하지만 감옥에서 그걸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천 팀장에게 부탁하지만 그녀에게 융통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평소 간수들에게 뇌물을 줘온 재호가 장례식에 다녀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이때부터 현수는 자신이 경찰인지 깡패인지, 친구가 천 팀장(경찰)인지 아니면 재호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출소 후 재호의 조직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며 조직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은 병갑일 수 있다. 그는 ‘잔머리’를 굴릴지 모른다. 자신이 보스의 조카이기 때문에 당연히 조직의 2인자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재호를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기기에 그와 굳이 경쟁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묵묵히 그에게 우정을 베푼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우정 사이에 끼어든 현수가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매우 의심스럽다. 그래서 현수의 버릇을 가르치려 들었다가 병철에 두들겨 맞고, 재호에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라’고 충고했다가 재호가 휘두른 흉기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는 현수와 마찬가지로 믿었던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사용가치가 떨어지자 용도폐기되는 잉여인간이다. 그래서 외롭고, 분노가 남달리 큰 주변인이다. ‘불한당’은 이토록 처절하고 참혹하며 서글픈 누아르다. ‘무간도’ ‘프리즌’ ‘신세계’ 등의 누아르가 이미 써먹은 언더커버를 기초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의 공허함까지 담아내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다.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이미지

재호와 현수는 힘들여 정상에 올리면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돌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올려야 하는 운명의 시시포스이자 카뮈의 ‘이방인’의 뫼르소다. 왜 이렇게 사냐는 현수의 질문에 재호는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답하는가 하면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고 충고한다.
 
‘불한당’은 부조리라는 키워드를 관통함으로써 ‘이방인’을 드러내놓고 레퍼런스 한다. 카뮈가 생전에 가장 부조리한 죽음이라던 교통사고로 죽었듯 ‘불한당’의 주인공들은 모두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부조리를 스스로 만들어나간 끝에 부조리한 종말을 맞는다.

이토록 심오하고 탄탄한 기초공사 위에 저마다의 아픔과 욕심과 허무주의에 불안해마지않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라는 탁월한 인테리어 설치를 자랑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실제 생활에선 영화가 가진 철학마저도 갖추지 못한 듯한 경거망동을 했다는 것 자체도 어쩌면 부조리일지 모른다. ‘비터 문’과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아동 관련 성범죄를 저지른 것 같은 부조리. ‘블레이드 러너’가 재평가됐듯 재조명이 필요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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