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 관심(觀心), 마음을 바라보는 걸 말한다. 최근,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는 말을 절감했다. 여러 일이 중첩 되면서 급기야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링거를 맞고 정신이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극심한 마음의 스트레스가 고통으로 작용해 마음이 아프더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온 몸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내게 노인들의 성(性)에 대해 생각하게 한 건 어느 인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한 분(82세)이 후배에게 추잡스럽게 굴은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 일은 나로 하여금 졸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산문을 쓰게 했다. 황혼녘에 날아오르는 부엉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지혜롭고 성숙한 영혼을 가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아무런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오로지 감각과 본능에만 충실 한다면 천박한 노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성생활을 안 해서 죽은 노인은 없다. 

수잔나와 장로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610년(17세 때 작품). 포머스펠덴의 쇠보른가 소장.
수잔나와 장로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610년(17세 때 작품). 포머스펠덴의 쇠보른가 소장.

마음공부란 별거 없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일이다. 종교가 가장 쉬울 수 있고, 고전이나 성현들 말씀을 찾아 읽거나,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는 일이다. 배움이란 지루한 삶을 견딜 수 있게 하고,  지성을 연마하는 일이다.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끝까지 유지하며,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다 이 별을 떠나느냐를 생각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일이다.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본능인 성(성)문제로 폐족지경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도한다. 다 지성의 힘이 허약한 결과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무엇인가를 사랑할 때, 우리 몸에서 생성되어 우리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한다. 특히 도파민은 무엇엔가 몰입할 때 생성되어 에너지와 삶의 의욕을 불어 넣어준다. 그런데 이 도파민이 과하게 생성 되면 쾌락을 느끼게 되어, 종례에는 중독으로 가기 쉽다. 여자는 쇼핑중독이 되기 쉬운 반면, 많은 남자들은 이 도파민이 과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 같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의 여자를 탐내보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멀리 있지 않았다. 매일 통화하는 어머니의 말 속에 아버지(86세)가 바람이 난 것이다. 어머니(86세)에 비해 너무나 건강한 아버지는 게이트볼을 치러 다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농담인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어머니의 고통은 깊어 갔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로 이입되었다. 평생 그렇게 고생시켰으면 나이 들어 오손도손 아껴가며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쪽 귀가 살짝 어둡고 인공관절수술을 한 어머니는 혼자 외롭게 버려지듯 집안에서 묵주를 쥐고 하루 종일 기도만 했다. 

20여 년 가까이 남들의 온갖 고통스런 일들을 상담해주는 딸은 어머니의 고통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점점 아버지에 대한 화를 참기가 힘들어졌다. 권위적인 아버지와는 평생 다정하게 대화를 해 본적이 없다. 이런 순간 서툰 말을 했다가는 어머니가 더 힘들어질게 뻔하디. 왜 남자들은 평생을 동고동락한 아내를 헛산 듯한 허망함에 빠뜨리는지. 아내들의 외롭고 고통스러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불륜은 숭고한 삶에 대한 허영이고 오만이며 최악의 사치다. 누구는 그 허영과 사치를 부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사는 줄 아나? 누구는 본능대로 함부로 막  살 줄 몰라 바르게 사는 줄 아나? 스스로 조금 외로움을 견디면 적어도 남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허영과 오만과 사치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로맨티스트와 바람둥이는 차원이 다르다. 로맨티스트들은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바람둥이들은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떼처럼 오직 성욕을 채울 상대만을 찾아다닌다. 어느 순간 염치가 없고 뻔뻔해진다. 그런 걸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한다.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리면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소설가 A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이 끊어진 지 20년도 넘은 분이다. 그 전날 동인(同人) B에게서 전화가 와서 A선생에게 안부 전화를 한번 하라는 것이다. 이미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태여서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몰라도 제가 전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평생 그렇게 양아치처럼 사셨으면 늙어서 고독한 대가를 치루며 사셔야지요.”

분명 이렇게 말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인 B가 A선생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던 것이다. 한 때 ‘문단제비’라는 말이 유행했다. 요즘도 풍문에 누가 누가 문단제비처럼 살고 있다는 소릴 듣고는 한다. 왜 남의 등을 치고 사는 사람을 ‘제비’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참 사람 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제비’짓을 하면서 글은 어떻게 쓰나? 시나 수필이나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은 아줌마들의 작품을 손봐주는 척 하며 돈도 뺏고, 몸도 뺏고, 순정도 뺏고, 사랑도 뺏는 짓을 하는 자들을 ‘문단제비’라고 말한다. 문단제비라는 말도 아깝다. 그런 족속들은 양아치들이다.

펜을 들은 자는 감히 천하를 이롭게 할 혜안을 얻기 위해 끝없는 구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어느 층계참에서 주저앉아 제비 짓을 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가라면 늙으면 늙은 줄 알고 가을이면 가을인줄 알아야 한다. 

젊은 날 A선생을 존경했으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에게 한 제비 짓을 알고부터 그분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런 A선생(82세)의 전화는 당황스러웠다. 축축한 목소리로 가락동 오피스텔 쪽으로 가서 전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상냥하게 거절했다. 동인들 만날 때 의견을 물어보고 초대를 함 하겠다고. 그렇게 상냥하게 말할 때 물러났어야 했다. 그러나 조금 길게 갔다. 기어이 단호하게 말하게 했다. 늙은 양아치의 뻔한 수법에 넘어갈 나이는 이미 내가 너무 지났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때부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불같은 성질. 싫어하는 아버지 성질을 꼭 빼닮은 딸. 애견과 산책을 나갔지만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내 전화번호를 A선생에게 알려준 동인 B에게 전화를 했다.

​“왜 A선생에게 전화번호를 갈쳐 주셨어요? B쌤 나이가 몇 살이에요?” 

B여인(74세)도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 꼬리가 퇴화되지 않은 부류였다. 그러려니 하고 지냈는데, 차암 나. 뚜쟁이 짓까지 할 줄이야. 자신이 뭔 짓을 한 지도 모르는 척하는 여인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노인들 때문에 화가 폭발하여 다음 날 응급실에 실려 갔다. 며칠 후 남동생과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조금 과잉 반응으로 아버지를 의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아버지와 다시 사이좋게 산책을 하고 맛있는 걸 해 드시며 재미있게 지낸다고 했다. 

​창밖에 바람이 조금 거칠게 일렁인다. 시원하다. 가을이다. 난 왜 이렇게 온 몸의 통증을 견딜 수 없어 응급실로 실려 갔다 왔는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고통을 어머니를 통해 겪었다. 가장 소중한 나의 신전(어머니)이 공격을 받은 듯 아팠다. 몸이 아프니 비로소 생각이 멈추었다.

불교에 정통한 어느 정신과 의사의 강의를 듣는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바라보면’ 사라진다고 했다. 그 말에 반만 공감한다. 20여년 어깨 통증으로 별별 짓을 다 했다. 그 중 가장 내게 효과가 있는 물리치료가 ‘체외충격파’였다. 체외충격파는 염증부위에 엄청난 충격을 가해 혈관의 재형성을 촉진해서 통증을 감소하는 치료 방법이다. 

아픈 어깨에 망치질을 하는 고통이 따른다. 그런데 나는 어떤 고통이든 몸의 통증은 바라볼 수가 있다. 눈을 감고 어깨에 가해지는 통증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아프지 않다. 치과치료도 잘 견딘다. 그런데 마음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화가 날 때 그 화난 마음을 바라보면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되면 공중부양도 가능하리라.

정영희 작가
정영희 작가

[정영희 작가]
대구 생. 영남대 미대,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시문학에 단편소설 ‘아내에게 들킨 生’을 발표하고, 1986년 중편소설 ‘무무당의 새’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다. 장편소설 ‘그리운 것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무소새의 눈물’, ‘슬픈 잠’, ‘아프로디테의 숲’, ‘아키코’ 등과 소설집 ‘그리운 눈나라’, ‘낮술’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석복수행 중입니다’,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굿모닝, 카르마’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영희역학연구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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