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소설가 정영희의 산문노트] 관종(關種), 관심종자의 줄인 말이다. 종자(種子)는 식물의 씨앗을 말하는데, 사람의 혈통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영어로 ‘어텐션 호올(attention whore, 관심병 환자)'이라고 한다. 어텐션은 주목하라는 뜻이고, 호올은 매춘부, 절개가 없는 여자, 혹은 오입을 하다는 뜻이다. 이 두 단어가 합해져 관심종자, 관심병 환자로 번역된다. 풀이하자면 주목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쯤 될 것이다. 

호올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진 않는다. 가령 푸드 호올(food whore)은 음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으로 해석한다. 크레디트 호올(credit whore)은 남에게 관심을 끌기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SNS에서의 관심종자는 소셜 미디어 호올(social media whore)이라고 한다. 모두 살짝 비꼬는 의미가 들어 있긴 하다. 나를 여기 대입시키면 라이터 호올(write whore)이 되겠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좀 다르게 혹은 넓게 해석하면 몰입이나, 편집증도 포함시킬 수도 있겠지만, ‘호올’이란 단어를 감싸기에는 궁색한 면이 있다. 

신화 속 관종을 그린 그림. 나르키소스(1597~99), 카라바조, 로마국립고대미술관 소장.
신화 속 관종을 그린 그림. 나르키소스(1597~99), 카라바조, 로마국립고대미술관 소장.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편집증(스토커는 제외)을 보이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오히려 창조적 에너지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편집광은 스티브 잡스다. 편집광의 다른 말은 ‘몰입의 천재’다. 스티브 잡스의 멘토이기도 한 비즈니스 사상가 그로브 인텔 회장의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저서가 있다. 편집광만이 세상을 리더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인류 최초의 관종은 고대 그리스인 헤로스트라투스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운 방화범이다. 이유를 묻자,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환자 수준에 이르게 되면 남에게, 혹은 인류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쾌감을 준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욕망과 본능을 슬쩍 감추거나 극복한다. 그런 것이 교육의 힘이고 지성의 힘이다. 원초적 욕망을 대리만족 할 수 있는 게 연예인을 보는 일이다. 연예인은 재능이 많은 대중 예술인이다. 그들은 대부분 소비되므로 마음껏 본능에 충실하게 끼를 발산해도 된다. 범부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대가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다. 자칫 어린 나이에 부와 인기를 다 가지게 될 때 주의해야 한다. 그 순간 잠시 멈춰 서서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게 가장 성공한 삶일까’를 질문해야 한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허무와 공허와 끝임 없는 결핍과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질문하는 자는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질문하지 않는 자들이 위험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 이어 ‘배달의 민족’ 김봉진 창업자가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2021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 성공한 삶은 무엇인지 아는 자들이다. 인류가 ‘함께 같이’ 잘 살아가야하며,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임을 알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세상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을 다 존경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성취를 세상에 환원할 수 있는 자만이 존경 받을 수 있다. 

오로지 제 몸과 제 외모를 가꾸는 것에만 일생을 바치는 여자 혹은 남자들이 많다. 식스팩과 꽃미남에 목숨 거는 남자들을 보면 불쌍하다. 자기만족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성의 80%는 식스팩이나 꽃미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이야기를 잘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남자를 좋아한다.

스토리가 없는 남자 혹은 여자는 매력이 없다. 미국의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는 ‘우주를 구성하는 건 원자가 아니라 스토리’라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히스토리(history)로 이루어 져 있다. 스토리가 없다는 건 내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스토리란 인간이 세상과 만나면서 세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타인을 만났을 때도 그 타인을 느끼고 공감하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분석하면 저절로 스토리가 생겨난다. 세상에 대해 알고 싶지 않고 타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면 스토리는 없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스토리가 있으면 ‘러브 스토리’가 되지만, 스토리를 생략하면 ‘포르노’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스토리라는 게 오로지 부와 외모와 조건에만 있다면, 부와 외모와 조건이 사라진 후의  허무와 공허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부는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눈(눈)과 같고, 외모는 시간이 흐르면 중력에 의해 주름이 지게 되어 있다. 

내 오피스텔을 들랑거리는 또래 여자가 있었다. 어찌나 성형을 많이 하는지 올 때마다 사람이 달라져 있다.

- 날로 날로 진화를 거듭하네요.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모든 여자들이 다 똑같이 선생님처럼 지적이라면, 남자들은 어떤 여자를 선택할까요?’, 하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여자대학을 나왔다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 아니, 미자(가명)씨는 오로지 남자에게 간택되기 위해 사세요? 지금이 명나라 시대예요? 이조 시대인가요? 

AI처럼 변해 버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참 처량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어떤 이념도, 어떤 권력도 아름다움을 이기지는 못해요.'라고 했던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정말 관종들 피곤하다. 가짜들 피곤하다. 반짝인다고 다 금(金)인 줄 아는 바보는 없다. 

의학은 인간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학문 아니던가. 정신 건강을 위해 살짝 보수공사를 하는 건 귀엽게 봐 주겠는데 도로공사처럼 다 갈아엎으면, 스스로 금맥기가 되어 버린다. 금도금을 한다고 구리가 금이 되지 않는다. 구리가 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다니. 구리는 구리고 금은 금이다.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고 있으므로 끝임 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늘 불안하다. 거울만 쳐다보고 산다. 시간이 흐르면 쳐지게 되는 살을 견디지 못하고 또 당기러 간다. 

당기고 당기고, 고치고 또 고치면 못 고칠 리 없겠지만 절대 청춘을 이기진 못한다. 자학 행위일 뿐이다. 청춘을 흉내 내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될까? 남을 사랑할 생각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마주 앉아 아무리 진실 된 말을 주고받아도 그 진실 된 말이 가짜처럼 느껴진다. 

도금한 금이 진짜일 리 없지 않은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현대의 관종은 '악성나르시스'들이다. 집안의 쥐꼬리만 한 부와 권력을 등에 업고 몸 전체거 교만으로 가득차서 남에겐 관심이 1도 없고, 타인을 사물 취급하는 또 다른 악성 나르시스트들도 있다.

관종 정치인은 또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목불인견이다. 튀어보겠다고 한 말이 자신의 무식을 폭로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관종 글쟁이 또한 튀어보겠다고 여기저기 정치적인 발언을 하다가 종래는 너덜너덜 걸레처럼 목불인견이 되긴 마찬가지다. 정치인이든 글쟁이든 자기가 누구인지 끝임 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버린다.

소셜 미디어 관종들은 주구장창 자신의 얼굴만 올린다. 스토리가 없는 SNS는 지루하다. 인간은 ‘호모스토리텔러’다. 스토리를 먹고 산다는 말이다. 자신이 예쁜 줄 아는 여자는 매우 위험하고, 자신이 꽃미남인 줄 아는 남자는 피곤하다. 악성 나르시스트들은 자기애가 강하면서 열등감도 깊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깊은 열등감 무섭다. 나와 남을 다치게 한다. 그런 자는 빨리 돌아서라. 돌아서면 네가 일등이다. 내 속의 관종이 설치기 전에 빨리 자야겠다.

정영희 작가
정영희 작가

[정영희 작가]
대구 생. 영남대 미대,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시문학에 단편소설 ‘아내에게 들킨 生’을 발표하고, 1986년 중편소설 ‘무무당의 새’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다. 장편소설 ‘그리운 것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무소새의 눈물’, ‘슬픈 잠’, ‘아프로디테의 숲’, ‘아키코’ 등과 소설집 ‘그리운 눈나라’, ‘낮술’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석복수행 중입니다’,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굿모닝, 카르마’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영희역학연구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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